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전경. /사진=뉴시스 박진희 기자
한국은 어떻게 식민지배와 6·25전쟁으로 인한 자산파괴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민주화를 달성했을까. 삼성전자는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세계 1위가 됐고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빌보드차트 1위에 올라 K-Pop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을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당연시됐던 일이 기적처럼 현실이 되는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에선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우리의 인문학적 바탕을 찾아본다. -편집자-

공권력과 청와대 비서실이 위기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화염병 테러를 당했고 유성기업 노조가 담당 임원을 폭행했다. 대통령 의전을 맡았던 비서관이 음주운전으로 면직됐고 공직사회기강을 잡으라고 만든 민정수석실 아래의 특별감찰반원이 근무시간에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났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건 대낮에 벌어져 국민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최근 빚어진 이 같은 불상사는 ‘믿음으로 사귀되 위엄이 있어야 길하다’는 뜻을 지닌 ‘주역’의 궐부교여위여길(厥孚交如威如吉)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임금도 부하를 믿고 믿음을 나누는 부드러움이 필요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큰일을 하는 만큼 부드러움만으로는 부족하고 엄숙한 권위로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을 지닌다. 부드럽게만 대하면 아래와 주변 사람들이 안이해져 역심(逆心)과 도심(盜心)이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서릿발 같은 위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처럼 정치는 부드러운 혀와 강한 이가 있는 입에 비유할 수 있겠다.


◆가정과 국가, 위엄 흔들리면 위험

위엄은 나랏일뿐만 아니라 집안일을 하는 데도 중요하다. 가정의 화목을 위해 친애하되 말을 듣지 않거나 대드는 식구가 있으면 위압으로 제압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모든 일이 좋게 마무리된다. 허물없이 친애하고 방심하거나, 안이하게 대비 없이 가법(家法)을 행사하지 못하면 집안이 엉망진창이 되기 때문이다.


위엄은 아주 작은 잘못을 바로잡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플라톤은 그의 마지막 저서인 ‘법률’에서 “벌을 주지 않고 내버려 둠으로써 버릇없이 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속담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아주 사소한 잘못이라도 엄격하게 벌을 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잘못될 싹은 처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아들이 부모를, 신하가 왕을 업신여기는 일을 미리 막을 수 있다. 아이가 귀엽다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친하다고 잘못을 꾸짖지 않고 내버려두면 악의 싹이 비 온 뒤 죽순처럼 순식간에 자라나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서리를 밟으면 두꺼운 얼음이 언다”는 것을 알고 미리미리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


◆소인 등용 시 ‘어리석은 사람’ 써라

정치는 사람을 쓰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것을 시행하는 사람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소기의 성과를 이룰 수 없다. 오히려 시스템 자체를 허물어뜨리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플라톤은 이를 두고 “누구든 적도(適度)를 무시하고 작은 배에 큰 돛을 주거나 작은 몸에 많은 양식을 주며 작은 혼에 큰 통치권을 준다면 모든 것이 뒤엎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과도함으로 인해 어떤 경우에는 질병으로 치닫고 어떤 경우에는 방자함의 자식인 불의로 치닫게 된다는 지적이다.

플라톤의 이 말은 ‘주역’에 나오는 ‘등에 지고 수레에 탔으니 도적을 불러들인다’는 뜻을 지는 ‘부차승치구지’(負且乘致寇至) 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공자는 ‘부차승치구지’를 “등에 짊어지는 것은 소인의 일이고 수레는 군자가 타는 것인데 자격 없는 소인이 수레를 탔으니 도적이 빼앗음을 생각하고 윗사람을 업신여기며 아랫사람에게 갑질하는 것이다. 탐낼 만한 물건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것은 도적을 유혹하는 것이며, 예쁘게 치장하는 것은 음란함을 가르치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우리는 플라톤과 공자가 지적하는 ‘과도한 자리’에 앉았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봤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지 못해 실패하는 리더(왕, 대통령, CEO 등)도 수두룩하다. 사마광은 자치통감에서 어떤 사람을 등용해야 할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재덕을 온전히 다한 사람을 성인(聖人)이라 하고 재덕 둘 모두 없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 즉 우인(愚人)이라고 한다. 덕이 재주보다 나은 사람을 군자(君子)라 하고 재주가 덕보다 나은 이를 소인(小人)이라고 한다.

젖먹이 강아지가 사람을 물려고 해도 힘이 없고 이빨도 세지 않아 오히려 사람에게 제지당하게 마련인 것처럼 우인은 나쁜 일을 하려 해도 그걸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크게 나쁜 일을 못한다. 따라서 “예로부터 나라의 난신(亂臣)과 집안의 패자(敗者)의 재주는 남음이 있는데 이는 덕은 부족해 전복하는 데에 이르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10년 공부 헛되게 한 흙 한삼태기

폭군으로 알려진 은나라 주왕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에게 려나라에서 오라는 아주 큰 개를 공물로 바쳤다. 그러자 무왕의 동생인 소공은 “공물은 오로지 옷과 음식과 그릇”이라며 “오를 받지 말라”고 간언했다. “아홉 길의 산을 만드는 데 한 삼태기의 흙이 그 공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힘들게 쌓은 공업이 자그마한 행동으로 휴지조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공과 공자, 플라톤과 사마광이 줄기차게 강조한 것은 사소한 잘못이라도 엄격하게 다스려야 나라와 가정이 제대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대낮에 화염병을 던지고 임원을 집단폭행하는 데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든가, 어려웠을 때(선거 때) 함께 고생하며 친하게 지냈다고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눈감아주는 것은 가정과 나라를 함께 망친다. 이는 동서고금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패치워크(짜깁기, 접붙이기)문명론의 원리에서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0호(2018년 12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