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 홍콩 누아르의 기억을 간직한 멋진 아저씨들의 홍콩 소울여행이 시작된다. /사진=홍콩관광청

[홍콩 가을여행] ② 어제의 추억, 오늘의 트렌드가 감각을 깨우는 곳


바람에 펄럭이는 ‘바바리코트’에 선글라스, 입에 문 성냥개비. 주윤발과 유덕화, 장국영으로 이어지는 홍콩 누아르 주인공들 얘기다. 홍콩영화의 황금기는 지났으나 어린 시절 영웅은 여전히 가슴에 살아있다. 타닥~탁. 지금도 홍콩 뒷골목에는 수명 다한 형광등이 명멸할까.


멋진 남자에게는 추억이 있다. 1980~90년대 청소년과 청년기를 보낸 세대는 이같은 누아르 이미지를 통째로 공유한다. <영웅본색>의 현장은 여전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홍콩이라는 도시의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센트럴과 침사추이의 뒷골목에서 그 시절 스크린의 홍콩이 숨쉰다. 생전 장국영이 좋아한 광둥식 레스토랑부터 주윤발이 단골이라는 서민식당까지, 스타들의 흔적을 쫓으며 아련한 추억여행을 완성할 수 있다.

주윤발이 즐겨 찾는다는 카우룽 시티의 허름한 식당가. /사진=홍콩관광청

멋진 남자에게는 취향이 있다. 취향은 트렌드를 빠르게 읽는 눈일 수도 있다. 또 때로는 경험과 연륜이 뒤엉킨 안목 정도로 볼 수 있다. 홍콩은 근사하게 나이 들어온 남자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여행지다. 홍콩의 장점은 명품 숍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세계적으로 트렌디한 브랜드들이 ‘아시아 최초’ 타이틀을 달고 상륙하는 도시가 바로 홍콩이다. 테일러링 수트의 전통 역시 유구하다.

맛있는 음식을 느긋하게 즐기고 패션과 문화를 체험한 뒤 챙겨야 할 게 또 있다. 바로 창의적인 칵테일이나 독특한 수제맥주를 맛보는 것. 추억여행은 나이트 라이프에서 종지부를 찍는다. 어제의 추억과 오늘의 트렌드가 감각을 일깨우는 도시. 멋진 ‘아재’, 이번 가을 홍콩 소울여행이다.


◆추억과 소울의 맛… 셀럽 단골 명소

여전히 홍콩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식도락가로도 유명한 주윤발의 맛집을 탐방해보자. 그가 즐겨 찾는 식당들은 주로 구룡반도 카우룽 시티에 모여 있다. 카우룽 시티는 1998년까지 옛 홍콩국제공항이 있던 곳이다. 도심 한가운데 공항이 있어 신선한 식재료와 맛있고 저렴한 식당들이 곧잘 발견되곤 했다. 주윤발의 단골집인 팀 초이 키도 그 중 하나다. 1948년 처음 문을 연 뒤 3대를 이어왔다. 완탕, 콘지, 장펀, 포크찹 등 홍콩 서민음식을 대표하는 메뉴를 내놓는다.


팀초이키의 '어부의 죽' 뎅짜이 콘지. /사진=홍콩관광청

주윤발이 즐겨 먹는 요리는 뎅짜이 콘지와 야오티우 장펀이다. 뎅짜이 콘지는 ‘어부의 죽’이라는 별명이 붙은 요리다. 돼지 껍데기와 오징어, 쇠고기, 땅콩을 넣어 죽으로 끓인다. 팀초이키의 콘지는 오전에 3시간30분 동안 푹 끓여내기에 식감이 부드럽고 풍미가 진하다. 야오티우 장펀은 튀김 과자를 쌀 전병으로 돌돌 만 후 간장을 뿌려 먹는 일종의 딤섬이다. 과자의 바삭바삭한 식감과 전병의 부드러운 감촉이 근사하게 어울린다. 홍콩 어디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흔하고 저렴한 메뉴들이나 인스턴트를 절대 쓰지 않는다. 또 옛 조리법을 고집스럽게 고수한 덕분에 주윤발을 비롯한 홍콩 식도락가들이 먼 곳에서도 찾아오는 식당이 됐다.

