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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 간 까닭, 지그시 '합장'
봄비 내리고 얼음 풀리니 산사에 소 울음소리 아련하다. 봄비에 무논이 싫은 건 소만이 아닐지니, 녹슨 쟁기 올린 지게 어깨를 짓누른다. 겨우내 게으르게 살찐 소야, 어서 일어나 멍에를 메거라. 오래 묵힌 빛바랜 근심걱정, 간만의 쟁기질로 시원하게 엎어보자.
해남 달마산 미황사, 대웅보전을 둘렀을 법한 심우도(尋牛圖)는 온데간데 없다. 심우도는 당장 없어도 산사 아랫마을은 늘 소를 찾고 그의 발자국을 쫓아왔다. 기계가 들어선 빈 외양간, 겨울잠 갓 깬 소는 어디로 갔나. 다시 미황사 대웅보전, 단청 사라진 처마와 공포는 먼 소 울음소리 반추하듯 그 빛깔 고색창연하다.
하지만 어쩌랴, 봄이면 봄꽃에 끌리는 이 마음을. 동백, 진달래, 산벚 지천일 땅끝 달마산 손짓 거부할 텐가. 꽃 지는 허망함이야 나중의 일일 뿐. 달마산 봄꽃도 때가 있는 법, 그 절정을 홀로 아껴두고 볼 일은 아니니 내친 김에 해남이다.
아랫마을 외양간이 비면서 미황사 소가 사라졌나. 이제와 소를 찾고 달마를 벽에 그리는 일도 의미 없을 뿐. 미황사 옆구리, 떨어진 애기동백 꽃무덤 살펴 달마산을 두루 걸음하면 끈 풀린 소 꽁무니라도 찾으려나.
땅끝 사자봉으로 슬그머니 발 뻗은 땅끝기맥 달마산. 봄비에 덧낀 안개를 열고 또 열어봐도 얼굴을 안 내민다. 비 멎고 안개 그치면 진면목 드러나려나. 한참을 기다려도 오리무중, 소 찾기는 글렀다. 옛 사람 걸었다는 달마고도, 생각 없이 꽃구경이면 진여(眞如) 저편으로 ‘헐!’ 봄이구나.
◆명승 달마산과 천년고찰 미황사
달마산의 아름다움은 미황사(美黃寺) 창건설화에도 나타난다. 신라 경덕왕 8년, 금인(金人)과 경상(경전·불상)을 실은 배가 사자포구(땅끝마을) 인근에 닿자 의조화상이 이를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울면서 머문 자리에 통교사를 짓고 다시 소가 누운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미황사는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워서 미(美)자, 금인의 빛깔을 상징한 황(黃)자를 합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미황사사적비 창건설화에서 의조화상(신라 경덕왕 8년)은 “나(金人)는 본래 우전국(인도)의 왕인데 여러 나라를 편력하면서 경상을 봉안할 곳을 구하였다. 산 정상을 바라보니 일만불이 다투었으므로 여기에 왔다. 마땅히 소에 경을 싣고 소가 누어 일어나지 않은 곳에 안치하라”고 했다는 꿈을 적었다. 이를테면 일만불이 다툰 곳은 달마산이며 소가 누운 곳은 미황사인 셈이다.
또 어떤 기록에는 달마(선종 초조)와 잇대기도 한다. 달마는 선종의 2대 조사인 혜가를 만나 법을 전하고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그가 떠난 방향은 동쪽이었으니 과거 중국인들은 달마가 바다를 건너 안주한 곳으로 이 달마산을 꼽았다고 한다. 달마산이 명승임과 동시에 바닷길을 통한 불교 전파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만덕사(현 강진의 백련사) 무외스님은 기행문에 “‘내가 듣기에 이 나라에 달마산이 있다는데 이 산이 그 산이 아닌가’라고 물은 남송의 한 고관이 산에 예를 올리고선 ‘우리나라는 다만 이름만 듣고 멀리 공경할 뿐인데 그대들은 이곳에서 성장했으니 부럽고 부럽도다. 이 산은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이다’라며 그림으로 그려갔다”고 적었다 한다.
여하튼 문헌과 설화의 사실 여부를 떠나 달마산은 남해의 소금강으로 불릴 만큼 그 절경이 빼어나다. 달마산에서 미황사 못지않게 인기가 높은 암자는 도솔암(兜率庵)이다. 드라마 <추노>의 촬영지로 소문이 나면서 해남8경의 으뜸(달마도솔)이 됐다.
◆인간의 손으로만 닦은 달마고도
달마고도는 달마산 중턱(200~350m)에 걸친 둘레길로 미황사에 전해 내려오는 12개 암자를 순례하는 옛길을 엮은 것이다. 특히 호미, 삽, 곡괭이, 지게를 이용해 사람들이 손으로만 사십오리(17.74㎞) 전 구간을 다진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다른 걷기여행길에 흔한 데크, 구름다리 등 인공 구조물이 전혀 없다. 대신 돌흙막이, 돌계단, 돌묻히기, 돌붙임, 돌횡배수대, 노면경계돌쌓기, 돌수로가 돋보여 길 또한 다정다감한 느낌이다. 사람의 손으로만 지어진 것들은 때묻지 않은 달마산 정경과 잘 어울린다.
이어 2코스(큰바람재-노지랑골 4.37㎞)는 ‘문바우골 너머 큰금샘 찾아가는 길’이다. 수사나무, 사스레피나무, 음나무, 꾸지뽕나무 등이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다. 달마산 동쪽 마을과 들판, 해안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4월이면 진달래, 산벚이 지천을 이룬다.
3코스(노지랑골-몰고리재 5.63㎞)는 ‘이진의 말을 몰아 십삼모퉁이 넘어 마봉 가던 길’로 하숙골 옛길, 웃골재, 웃골, 도시랑골을 지나는 길. 복충림, 노간주나무 고목, 조릿대군락지, 암석지 등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다도해의 전경을 조망하기 가장 좋은 코스다.
4코스(몰고리재-미황사 5.03㎞)는 ‘천년의 숲을 따라 미황사 가는 길’이다. 길의 시작인 미황사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로 ‘땅끝 천년 숲 옛길’과 겹친다. 용굴과 도솔암, 편백숲, 부도전을 만난다.
전남 해남군은 이 달마고도 이용 활성화를 위해 매년 두차례 걷기행사를 개최하는데 올해는 오는 4월28일과 11월3일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2호(2018년 3월21~2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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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전남)=박정웅 기자
박정웅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