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지 아라리에 깃든 삶의 향기
강굽이 물소리 유량한 아리랑 고장에 흠뻑 젖다


아우라지 뗏목 시연. 옛날 정선 사람들은 소나무 등을 엮은 뗏목을 타고 동강, 남한강을 거쳐 한강으로 향했다. /사진제공=정선군

"딱~"
가차없이 지아비 따귀를 후려치는 소리, 매섭고도 경쾌하다. 죽은 줄만 알았던 남편이 딸과 함께 돌아왔으니, 아내는 꿈이랴 생시랴. 무너져내린 15년간의 억장을 뺨 한 대에 풀어낸다. 떠들썩한 마을잔치까지 벌이니 객석도 들썩인다.  

새롭게 태어난 정선아리랑이 흥겹다. 아우라지 물길에 발이 묶였던 남녀의 애틋한 사연은 해피엔딩으로…. 이제 그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조양강 따라 남한강 따라 거친 물길 수백리. 술판, 투전판 질펀한 한양에서의 주색과 잡기, 그리고 15년간의 기억상실은 아내의 뺨 한대에, 주거니 받거니 딸과의 아리랑 가락에 지워지고 되살아난다.


정선여행도 덩달아 흥이 넘친다. 산 높고 골 깊은, 강굽이 휘돌아 혹독했던 자연은 역동적인 관광 명소로 명전(明轉)했다. 불기운 품었던 검은 땅에선 어느덧 문화와 전통의 빛이 싹텄다. 정선아리랑은 평창올림픽에서 온세상에 제이름을 알렸다. 봄비가 여름을 재촉하는 지난 12일, 아우라지 아라리가 깃든 정선을 만났다. 

◆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아우라지를 건너는 줄배. /사진제공=정선군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 동박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정선아리랑 일부)

정선아리랑은 진도·밀양아리랑과 함께 우리의 3대 아리랑이다. 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은 특히 지난 겨울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이제 국내외 초청이 쇄도하는 올림픽 레거시(유산)로서 정선과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우뚝 섰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선아리랑은 송천과 골지천, 2개의 물길이 여량에서 만나는 아우라지에서 기원한다. 전해오는 700여곡의 정선아리랑 중 아우라지 뱃사공 노래가 가장 유명하다. 여량리 처녀와 유천리 총각의 가슴 아픈 사랑 얘기다.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의 상설공연 '아리 아라리'. /사진=박정웅 기자
애절했던 정선아리랑은 종합 공연예술인 '아리 아라리'로 바뀌면서 보다 너른 공감을 샀다. 아라리는 지역에서 부르는 정선아리랑의 또 다른 별칭이다. 노래(소리) 중심의 기존 정선아리랑은 연극·음악·노래·무용·영상·타악·연희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 종합 뮤지컬로 발전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토리도 재미있어 공연 내내 남녀노소 모두 눈을 떼지 못한다.

객석 곳곳엔 가족, 친구, 연인 등 다양한 관람객들이 눈길을 끈다. 연인과 관람을 마친 유대희씨(31·서울 동작구)는 “전통공연은 뻔할 거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마치 대형 뮤지컬을 보는 듯해서 공연이 끝나자마자 친구들한테 귀띔을 해뒀다”면서 다음 행선지인 여량 아우라지로 걸음을 재촉했다.

잔내, 취, 곤드레 등 지역 산나물이 가득한 정선5일장. /사진=박정웅 기자
'아리 아라리'는 정선5일장(2·7일)에 맞춰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이 아리랑센터에서 상설공연을 펼친다. 지난 4월 10차례 공연에 3500여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관람료(5000원)는 지역상품권으로 돌려준다. 문화와 지역경제를 동시에 챙기는 정책 아이디어가 반짝인다. 상품권은 정선5일장 나들이에 제격이다.

관람을 마친 뒤 공연장 옆 아라리촌을 찾아도 좋다.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놀이공간이다. 정선아리랑이 품은 지역의 생활과 풍속을 엿보는 전통 가옥촌에선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대마의 껍질을 벗겨 지붕을 이은 저릅집과 소나무를 쪼갠 널판으로 지붕을 얹은 너와집이 인상적이다. 농기구공방, 성황당, 방앗간, 장승 등이 옛 정선 사람들의 삶을 한켠씩 쪼개 보여준다.


가족여행객은 체험프로그램을 눈여겨보자. 양반증서 쓰기, 아리랑학당 견습, 양반·규수 체험, 전통공예 체험 등이 그것이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양반전'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두루 체험할 만하다.


아라리촌의 너와집. /사진=박정웅 기자

◆ "얼릉 와요, 여가 장터래요!"

조양강 건너엔 활력 넘치는 장터가 있다. 2012년 한국관광공사 선정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된 정선5일장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재래장터로 매월 끝수 2·7일 장이 선다. 산나물과 약초를 비롯해 싱싱한 지역 특산물이 가득하다.

가족과 장터 나들이에 나선 전은희씨(48·서울 은평구)의 손에는 산나물이 한 보따리다. 그는 “아리랑 공연을 본 뒤 상품권으로 곤드레나물밥을 맛봤다. 취나물과 곤드레나물은 정갈하고 값도 싸 돈을 번 기분”이라면서 웃었다.

합죽편(부채) 체험 교실을 연 정선향교. /사진=박정웅 기자
다례 체험을 하는 정선향교 탐방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이날 비가 오는데도 장터는 인산인해였다. 많은 사람이 전씨처럼 산나물 ‘사재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들은 콧등치기국수, 올챙이묵과 같은 낯선 토속음식에 시간을 빼앗겼다. 주말과 겹친 정선5일장엔 정선아리랑시장도 열렸다. 시장 한복판, 종합관광안내소 인근 공연장에선 소리공연이 한창이었다.

정선5일장 근처에는 정선향교가 있다. 외삼문(外三門)을 들어서면 발걸음이 더디다. 2015년 문화재청 ‘살아숨쉬는 향교·서원’에 선정된 이곳에서 가족, 지인, 조상을 챙겨보는 차분한 시간을 가져도 좋다. 제례와 다례, 서예 체험은 전 과정에 은은한 향내가 감돈다.

◆ 정선여행 교통·여행팁

정선여행은 기차를 이용하면 편하다. 대표적인 게 관광열차다. 청량리역발 정선아리랑열차(A-train)는 예미역·민둥산역·별어곡역·선평역·정선역·나전역·아우라지역 등 정선의 주요역에 정차한다. 이외에 정기열차는 예미역·민둥산역·사북역·고한역에 선다. 기차를 이용한 ‘일석이조’의 정선여행 비법이 있다. 바로 정선역(또는 민둥산역)에서 시티투어 버스를 잡아타면 된다.

정선아리랑열차와 단짝인 시티투어 버스는 장날을 기준해 코스가 일부 나뉜다. 정선장날(2·7일)엔 정선아리랑시장, 정선아리랑극, 화암동굴·소금강길 및 화암약수(택1)를 찾는다. 장날이 아닌 날에는 정선아리랑시장, 약초시장, 석탄유물보존관(옛 동원탄좌), 삼탄아트마인·정암사·만항재(택1)를 들른다. KTX편은 진부역이 가깝다. 정선(고한·사북)행 시외버스는 동서울종합터미널에 있다. <취재협조=여행공방>

☞ 본 기사는 <머니S> 제541호(2018년 5월23~2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