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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가을여행] ① 올드 타운 센트럴 vs 삼수이포
가슴이 두근거리는 가을, 선선한 바람을 타고 떠나고 싶다면 홍콩을 주목하자. 눈부신 야경과 쾌청한 날씨, 와인과 미식 페스티벌. 홍콩의 가을은 한없이 즐겨도 마르지 않는다. 서울에서 단 3시간이면 된다. 가깝기 때문에 여행을 귀찮아하는 남친을 꼬드기기에도 그만이다.
청춘여행에는 그만큼 신선하고 독특한 즐길거리가 필요한 법.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인 올드 타운 센트럴이 손짓한다. 새롭고 세련된 트렌드와 감각적인 요리, 황홀한 야경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지역이다.
구룡반도 북쪽에는 요즘에 뜬 삼수이포가 있다. 공장지대에 들어선 아티스트 레지던시와 저렴한 가격의 맛집과 디저트, 홍콩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골목 풍경으로 홍콩 젊은이들에게 인기다. 서로 무척 다른 두 지역은 홍콩의 다채로운 매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즐기니까 청춘이다… 자유여행 ‘올드 타운 센트럴’
트렌드, 힙, 스웩…. 어떤 말로 표현해도 좋다. 홍콩이 얼마나 근사한 도시인지 알고 싶다면 올드 타운 센트럴로 가야 한다. 이곳이야말로 ‘트렌디’하고 ‘스웩’에 넘치며 홍콩의 셀럽들이 출몰하는 곳이어서다. 올드 타운 센트럴은 이름 그대로 홍콩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서 깊은 동네다. 영국의 통치가 시작되고 홍콩이라는 도시가 탄생한 이래, 그 짧고 드라마틱한 역사의 흔적이 길목마다 고스란히 남았다. 하지만 홍콩의 젊은이들에게 이곳은 그저 도시에서 가장 멋진 놀이터다.
게다가 이곳에는 마법의 계단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옥외 에스컬레이터인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올드 타운 센트럴의 가장 중요한 거리들을 빠짐없이 지난다. 에스컬레이터에 오르기만 하면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홍콩의 비탈길도, 비 오는 날의 고단함도 골칫거리가 아니다. 목적지 바로 앞까지 여행자의 걸음을 배웅하기 때문이다. 건물과 직접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하다. 또 에스컬레이터 양쪽으로 이어지는 홍콩 특유의 풍경들 역시 근사하다. 이곳이야말로 걷기 여행자의 천국인 셈이다.
올드 타운 센트럴에서는 타이트한 일정표를 안 짜는 게 오히려 낫다. 미드레벨에스컬레이터를 여정의 중심으로 삼고 발길가는 대로 곳곳을 돌아보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문을 연 타이퀀의 컨템포러리 갤러리에서 홍콩 아티스트의 전시를 느긋하게 감상하는 건 어떨까. 또 주말의 수제 맥주펍에서 홍콩멋쟁이들 사이로 슬쩍 끼어들어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이곳에서 단 하나 괴로운 것은 식당을 ‘찜’하는 시간이다. 세련된 레스토랑부터 허름한 국수가게까지 홍콩 최고의 맛집들이 모여 있어서다.
여행자의 직감과 튼튼한 두 다리가 새로운 길로 인도하는 가운데 이번 가을 한번을 들러봐야 할 곳들이 있다. 먼저 여행 도중 감옥과 경찰서를 만난다면 입맛이 개운치 않은 건 뻔할 터. 그러나 올드 타운 센트럴에서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올 가을 홍콩에서 가장 ‘핫’한 타이퀀 헤리티지 앤 아트센터(타이퀀) 때문이다. 타이퀀은 광둥어로 ‘큰집’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감옥을 뜻하는 은어와 같다.