홍콩에서만 만나는 보양식이 있다. 센트럴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주변, 소호 한복판에 위치한 서웡펀은 120년 역사를 자랑한다. 1895년 중국에서 처음 문을 연 후 1940년대 홍콩 센트럴로 옮겨온 이곳의 대표 요리는 뱀탕이다. 뱀탕은 중국 남부지역에서 인기 높은 전통 보양식이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겨울의 으슬으슬한 추위를 버티기 위해 뱀탕을 먹은 것이다.

서윙펀의 파인애플 소스 탕수육. /사진=홍콩관광청

서윙펀 뱀탕은 뱀뼈와 닭뼈, 돼지뼈를 24시간 동안 고은 수프에 신선한 뱀 고기와 진피, 생강을 넣어 끓여낸다. 뱀은 중국 절강성의 양식장에서 철저한 위생 관리를 통해 들여온다. 모험적인 보양식에 큰 흥미가 없다 해도 서웡펀은 한번 들러볼 만한 가치가 있다. 9년째 미쉐링 맛집으로 선정될 정도로 요리 솜씨가 뛰어나서다. 파인애플 소스 탕수육, 오리덮밥, 진피와 향초로 끓여낸 녹두죽 등 맛있는 전통메뉴가 다양하다.

홍콩 셀럽이 꼽는 최고의 광둥식 식당이 있다. 바로 푹 람 문의 완차이 본점이다. 생전 장국영은 이렇게 말했다. “그곳 음식을 좋아해요. 가격이 비싸 매일 갈수는 없지만요.” ‘그곳’은 바로 ‘부자들의 카페테리아’ 푹 람 문이다. 1972년 문을 연 이래 고위정치인과 재벌들, 최고의 스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롤스로이스, 마세라티 등 고급 자동차가 문전성시를 이룬다. 셀럽의 근황을 담으려는 파파라치도 종종 출몰할 정도.


고급 레스토랑인 푹 람 문. /사진=홍콩관광청

그러나 가격이 높을까봐 지나치게 겁먹을 필요는 없다. 맛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대의 메뉴를 제법 찾아볼 수 있다. 점심의 딤섬 런치메뉴도 여행자가 감당할 만한 가격이다. 푹 람 문은 광둥가정식의 전통을 고수하며 아주 훌륭한 요리를 낸다. 새콤하게 버무린 목이버섯, 입안에서 살살 녹는 크리스피 치킨, 달콤한 차슈 바비큐 등 섬세한 풍미는 잊기 힘들 정도다. 화려한 재료들 사이 얼핏 소박해 보이는 새우돼지고기볶음밥도 꼭 주문하자. 고슬고슬한 밥과 입안 가득 번지는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다.

◆가성비에 가심비… "스타일 살아있네~"

데노보멘 내부. /사진=홍콩관광청

센트럴의 데노보멘은 이탈리아산 고급 가죽 수제화다. 질 좋은 구두를 찾는 젊은 층과 금융가 엘리트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1990년대부터 최고급 수입 구두를 유통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아시아 남성의 발과 체형에 편안하게 맞는 구두를 고급스럽게 제작한다. 버팔로, 말가죽, 양가죽 등 질 좋은 명품 가죽을 사용한다. 수제 구두와 카우보이 부츠, 로퍼, 웨딩 슈즈 등 종류도 다양한다. 연중 할인행사를 자주 갖는데 캐주얼 슈즈는 650 홍콩달러(HKD), 가죽 수제화는 2300 홍콩달러 정도다. 

