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제공=삼성전자

세계 반도체산업을 이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난해 매출 100조원, 영업이익 50조원에 육박하는 신화를 썼다. 반도체 수출 비중도 지난해 전체의 17%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예년 11~12%를 오간 것에 비하면 크게 늘어난 셈이다.

반도체는 경기에 민감한 장치산업으로 인터넷데이터센터(IDC) 확대, 신산업 성장, 모바일시장 확대 등이 이어져 당분간 상당한 수요가 유지될 전망이다. 반도체산업은 통상 4~5년 단위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사이클을 그려왔지만 지난해와 같은 호황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하지만 올해도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메모리반도체시장은 지난해 매출이 58% 늘며 성장했지만 2022년까지 성장세가 점차 감소하면서 연평균 성장률은 5%를 밑돌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올해는 우려만큼 반도체 성장률이 크게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해외에서는 업황이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독과점에 가까운 시장 상황과 추격자인 중국과 기술격차도 크기 때문에 올해까지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시장 전망은 엇갈리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당분간 업계 선두권을 유지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반도체시장의 주력인 D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모두 최고의 기술력을 갖춰 적수가 없는 상황이다. 적층기술경쟁이 한창인 낸드플래시 분야에서는 삼성전자가 기술, 시장점유율 등 전분야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 세이프가드 만지작

호사다마라고 했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두 기업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통상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양국은 특허침해조사, 반독점 심사에 나서면서 자국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른 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미국정부는 최근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동원해 월풀에 힘을 실어줬다. 문제는 이 움직임이 반도체시장에서도 재연될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 1월21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특정 SSD(솔리드 스테이트 스토리지 드라이브)와 적층 전자부품, 이를 활용한 메모리 제품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이번 조사는 ‘관세법 337조’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미국의 관세법 337조는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제품에 수입금지 등을 명령할 수 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미국업체 비트마이크로가 지난 1월9일 한국·중국·대만·일본의 기업들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제소하면서 시작됐다는 시각이다.

조사 대상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델, 레노보, 휴렛팩커드(HP), 아수스, 에이서, 바이오, 트랜스코스모스 등 9개사다. 그러나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겨냥한 조사가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9개 조사대상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반도체 제조업체고 델, 레노보, HP 등은 완성컴퓨터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더욱이 비트마이크로는 이들 기업에 SSD를 납품한다. 주요 고객사와 마찰을 빚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ITC의 한국 반도체 견제는 전부터 있었다. 지난해 11월28일 ITC는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모듈과 관련 부품이 미국 넷리스트의 특허를 침해했는지 여부를 조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앞서 9월에는 테세라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정 웨이퍼 레벨 패키징 반도체 분야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 ITC가 조사를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1년 동안 특허침해 소송이 잇따라 제기되는 배경에는 미국정부의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또 미국정부가 최종적으로 자국 기업의 손을 들어주지 않아도 소송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 수 있어 결과적으로 미국기업에 득이 된다. 민관이 손잡고 한국 반도체기업을 상대로 공세를 펴는 셈이다.

◆중국, ‘반도체 굴기’ 이룰까

추격자 중국도 만만치 않은 기세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괴롭힌다.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RDC)는 지난달 메모리반도체 가격 고공행진에 불만을 품은 자국 스마트폰업체의 민원을 받아들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가격 담합의혹 조사를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NRDC가 삼성전자에 D램 가격에 대한 논의를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NRDC는 중국의 거시·실물 경제분야를 총괄하는 경제수석부처로 산하 기관들은 ▲가격 카르텔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정부기관의 행정권 남용에 의한 반경쟁 행위 등을 규제한다.

중국은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큰 시장이다. 때문에 삼성전자가 중국정부의 움직임을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시장 조사업체 D램 익스체인지는 지난 1월6일 “삼성전자가 중국 정부의 의견을 수렴하면 모바일 D램 가격의 상승이 완화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SK하이닉스는 일본 도시바메모리 지분인수와 관련해 미국·유럽연합(EU)·한국·일본 등 각국의 반독점 심사에서 통과하고 중국과 대만의 심사만 남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은 2016년부터 정부 주도 아래 반도체산업 육성에 나섰다”며 “과거에는 전자기기의 부품으로만 치부되던 반도체가 4차 산업혁명에서는 필수이자 핵심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이 천명한 반도체 굴기의 초기 사업이 최근 결실을 맺고 기업환경을 바꾸고 있는 만큼 우리 기업들도 과거와 다른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5호(2018년 1월31일~2월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