란콰이퐁과 소호 사이 드넓은 블록 하나를 통째로 차지한 타이퀀은 원래 센트럴경찰서였다. 경찰서 뒤편에는 범죄자를 수용한 감옥이 붙어 있었고 높은 벽돌 담장이 16동의 건물을 에워쌌다. 1864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1995년 문화재로 지정됐고 10년 간 리노베이션을 해 지금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은 역사적 유산을 고스란히 살리는 동시에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와 공연장을 새롭게 덧붙여 우아한 건축적 풍경으로 완성했다. 올드 타운 센트럴이 그러하듯 타이퀀에서는 홍콩의 과거와 미래가 흥미롭게 만난다. 죄수들을 가뒀던 감옥에서는 헤리티지 상설 전시를 둘러볼 수 있는데, 20세기 초중반 교도소의 생활상과 당시 물가, 면회실의 분위기 등을 재미있는 인터랙티브 전시로 재현했다.
JC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에서는 젊은 홍콩 작가들의 전시를 한 해 6~8회 개최할 예정이다. 홍콩은 세계적인 아트 페어들을 유치하며 예술 시장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인구 밀도와 지대가 워낙 높아 시내에서 큰 규모의 미술관을 찾기 힘들었다. 홍콩 자키센터의 후원 아래 오픈한 타이퀀은 ‘홍콩의 아트 신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게 만들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홍콩 예술가들의 낯설고 경쾌한 감각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그저 즐겁다.
JC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의 우아한 콘크리트 나선 계단을 내려온 뒤 거리로 나서기 아쉽다면 경찰서 앞마당을 둘러싼 레스토랑과 찻집, 숍을 구경하는 시간도 즐거울 것이다. 예술서적출판사 타셴(Taschen)이 아시아 처음으로 오픈한 서점이 여기에 있다. 홍콩 최고의 찻집 록차 티하우스 분점에서는 질 좋은 보이차와 신선하고 다양한 녹차를 마시거나 구입할 수 있다.
메르세데스 Me는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와 홍콩의 레스토랑 그룹 맥시멈 컨셉트의 협업으로 탄생한 다이닝 라운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왼쪽에는 F1 하이브리드 레이스 카가, 오른쪽에는 대리석과 청동으로 장식한 칵테일 바가 눈에 들어온다. 레이싱 카와 칵테일이라니, 남자들을 들뜨게 하는 데 이 이상의 조합이 있을까.
스타벅스 마니아부터 수제 맥주 애호가까지 모든 사람들이 환호할 소식이 있다. 홍콩 스타벅스가 지난 4월부터 맥주와 와인을 판매한 것. IFC 몰 레벨 2에 위치한 스타벅스 리저브 스토어에서 이 특별한 메뉴들을 경험할 수 있다.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답게 스타벅스는 평범한 술을 파는 대신 홍콩의 맥주 양조장과 협업해 특별한 풍미의 맥주를 두 종류 출시했다. 모카 브라운 에일은 초콜릿과 스파이시한 향이 먹음직스럽다. 캐러멜 마키아토 크림 에일은 스타벅스 컬럼비안 커피를 재료로 사용해 달콤하고 고소한 커피 향을 냈다. 레드 와인 4종과 화이트 와인 3종, 이탈리아산 스파클링 와인 프로세코로 구성된 와인 메뉴 또한 시선을 끈다.
홍콩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일반적으로 야경은 내려다보거나 멀리서 감상한다. 홍콩 야경의 첫 번째 포인트는 빅토리아 피크 전망대고 두번째는 스타의 거리에서 바라보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일 것이다.