50년 경력 장인들이 만드는 테일러링 수트가 있다. 홍콩은 이미 20세기 초부터 질 좋은 테일러링 수트로 유명한 도시였다. 상하이에서 건너온 양복 장인들이 홍콩에 터전을 잡았고 식민지시대 영국 신사들의 엄격한 패션 감각 역시 한몫했다. 센트럴의 본햄 스트랜드는 ‘100% 메이드 인 홍콩’을 표방하는 테일러링 숍이자 오랜 문화적 유산을 이어가려는 사회적 기업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초인종을 누르는 입구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소박하면서 고풍스러운 사무실이 기다린다. 사무실 안쪽의 테일러링 작업실에는 경력 30~50년의 나이든 재단사들이 바쁘게 손을 놀린다. 천장에는 나무 팬이 천천히 돌아가고 창밖으로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풍경이 스친다.

본햄 스트랜드. /사진=홍콩관광청

홍콩에서 이보다 더 낭만적인 패션숍이 있을까. 본햄 스트랜드는 수익을 추구하기보다 은퇴한 재단사들의 복지와 홍콩식 테일러링 수트의 전통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브랜드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로로 피아나 등과 같은 이탈리아 원단, 조개와 뿔 소재의 단추를 쓴다. 모두고급 재료다. 하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옷을 맞출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서 비롯한다. 테일러링 수트는 패브릭과 라펠, 소매, 주머니까지 고객이 원하는 대로 주문할 수 있다. 다만 완성하기까지 일정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에 여행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쇼핑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가격대와 매력적인 분위기를 건너뛰기에는 다소 아쉽다. 방문 전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아이웨어 크로미스 매장 외관. /사진=홍콩관광청

성완의 포호는 고즈넉한 골목들로 이뤄진 동네지만 현재 홍콩에서 가장 ‘쿨’한 트렌드를 보여주는 지역이기도 하다. 최근 한쪽 모퉁이에 근사한 안경 가게가 생겼다. 이탈리아의 비스포크 아이웨어 브랜드 크로미스다. 이탈리아에서 안경을 디자인하고 일본 장인들이 안경테와 렌즈, 실리콘 코받침을 정밀하게 제작한다. 이탈리아 디자인과 일본 기술의 만남이다. 선글라스를 비롯해 바로 구입해갈 제품이 수두룩하다. 숍 한쪽 비스포크 코너에서는 고객이 원하는 소재와 디테일로 ‘나만의 안경’을 주문할 수 있다. 헤이즐 앤 허시 로스터의 커피바가 매장에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슈샤인 숍 '태슬'. /사진=홍콩관광청

센트럴의 랜드마크 쇼핑몰 지하 1층은 남성들을 위한 패션 매장들로 가득하다. 고급 브랜드가 즐비한 복도를 지나다가 문득 시선을 사로잡는 풍경이 있다. 아케이드 복도 한쪽 호화로운 방에서 구두닦이 서비스를 받는 남자들 얘기다. 이곳은 고급 남성 수제화 편집 매장 태슬의 슈샤인 서비스 부스다. 느긋하게 앉아 신문이나 책을 읽는 동안 수십년 경력의 장인이 신발을 정성 들여 닦아준다. 구두의 색깔에 맞춘 고급 왁스나 크림을 사용한다. 가장 기본적인 ‘베이직 퀵 샤인’부터 오랜 시간을 들여 거울처럼 윤기를 내는 ‘미러 피니싱’까지 서비스가 다양하다. 구두를 닦은 뒤 바로 옆 퓨엘 커피숍의 맛있는 에스프레소 한잔이며 홍콩 제일의 신사로 거듭난 기분일 것이다.

