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달 새 두차례나 고혈압 치료제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중국 제지앙화하이가 제조한 발사르탄에 이어 주하이룬두에서 제조한 대봉엘에스 발사르탄에서도 기준치 이상의 N-니트로소디메틸아민(이하 NDMA)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지난달 9일 고혈압치료제 115개 품목(54개사)을 잠정 판매중지한 데 이어 최근 59개 품목(22개사)을 추가로 판매중지 조치했다. 의료현장에선 정부의 고혈압약 안전성 점검이 부실하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원식 식약처 의약품안전국장이 지난 6일 충북 청주시 식약처에서 발사르탄 고혈압약 관련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NDMA 검출 고혈압약 또 나와

식약처는 지난 6일 “NDMA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제조공정을 시작으로 모든 발사르탄(52개사, 86개 품목)에 대해 순차적으로 자료 검토 및 수거 검사를 진행한 결과 대봉엘에스가 제조한 일부 발사르탄제품에서 NDMA 잠정관리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대봉엘에스 발사르탄제품의 잠정 판매·제조중지 조치를 취하고 해당 원료를 사용해 제조된 완제의약품에 대해서도 판매중지·처방제한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NDMA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 암연구소(IARC) 분류상 2A군(인간에게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에 해당한다. 식약처에 따르면 이번에 발사르탄이 검출된 고혈압약을 복용 중인 환자는 총 18만1286명이다. 이 의약품을 처방한 의료기관은 7625개소, 조제약국은 1만1074개소다. 특히 이들 중 1만5000여명은 지난달 발사르탄 파문으로 이미 한차례 재처방·재조제를 받은 환자로 알려졌다. 

결국 이들은 자신이 복용하는 고혈압약에 발암물질이 있다는 정부 발표에 놀라 새로운 약으로 바꿨지만 또다시 바꿔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정부와 해당 약을 처방한 의료기관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A약사는 “식약처에서 고혈압약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약을 바꿔줬는데 한달 뒤에 바꾼 약에도 문제가 있다면 약국은 뭐가 되는 거냐”며 “정부의 안전 감시망에 구멍이 났는데 고혈압 환자의 분풀이는 일선 약국에서 감수하는 게 맞느냐”고 반문했다.

인천에서 내과 의원을 운영하는 B의사도 “제지앙화하이의 발사르탄이 들어간 약을 처방하다 지난달 식약처 발표 이후 약을 바꿨는데도 NDMA가 또 나왔다”며 “한달 새 두번이나 환자에게 고혈압약 교체 얘기를 하니 환자들의 불만이 매우 크다”고 토로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국내 허가된 NDMA 검출 고혈압약 중 최고 용량인 320㎎제품을 3년간 복용한 경우 자연발생적 발암 가능성을 더해 1만1800명 중 1명이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4년 동안 320㎎제품을 복용한 경우 8000명 중 1명이 암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유럽의약품안전청(EMA)의 경우 7년간 복용 시 5000명 중 1명이 암에 걸릴 수 있다고 발표했다.


만성질환인 고혈압의 특성상 환자는 장기간 고혈압약을 복용해야 한다. 결국 병·의원의 처방에 의한 복약지도에 성실히 따르는 환자일수록 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았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에 식약처가 내놓은 대책은 고혈압 환자들이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하지 말고 문제 의약품을 처방받은 의료기관에서 상담을 거쳐 재처방을 받을 것을 당부한 게 전부다.


문제는 아직 조사를 진행 중이어서 추가로 NDMA가 검출된 고혈압약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 의료현장과 고혈압 환자들이 어떤 약을 처방 및 복용해야 하는지를 두고 혼란스러워 하는 이유다.

정부가 NDMA 검출 고혈압약 환자 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유재중 의원(자유한국당)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문제가 된 원료의약품이 국내 허가를 받은 시점은 2015년 9월로 이듬해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이를 한번이라도 처방받은 환자는 37만6737명에 달한다.

하지만 정부는 해당 약 115개 품목을 복용한 17만8536명에 대해서만 처방과 조제 사실을 확인하고 재처방 받도록 했다. 이는 정부가 지난달 9일 기준으로 해당 약의 복용기간이 남아 있는 환자 수만 집계했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실제 문제의 고혈압약을 처방받은 환자 수가 2배가 넘는데도 정부가 통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해당 약을 한번이라도 복용한 적이 있는 전체 환자 38만여명에 대해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역학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진료실 앞에 발사르탄 성분이 들어간 고혈압약 판매 중지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의약품 수거·검사시스템 구멍

의약계 안팎에선 그간 식약처에서 의약품 수거와 검사를 실시할 때 시중 유통 완제의약품을 중심으로 조사한 게 문제라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 식약처는 원료의약품에 대해선 사실상 완제의약품 제조사에 관리감독 권한을 맡겨왔다.

식약처는 발사르탄 고혈압약 파문이 잇따라 불거지자 앞으로 원료의약품과 관련한 위해정보가 확인되는 등 수거·검사가 필요한 영역을 면밀히 살펴 원료의약품에 대한 안전성 검사도 강화하겠다고 뒷북 대책을 내놓는데 급급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이번 정부의 대처 방식을 본 국민들이 앞으로 의약품을 신뢰하고 복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국민에게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상세한 안내를 통해 사회적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 및 지속적인 사태 발발에 대한 관계자 문책이 필요하다”며 “복제약 생동성시험 및 약가 구조와 더불어 식약처의 전면적 개편이 필요하고 식약처장은 즉시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시약사회 관계자는 “잇단 발사르탄 고혈압약 사태로 의약품의 안전성을 무시한 무분별한 규제 완화정책의 민낯이 드러났다”며 “보건당국은 위·수탁 대상 의약품의 조건과 생동성시험 관리를 강화하는 등 제네릭의 심사·허가제도 및 약가정책을 개선하고 원료의약품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분별한 제네릭 난립과 의료기관 영업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제네릭시장의 행태가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발사르탄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53호(2018년 8월15~2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