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어떻게 식민지배와 6·25전쟁으로 인한 자산파괴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민주화를 달성했을까. 삼성전자는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세계 1위가 됐고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빌보드차트 1위에 올라 K-Pop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을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당연시됐던 것들이 기적처럼 현실이 되는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에선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우리의 인문학적 바탕을 찾아본다. -편집자-

/사진=이미지투데이

“4월11일에 국호 관제 국무원에 관한 문제를 토의하자는 현순의 동의와 조소앙의 재청이 가결돼 토의에 들어가 먼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칭하자는 신석우와 이영근의 재청이 가결됐다.”

1919년 4월10일 밤 10시에 개회해 11일 오전 10시에 폐회된 ‘상해 임시의정원’은 우리나라의 국호를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이렇게 짤막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엄청나다. ‘대한’과 ‘민국’으로 구성된 ‘대한민국’이란 단어에는 우리 민족의 내재적 발전과 영광, 외침(外侵)에 대한 영웅적 항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어서다.


일제강점에서 벗어난 뒤 출범한 제헌국회에서는 찬성163대 반대2라는 압도적 표차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마련한 현행헌법 전문에서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문화했다.

나아가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통일 이후에도 써야 하는 의미를 갖는다. 왜 그럴까.


◆대한 = ‘통일삼한’, ‘대통합된 한국’

먼저 대한의 뜻부터 살펴보자. 대한은 ‘통일삼한’(통일한민족) 또는 ‘대통합된 한국’을 뜻한다. 이는 광무(光武)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기 직전 국호를 ‘대한’으로 정하며 한 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곧 삼한의 땅인데 국초에 천명을 받고 통합해 하나가 됐으니(統合爲一) 지금 천하의 이름을 ‘대한’이라고 정하는 것은 불가한 것이 아니다”<고종실록>. 또 황제즉위식을 끝낸 다음날 발표한 반조문(頒詔文)에서도 “단군과 기자 이래 강토가 분할돼 각자가 한 구석을 점거하고 서로 자웅을 다투다가 고려 때에 이르러 마한·진한·변한을 병탄했으니 이것을 삼한통합이라 한다. 태조(이성계)가 용상에 오른 초기에 국토 밖으로 땅을 더욱 넓혀 … 사천리가 돼 통일의 대업을 이뤘다. … 이제 국호를 대한으로 정하고 이 해를 광무 원년으로 한다”<고종실록>.

명의 제후국으로 받은 조선(朝鮮)이란 국호를 버리고 대한이라는 자주적 국호를 채택함으로써 자주독립, 특히 항일독립 의지를 국내외에 명확히 밝힌 것이다. 이런 뜻을 가졌기에 새 국호는 국민에게 사랑을 받았다. 나아가 한반도 군사침략을 노골화하던 일제와 싸우는 항일정신의 근간이 됐다. 반면 일제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국호였다.


일제는 대한제국 강점 이후 집요하게 ‘대한 말살’ 정책을 펼쳤다. 우선 국호를 대한에서 조선으로 되돌렸다. 또 대한제국 시기에 ‘대한’이란 명칭을 사용하던 모든 신문·잡지·단체의 이름에서 대한을 빼도록 강제했다. 대한매일신보는 매일신보로, 대한민보는 민보로, 대한신문은 한양신문으로 바꿨다. 거부하면 모조리 판매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나라의 근본인 백성은 목숨 걸고 ‘대한’을 지켰다. 일제의 총칼을 피해 일시적으로 지하에서만 쓰이던 ‘대한·신대한·한국·신한·한’은 대동단결선언(1917년 8월), ‘대한독립선언서’(1919년2월)부터 대낮에도 쓰였다. 특히 광무황제의 일제 독살에 울분을 터뜨린 국민의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에서는 ‘대한독립만세’(조선독립만세가 아니었다)를 외쳤다.

이런 정신은 상해 임시의정원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는 토대가 됐다. 또 1940년 9월17일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전례식에서 광복군 창립일을 대한제국 국군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된 1907년 8월1일로 정했다.

◆‘백성의 나라’라는 국체

‘민국’에 대해선 1912년에 성립된 ‘중화민국’의 민국을 따랐거나 ‘민주국가’의 줄임말이라는 오해가 있었다. 중화민국의 민국은 공화정이라는 뜻이고 민주국가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라는 의미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민국’은 중화민국이 선포되기 200여년 전부터 조선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말이다. 그 뜻은 사대부들의 신분제적 ‘양반국가’를 뛰어넘어 ‘백성의 나라’로 이해됐다. 이 민국은 백성들이 직접 공무를 담임하고 참정함으로써 자치하는 나라를 지향하는 ‘맹아적 국민국가’ 또는 ‘국민화 국가’였다.

이 말은 “백성은 친할 수 있지만 아래 할 수 없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고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는 <서경(書經)>에서 유래했다. 또 “천하에 나면서부터 귀한 사람은 없다”, “백성들은 임금을 표준으로 자치한다”는 공자의 말과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장 가볍다”는 맹자의 말에 따라 성립된 정치사상에서 발전됐다.

광무황제가 1909년 3월15일 밀지로 내려 보낸 ‘서북간도 및 부근 각지 인민 등 여러 곳에 대한 칙유’에서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 했으니 이것은 나 한 사람의 대한이 아니라 실로 오로지 그대들 만백성의 대한이라는 것이니라. 독립이라야 오직 나라이고 자유라야 오직 백성이니…”라고 밝힌 것에서도 명백히 확인된다.

◆남북통일 이후 국호, 대한민국

한반도는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뒤 불행히 남북으로 분단됐다. 국호도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으로 나뉘었다. 항일독립운동 과정에서 민족계열은 대한제국의 항일정신을 계승한다는 의식에서 대한독립단·대한독립군·한국독립당 등의 명칭을 사용한 반면 좌익계열은 고려공산당·조선공산당·조선의용대처럼 고려나 조선을 썼던 아픔이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남북이 통일됐을 때 통일된 나라의 국호(國號)는 무엇이 돼야 할까. 일부에서는 남한의 ‘대한’과 북한의 ‘조선’에서 한 글자씩 따서 ‘한조’나 ‘조한’으로 하고 뒷부분은 ‘민주공화국’이나 ‘연방국가’로 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하지만 통일 이후에도 국호는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 대한민국이란 ‘대통합된 한민족의 국민국가’를 뜻하기 때문이다.

영문 표기도 현재의 ‘Republic of Korea’(ROK)가 아니라 'Nation State of Great Korea'(NOK 또는 NGK)로 해볼 만하다. 대한제국기 외국 선교사들이 발간한 영문 월간지 <한국휘보>(The Korean Repositary)에서 ‘대한황제’를 ‘The Emperor of Great Han’으로 표기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는 우리 좋은 전통을 살리고 외국의 좋은 점을 살려 만든 ‘패치워크문명’의 사례인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8호(2018년7월11 ~ 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