그런데 도심 한복판 화려한 마천루의 바로 옆에서도 눈부신 야경을 바라볼 수 있다. 아르마니 하우스 2층의 루프톱 바 프리베 얘기다. 플라워숍 아르마니 피오리부터 아동복을 판매하는 아르마니 주니어까지,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모든 브랜드를 망라한 아르마니 하우스는 오래전부터 패션 피플의 버킷 리스트에 올랐다. 아르마니 하우스 2층에 위치한 아르마니 프리베는 붉은 조명을 강조한 인테리어로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칵테일 한잔은 155 홍콩 달러. 제법 비싼 가격이지만 테라스의 야경과 시그니처 칵테일의 화려한 재료를 고려할 때 그만큼의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소호의 한쪽 구석, 필 스트리트는 가파른 경사를 따라 이어지는 골목을 찾아보자. 도시를 관통하는 중심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맥주 애호가와 젊은 힙스터에게 천국이다. 골목 어귀부터 센트럴에서 가장 멋지고 진지한 크래프트 비어 펍이 빼곡하다. 더 라운드하우스는 유쾌한 분위기와 전 세계의 수제 맥주, 쫄깃하고 기름진 비어캔 치킨으로 유명하다. 이곳 주인은 ‘맥주 소믈리에’라고도 불릴 ‘비어 저지’(Beer Judge) 자격을 취득했다. 독일, 일본, 뉴질랜드 등 각국의 수제 맥주가 다채롭지만 특히 8종에 이르는 홍콩산 수제 맥주에 호감이 간다.
◆어서와, 처음이지… 일상여행 ‘삼수이포’
홍콩 지도를 편다. 구룡반도의 깊숙한 북서쪽에 삼수이포가 있다. 홍콩을 제집처럼 오가며 센트럴의 골목 이름까지 외워버린 여행자라도 삼수이포는 낯설다. 도심의 화려한 빛은 사라지고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잿빛 건물 아래로 보통 사람들의 생활이 펼쳐진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시끌벅적한 홍콩식 전통시장의 풍경은 친근한 일상이면서도 한없이 낯설다. 삼수이포는 관광객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지역이었다. 1950년대에는 홍콩으로 망명온 중국 난민들을 수용하던 판자촌이었다. 홍콩 최초의 공공 임대주택이 설립된 이후에는 서민들의 주거지이자 공업단지였다.
명품 매장이나 세련된 부티크 하나 없는 삼수이포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젊은 예술가들 덕분이었다. 버려진 공장을 개보수해 아티스트 레지던시로 탈바꿈시킨 JCCAC가 그 시작이었다. 젊은 디자이너와 예술학도들이 삼수이포를 찾기 시작했고 낡은 거리엔 새로운 활기가 돌았다.
또 이곳에 흘러든 아티스트들 역시 삼수이포의 혜택을 받았다. 보통 사람들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생활양식이 예술보다 흥미롭고 풍요로울 때가 있다. 왕가위 감독이 <일대종사>의 전통의상 디자이너를 발견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저 유명한 <영웅본색>의 감독 오우삼 또한 자신이 태어난 삼수이포의 풍경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홍콩 디자인을 세계에 알린 브랜드 G.O.D.의 스튜디오 또한 이곳에 있다. ‘날 것 그대로의 영감’은 삼수이포를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일 것이다.
삼수이포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고 있는 아티스트들과 스쳐지나고 싶다면 JCCAC나 SCAD 디자인학교를 거닐어보자. 홍콩의 옛 건축 형식을 제각각 흥미롭게 개조한 두 건물은 미래의 디자이너들로 넘친다. 낯선 향기와 색깔로 흘러넘치는 재래시장 페이 호 스트리트 마켓이 있다. 골목 모퉁이의 노천 식당이나 전통 디저트 ‘띰반’을 파는 가게에서 홍콩식 ‘B급’ 고메를 찾아보자.
홍콩 도심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가격이 저렴하지만 맛이 없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조촐한 동네 식당에서 출발해 미쉐린 원스타를 얻은 후 뉴욕까지 진출한 딤섬 가게 팀호완의 본점이 이곳에 있다. 이웃 동네를 산책하듯 걷다가 셔터 아트 프로젝트와 마주치면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들자. 문 닫은 상점들의 셔터 위로 젊은 작가들이 그린 벽화가 펼쳐진다.
