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기업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금융당국이 새로운 금융정책을 제시하면 금융공기업의 경영비전도 180도 달라지기 일쑤다.
금융공기업 인사 역시 정부의 입김에 흔들린다. 최근 정부가 금융공기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국내 최대 보증기금사인 신용보증기금도 새 수장 찾기에 돌입했다.
지난 2월20일 신용보증기금 임원추천위원회는 차기 이사장 공모신청을 받았다. 황록 이사장이 임기 1년8개월을 남기고 돌연 사의를 표명해서다.
임추위는 서류·면접심사를 거쳐 복수의 후보를 압축해 금융위원장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금융위원장이 최종 후보를 고르면 대통령이 차기 이사장을 임명한다. 통상 후보 면접 후 임명까지 약 3주의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차기 이사장은 이르면 3월 안에 결정될 전망이다.
◆관치인사, 기재부 낙하산 가능성
신보는 차기 이사장 후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특정 후보가 부각될 경우 공정성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차기 이사장에 최영록 기재부 세재실장, 이찬우 차관보가 거론되는 등 낙하산 인사가 올 것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신보 이사장 자리는 줄곧 기획재정부 관료가 꿰차던 요직으로 또다시 관치인사가 제기된다.
신보는 1대 정재철 이사장을 시작으로 2대 송병순 이사장부터 16대 김규복 이사장까지 모두 옛 재무부와 재정경제부 출신이 장악했다. 2008년 안택수 이사장(17대)이 기재부 출신 꼬리표를 끊었지만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경력, 정치권 인사로 이사장직을 5년간 맡았다.
금융권 인사가 신보 이사장직에 앉은 건 2013년부터다. 20대 서근우 이사장은 하나은행 부행장, 하나금융지주 부사장의 경력을 보유했으며 중도 사임한 황록 이사장도 우리은행 출신이다. 두 이사장은 민간 금융회사와 정책공유, 보증지원 협약을 활발히 진행해 금융시장에 능통한 수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 기재부 출신이 차기 이사장에 내정돼 또다시 신보가 정권에 휘둘릴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신보 이사장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지역 정치인들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구출신 경제인사와 정치인을 추천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신보는 2014년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방침에 따라 대구로 본사를 이전한 상황. 부산에 본사를 둔 기술보증기금은 지난해 기재부, 부산시 경제부시장 출신 김규옥 이사장을 앉혔다. 신보 역시 대구지역 출신 이사장에 대한 정치권의 목소리가 거세다.
내부에선 인맥보다 능력 있는 후임자가 오길 바라는 눈치다. 신보 노조는 정부가 금융전문성이 없는 인사를 내려 보내면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신보 노조 측은 “벌써부터 현직 기재부 고위 관료가 이사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며 “낙하산 인사가 임명될 경우 출근저지 등 반대투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경영공백 우려, 기보와 통합론 제기
신보는 황 이사장 사임에 따른 경영공백 우려가 제기된다. 더욱이 내부 상임이사 5명 가운데 4명은 임기가 만료돼 신보의 경영에 적신호가 켜졌다.
상임이사 2명은 지난해 7월3일, 1명은 10월16일, 나머지 1명은 지난 1월11일 임기를 마쳤다. 해당 임원의 임기 연장이나 교체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신보에 중소기업 지원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 사업추진 동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신보는 올해 창업기업과 중소기업에게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산업생태계 금융기관’으로 보증기금이 45조원으로 2조원 늘었다. 또 핵심 국정과제인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분야 중점 지원을 위해 창업기업에 15조원, 수출기업 11조원, 4차 산업기업 8조5000억원, 고용창출·유지기업 4조원 등 보증을 추가 공급키로 했다. 지난해 금융위원회와 함께 국정과제와 연계한 ‘미래발전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16대 핵심과제를 발굴하는 등 과제가 쌓였다.
하지만 신보가 올해 추진한 사업은 전년과 유사하거나 세부실행 전략이 빠졌다. 주요 사업을 이끌어 나갈 임원진의 공백 탓이다.
정치권은 신보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신보와 기보의 감독권한은 금융위원회에 맡기고 정책수립과 지원·진흥은 중소벤처기업부로 일원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1월 '기술보증기금법'과 '신용보증기금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고 신보와 기보로 이원화된 정책금융 체계를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기보는 정부 출범 이후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중기부가 신설되면서 금융위서 중기부 소관으로 이관됐다. 반면 신보는 여전히 금융위 소관이다.
채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기금의 기능과 목적을 고려하지 않고 부처간 힘겨루기 끝에 어정쩡한 절충안을 만들어 정책보증 기능을 중기부와 금융위로 이원화했다”며 “신보도 중기부 산하로 옮겨 정책보증 이원화로 발생하는 중복지원을 예방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보증의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보 관계자는 “임추위를 통해 차기 이사장 선임에 속도를 낼 것”이라며 “이사장과 상임이사 인사를 마무리하고 올해 계획한 사업도 무리없이 추진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