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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업계 ‘트리플 크라운’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지난달 23일 계열사별 이사회를 열어 유상호 사장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고 밝혔다. 유 부회장의 자리는 정일문 부사장이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해 맡게 됐다.
유 부회장의 사장 재임기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빠르고 길었다. 그는 2007년 47세의 나이로 사장으로 승진해 ‘최연소CEO’ 타이틀을 거머줬다. 이후 무려 11연임을 달성하면서 12년간 한국투자증권 사장을 맡아 증권업계 ‘최장수 CEO’ 타이틀을 받았다.
유 부회장은 1998년 옛 대우증권에 입사해 런던법인 재직 시절 한국 주식 거래량의 5%를 혼자 매매해 ‘전설의 제임스’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직원으로서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고 빠르게 정상의 자리에 올랐으며 그 자리를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지켜냈다는 점에서 3관왕을 차지한 샐러리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30여년의 경력 중 직원으로 11년, 임원으로 19년을 보냈다. 임원 재직 19년 중 12년은 사장을 맡았다.
그는 한국투자증권 사장으로 재직하며 2번의 증시호황과 2번의 위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회사를 업계 최상위권으로 이끌었다. 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10년 주기설’을 사장으로 지켜본 이는 거의 없다.
특히 유 사장의 취임과 퇴진 시점을 돌이켜보면 흥미롭다. 둘 다 시장 상황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유 사장 취임 당시 중국 관련주가 일제히 오르며 증시에 호황이 찾아왔다. 다음해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꼭 10년 만인 올해 초까지 호황장세가 절정에 달했지만 ‘검은 10월’을 겪으면서 업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금융투자업계는 올해 증권사들이 최대실적을 기록하고 내년부터 업황이 악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그는 지난 12년간 요동치는 업황에 많은 증권사가 합병되거나 문을 닫고 업계 순위가 변동한 것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한국투자증권을 업계 최상위권 회사로 성장시켰다. 한국투자증권은 올 3분기 기준으로 당기순이익 4135억원을 기록해 국내에서 영업 중인 56개 증권사 중 가장 높은 수익을 달성했다. 이는 업계 전체 당기순이익의 11.45%에 달한다.
한국투자증권은 증권업계에서 업무강도가 센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는 경영적인 측면에서는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유 부회장은 “세전 경상이익 기준으로 올해 증권업계 사상 역대 최대의 실적이 기대된다”며 “바로 지금이야말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웃으면서 정상에서 내려올 최적기”라고 말했다.
◆유상호의 두가지 ‘자랑’
유 부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나며 자신의 두가지 업적에 대해 “감히 자랑스럽게 여겨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자평했다. 증권업계의 ‘트리플 크라운’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공교롭게도 그가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은 정부의 정책기조와 유사하다. 그는 일선에서 물러나며 남긴 글을 통해 CEO 취임 이후 단연 업계 최고인 138개 기업을 IPO(기업공개)한 것과 경쟁사들과 달리 구조조정 없이 신입 직원들을 지속적으로 채용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2년간 CEO로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매년 최고의 이익을 기록해왔다는 것이 아니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문재인정부는 기업들의 신규 상장을 활성화하고 고용확대를 위한 정책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코스닥시장 활성화 대책을 만들고 문 대통령도 일자리위원회를 만들어 직접 고용을 챙겨왔다는 점에서 유 부회장의 생각과 결이 비슷하다.
유 부회장은 후임자인 정 사장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10여년간 구축한 탄탄한 조직력과 영업력, 조직 구성원 간의 응집력 등 모든 면에서 더욱 도약할 준비가 돼 있다”며 “제 마음이 너무 편하고 뿌듯한 이유”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유 부회장이 그동안 구축한 배경을 기반으로 업계 1위 자리를 지켜내야 하는 소임을 맡았다. 거래대금 감소와 미·중 무역분쟁, 글로벌 경제 악화 등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튼튼한 조직력을 물려받았다는 점은 증권사 CEO로서 첫발을 떼는 정 사장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 부회장은 앞으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예전의 일상적인 오퍼레이션은 내려놓지만 새로운 자리에서 새로운 역할로 회사와 자본시장의 더 큰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큰 어른’으로서 일정 수준의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오랜기간 쌓은 노하우를 통해 아직 회사에 기여할 부분이 많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그는 이번 승진으로 명목상 한국투자금융그룹 내 최고 직책을 맡게 됐다. 한국투자금융그룹에는 회장 없이 부회장만 3명이다. 다만 김남구 부회장은 한국금융지주 오너로서 사실상 회장 위치다. 유 부회장이 부회장으로서 그룹에서 차지할 역할과 그 성과에 이목이 쏠린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9호(2018년 12월5~1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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