◆소울여행의 종지부는 ‘나이트 라이프’

문전성시를 이룬 오이만상. /사진=홍콩관광청

도시에 밤이 찾아온다. 황혼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리면 거리의 분위기도 완전히 변한다. 삼수이포의 다이파이동 오이만상은 그제서야 손님들이 앉을 테이블과 의자를 꺼낸다. 다이파이동은 노천식당을 일컫는 광둥어다. 홍콩의 다이파이동은 저녁 무렵 상점들의 셔터가 닫히면 그 앞에 좌석을 펼쳐놓고 요리를 낸다. 1956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오이만상은 홍콩 5대 다이파이동으로 꼽히는 곳으로,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 백종원 셰프가 맥주와 음식을 즐겼던 식당이기도 하다. 요리도 맛있지만 백종원 셰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국적인 ‘분위기에 취한다’. 시끄러운 광둥어 사이에서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맥주의 맛은 잊기 힘들다. 백종원 셰프의 선택을 따라 마늘 프레이크를 듬뿍 넣은 게 볶음과 쇠고기 간장 볶음을 주문해보자. 60~130 홍콩달러 정도면 다양한 메뉴를 실컷 즐길 수 있다.

더에일프로젝트. /사진=홍콩관광청

몽콕의 번화가에서 살짝 벗어난 한적한 골목. 홍콩 크래프트비어의 천국이 애주가의 발길을 기다린다. 더에일프로젝트는 에일애호가부터 젊은 힙스터, 동네주민까지 누구나 유쾌하게 어울리는 펍이다. 반바지를 입거나 슬리퍼 차림에도 상관없이 편안한 분위기가 좋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홍콩산 수제맥주의 풍미다. 사천후추를 사용한 흑맥주부터 오미자로 맛을 낸 에일까지, 홍콩 크래프트비어의 상상력은 놀랍기만 하다. 하나만 고르기 아쉽다면 3종의 맥주를 함께 맛볼 수 있는 맥주 플래터를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아시아 각국의 전통요리에서 영감을 얻은 샌드위치들이 기막히게 맛있다. 거위알 노른자 크러스트를 올린 감자튀김 또한 별미다.

룸309. /사진=홍콩관광청

센트럴의 룸309는 세련된 부티크호텔 더포팅어의 ‘존재하지 않는 바’다. 포팅어호텔은 한층에 오직 여섯 개의 객실만 운영하기 때문에 309호 룸넘버는 존재할 수 없다. 그 이름처럼 룸309는 호텔복도의 정체 모를 철문 안에 숨어있다. 호텔의 또다른 바인 엔보이에서 카드키를 받은 후 룸309의 문을 연다. 바깥에서는 좀처럼 상상할 수 없었던 어둡고 화려한 바가 갑자기 등장한다. 길쭉한 실내를 따라 늘어선 바 좌석에 앉으면 이곳의 독특한 콘셉트만큼 특별한 칵테일을 맛볼 수 있다. 이곳의 시그니처 칵테일은 모두 투명한 색이다. 진토닉처럼 원래 투명한 칵테일이라면 별다를 게 없겠다. 하지만 불투명한 피나콜라다나 어두운 갈색의 올드패션드 등 본래 색이 짙은 칵테일들만 골라 투명하게 완성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비결은 바나나, 피넛버터, 요거트 등의 부재료를 원주와 함께 증류해 풍미를 불어넣은 것. 바의 이름부터 칵테일의 레시피까지 홍콩 최고의 바텐더로 군림한 안토니오 라이의 작품이다.

취화 레스토랑. 차찬탱에서 나이트 라이프의 대미를 장식한다. /사진=홍콩관광청

홍콩의 나이트 라이프를 상징하는 란콰이펑의 길목, 24시간 문을 연 차찬탱이 있다. 차찬탱은 차와 간단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식당을 뜻하는데 홍콩식 분식집이라고 이해해도 괜찮다. 웰링턴스트리트의 취화레스토랑은 파티를 즐기거나 술을 마신 후 허기를 해결하려는 사람들로 늦은 시간까지 붐빈다. 완탕면, 참깨소스를 뿌린 토마토 샐러드, 간단한 파스타, 피시볼 수프, 다양한 토핑을 올린 국수, 햄과 치즈를 끼운 토스트까지 취화의 메뉴는 매우 다양하다. 원하는 메뉴로 해장한 뒤 호텔에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센트럴에서 술집 호핑을 한 뒤 취화의 속풀이와 야식은 나이트 라이프의 화룡점정이다. <사진·자료제공=홍콩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