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나스닥(NASDAQ) 상장은 한때 벤처기업인들의 꿈이었다. 그러나 과거 야심차게 나스닥에 입성했던 한국 기업 대다수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줄줄이 미국시장을 빠져나왔다.
현재는 태양광 셀 제조업체 한화큐셀과 국내 온라인게임 1세대 기업인 그라비티 두곳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 중 그라비티도 나스닥에서 코스닥 이전 상장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되면 국내 기업 중 한화큐셀만 나스닥시장에 남게 된다.
나스닥 직상장을 계획했던 삼성바이오에피스, SK바이오팜 등 바이오기업들도 한국거래소의 설득에 국내 증시로 관심을 돌리는 모습이다. 국내 바이오열풍을 타고 기업 가치를 훨씬 높게 평가받을 수 있고 나스닥에 비해 코스닥 상장 비용이 훨씬 합리적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바이오 대어들, 코스닥 상장 고려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진=머니투데이 DB
한화큐셀 메리우드 태양광발전소. /사진=한화큐셀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했던 삼성바이오에피스, SK바이오팜 등 국내 바이오기업 내부에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그간 두 기업은 나스닥 직상장 방침을 고수해왔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5년 8월 골드만삭스와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을, SK바이오팜은 올 초 모건스탠리와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하는 등 나스닥 상장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두 기업 모두 별다른 진척이 없어 보인다. 바이오업계에선 본격적인 신약개발 성과가 나타나는 올 상반기나 내년 초쯤 상장 작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상장 추진 시기조차 가늠하기 어려워 사실상 나스닥 상장은 잠정 연기된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두 기업에 나스닥 대신 코스닥 상장을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스닥 상장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겠다며 업체들을 설득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최대주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과거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다 거래소의 권유로 코스피 상장을 결정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거래소의 지속적인 권유에 2016년 4월 말 이사회에서 코스피 상장 추진을 결정했다. 걸림돌이었던 거래소 규정을 개정해 코스피 상장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당시 거래소는 2015년 11월 매출과 이익에 관계없이 시가총액과 자본금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상장을 허용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2011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해 상장 요건을 갖추기 못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코스피에 입성할 수 있던 배경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SK바이오팜 측은 “상장 여부와 관련 공식적으로 확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국내 증시 상장에 관심을 나타내는 분위기다. 이 같은 기조 변화는 국내에서 상장한 바이오기업들이 바이오열풍을 타고 높은 가치평가(밸류에이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바이오기업의 주가 추이는 나스닥 바이오업종의 상승률을 압도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주가가 50만원선까지 치솟으면서 2016년 11월 코스피시장에 입성하던 당시 공모가(13만6000원)의 3배를 훌쩍 넘었다. ◆국내 기업 나스닥 상장 잔혹사
과거 야심차게 나스닥시장에 입성했다 퇴출당해 코스닥으로 유턴한 기업들도 눈에 띈다. 앞서 2005년 나스닥에 상장한 상보형금속산화반도체(CMOS) 이미지센서 개발업체 픽셀플러스는 실적 부진으로 2009년 상장폐지됐다. 이후 홍콩증권거래소 상장을 검토했지만 코스닥 상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2013년부터 실적 부진이 계속된 그라비티도 나스닥 시장에 부담을 느끼고 코스닥 이전 상장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라비티 측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실적 부진을 겪은 것은 맞지만 지난해 실적이 급상승했고 코스닥 이전 및 나스닥 폐지 등은 검토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만약 픽셀플러스에 이어 그라비티마저 코스닥으로 이전하면 국내 기업중 나스닥 상장사는 한화큐셀뿐이다.
우선 비용 문제가 국내 기업들이 나스닥을 떠나 코스닥으로 이전 상장하는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나스닥시장의 경우 기업에 따라 다르지만 상장 및 상장 유지비용이 매년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주관 수수료를 비롯해 법률자문 등의 비용을 지급해야 하고 2002년 상장기업에 대한 내부통제,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샤베인-옥슬리법안이 도입돼 감사위원회를 설치해야 하는 등 회계감사 비용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가부양과 거래활성화를 위한 기업설명회(IR)활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 나스닥 상장사 입장에선 공시를 포함한 전반적인 관리 부담이 과중하다는 게 고민거리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IPO 담당자는 “나스닥시장에 상장하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상장 후 배상책임보험료 등 상장유지 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해외 상장이라는 선전 효과만 기대하기에는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코스닥 기업 경쟁력 약화 우려
거래소가 상장 문턱을 낮추는 등의 방법으로 나스닥 상장을 고려하는 기업들을 국내 증시로 유도하고 있지만, 나스닥에 비해 검증 시스템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나스닥 상장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코스닥 상장이 훨씬 유리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경쟁력 측면에서 나스닥시장의 경우 상장 유지를 위해 꾸준한 자문과 IR활동을 통해 기업이 투자자에게 끊임없이 정보를 제공토록 유도하는데 반해 코스닥 시장은 문턱을 낮추기만 하고 있어 해당 기업의 실력을 검증할 만한 시스템이 비교적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 국내 증시에선 펀더멘털 기준이 아닌 막연한 기대감으로 인해 바이오주 광풍이 불고 있다”며 “증시 부양을 위해 대어들을 국내 증시에 상장시키려는 당국과 거래소의 노력은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코스닥 경쟁력 측면에선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