SCAD는 미국과 프랑스 등 세계 곳곳에 캠퍼스를 둔 디자인학교다. 세계적인 이 디자인학교가 웅장한 네오 클래식 형식의 옛 법원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북구룡 법원 건물의 역사를 무심코 지우지 않기 위해 SCAD의 리노베이션은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법정과 감방 등 특별한 공간을 그대로 보존하고 문과 창문, 벽 또한 원형 그대로 남겼다. 이러한 과정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문화유산 보전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웹사이트에서 방문 사흘 전까지 캠퍼스 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2회, 또 토요일은 매월 셋째주 견학할 수 있다.
삼수이포 팀호완의 이름은 이미 전설이 됐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14석 규모의 작은 가게에 불과했다. 하지만 1년 후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하나를 얻었고 현재는 하와이와 뉴욕에도 매장을 열었다. 팀호완의 오너 셰프는 포시즌스 호텔의 광둥식 레스토랑 렁킹힌에서 솜씨를 쌓은 후 이곳을 만들었다.
현재 팀호완을 대표하는 본점이 삼수이포에 있다. 마흔개가 넘는 지점들 중 오너 셰프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가게다. 25종의 딤섬 메뉴는 모두 저렴하고 맛있다. 새우 딤섬 하가우, 연잎 밥, 돼지고기로 속을 채운 차슈바오가 가장 인기 높다. 전통적인 조리법과 달리 팀호완의 것은 바삭바삭하고 빵 안에 차슈를 넣었다. 빵의 식감과 달콤한 맛, 차슈의 짠맛이 입 안에서 환상적으로 섞인다.
홍콩에서 두부 푸딩은 위안이다. 가난했던 60년대 사람들은 치즈케이크나 아이스크림 대신 시럽을 뿌린 두부로 일상의 위안을 얻었다.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그리운 맛이 홍콩 젊은이들 사이에서 다시 인기를 얻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삼수이포의 컹 와 빈커드 팩토리는 4대째 운영하는 두부 푸딩 가게다. 60년 전 창업자가 만든 래시피 그대로, 지금도 맷돌로 콩을 갈아 정성스럽게 두부를 만든다. 입 안에서 홀랑홀랑 녹아내리는 두부의 식감과 감미로운 생강 시럽은 그야말로 최고의 가성비다.
도시에 밤이 찾아온다. 황혼마저 사라지고 어둠이 내리면 거리의 분위기도 완전히 변한다. 어둠이 내릴 즈음, 삼수이포의 다이파이동 오이만상은 손님들이 앉을 테이블과 의자를 꺼낸다. 다이파이동은 노천식당을 일컫는 광둥어다. 홍콩의 다이파이동은 저녁 무렵 상점들의 셔터가 닫히면 그 앞에 좌석을 펼쳐놓고 요리를 낸다.
1956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오이만상은 홍콩 5대 다이파이동으로 꼽힌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 백종원 셰프가 맥주와 음식을 즐겼던 식당이기도 하다. 요리도 맛있지만 백 셰프의 표현대로 이국적인 ‘분위기에 취한다’. 시끄러운 광둥어 사이에서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맥주의 맛은 잊기 힘들다. 백 셰프의 선택을 따라 마늘 프레이크를 듬뿍 넣은 게 볶음과 쇠고기 간장 볶음을 주문해보자.
열대과일 마니아라면 환호를 내지를 룩 람 디저트 가게가 있다. 30년 전 오픈한 가게의 분위기는 낡고 평범하지만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는 홍콩식 망고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망고 주스와 포멜로를 끼얹은 망고 푸딩을 한입 물면 새콤달콤한 풍미가 입안 가득 흘러넘친다.
디저트의 가격은 HKD 20불 안팎으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달콤하게 졸인 팥과 타로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두부 푸딩도 인기가 높다. 홍콩 허류산 망고디저트는 이미 한국시장에도 상륙했으나 이곳에서는 그 절반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사진·자료제공=홍콩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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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웅 기자
박정웅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