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여개의 전통항아리가 가득한 고스락. /사진=박정웅 기자 전북 익산은 예로부터 호남의 교통 분기점이다. 충청에서 호남으로 가는 길목인 데다 호남선과 전라선이 익산에서 나뉜다. 익산은 또 미완의 왕도다. 금마(건마)면, 왕궁면, 고도리…. 마한과 백제의 중심지였음을 뜻하는 지명은 아직도 푸르다.
교통의 중심지, 미완의 왕도라지만 익산 하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철도와 도로가 발달한 점은 오히려 익산을 찾는 이들의 발길을 떠밀었다. 익산은 무심코 스쳐지나는 노정쯤이었다. 또 왕도였지만 석탑만이 홀로 남아있어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신라의 경주, 백제의 공주나 부여와 처지가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답사여행의 ‘고수’에겐 반가운 곳이다.
후손이 고택을 개조해 운영하는 왕궁다원. /사진=박정웅 기자 그런 익산여행이 전기를 맞았다. 지난 가을 개최한 전국체육대회에 선수단뿐 아니라 응원단까지 대거 익산을 찾은 것. 자의 반 타의 반 그동안 숨어지낸 명소가 베일을 벗었다. 또 여행객 숙박편의 차원에서 익산의 첫 4성급 호텔이 문을 열었다. 그동안 같은 전북에서 전주와 군산에 쏠린 여행객의 눈이 익산으로도 향할 분위기다.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나바위성당. /사진=박정웅 기자 눈에 확 띄는 ‘한방’이 아쉬운 익산. 그래서 이번 익산행은 여행 트렌드의 하나인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방점을 찍었다. 압도적이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챙길 게 꽤 많은 동네임을 ‘즐감’한 것. 뜯어보면 지나치기 쉬운 이면의 것들이 많다. 마치 그동안 무심코 스쳐지나간 익산에서 우연히 마주한 진면목이랄까. 더구나 마침 서설까지 내려 익산여행은 은은한 여운을 남겼다.
◆활짝 핀 수십억 ‘보석꽃’
전북 익산은 백제역사유적지구다. 익산이 간직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이다. 백제의 국가사찰이었던 미륵사는 동아시아 최대의 가람이며 미륵사탑은 한국 석탑의 원형이다. 왕궁리는 백제 무왕의 별궁터다.
크리스탈로 제작한 미륵사탑과 보석으로 치장한 일월오봉도. /사진=박정웅 기자 이번 소확행 여행은 내년 3월 재개장을 앞둔 미륵사탑을 뒤로 했다. 돌덩어리만 덩그러니 남은 곳에서 역사를 꿰맞춰야 할 고수의 여행을 피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돌을 잘 다룬 익산 사람의 손기술을 모른체 넘길 순 없었다. 호남고속도로 옆 왕궁보석테마관광지는 익산 사람의 손기술을 자랑한다.
보석박물관의 꽃인 '보석꽃'. 수십억원 이상의 갖은 보석으로 치장했다. /사진=박정웅 기자 익산 하면 ‘보석’이었던 때가 있다. 익산(옛 이리)은 창원(옛 마산)과 더불어 산업화시대 대표적인 수출자유지역이었다. 수출산업 활성화와 인구분산 정책에 따라 익산에 귀금속보석 가공단지가 조성됐다. 익산을 일순간 젊은 도시로 띄워올린 노동집약적 산업은 가격경쟁력 악화와 보석수입 자유화 여파로 급격히 몰락했다. 익산은 보석 중심지임을 되살리고자 2010년 국내 최대 규모의 귀금속보석 전시판매장인 주얼팰리스와 보석박물관 등으로 구성된 왕궁보석테마관광지를 조성했다.
순금으로 제작된 미륵사탑. /사진=박정웅 기자
순금으로 제작된 미륵사탑 사리장엄구. /사진=박정웅 기자 보석박물관은 보석의 화려한 진열장이다. 진귀한 보석과 원석, 화석 12만점을 소장,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보석박물관의 꽃은 말그대로 ‘보석꽃’이다. 다이아몬드, 순금, 백수정 등 갖은 천연보석으로 꽃을 만들어낸 작품이다. 감정가는 수십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또 백제 미완의 왕도를 엿볼 순금 미륵사지석탑과 미륵사탑 사리장엄구가 눈길을 끈다. 역시나 익산은 무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모양이다.
샌드아트 체험을 하는 탐방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왕궁보석테마관광지는 익산여행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 전망이다. 가족여행지로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주얼팰리스 바로 옆 샌드아트체험장, 어린이공원, 보석정·수변정·함벽정 등을 잇는 탐방로를 갖춰 온가족 한나절 여행지로 제격이다. 더구나 액티비티 트렌드에 맞춰 알파인 코스터 등 레저시설을 더할 작정이다. 보석테마관광지가 익산을 가족 여행지로 만드는 견인차가 될 것이란 기대는 빈 말이 아닌 듯싶다.
◆건강 가득한 장독정원
고스락 장독정원. /사진=박정웅 기자 익산에서 함열읍으로 가는 23번도로 옆에는 영농법인 고스락이 있다. 도로에서 몇걸음을 떼 키낮은 동산을 넘어가면 신세계가 펼쳐진다. 전통항아리 4000여개가 옹기종기 모인 고스락의 풍광은 잔잔하면서 웅숭깊다. 총알에 구멍이 숭숭 뚫렸거나 그림으로 치장한 옹기부터 50~100년 묶은 전통항아리까지, 그야말로 ‘옹기세상’이다. 더구나 속 깊숙이 건강을 챙길 유기농 장류와 식초류를 품은 산 옹기도 있으니 눈과 입이 호강한다.
눈 쌓인 고즈넉한 고스락. /사진=박정웅 기자 이 모든 게 고스락 주인장의 개인사에서 비롯했다. 건강을 챙길 겸 유기농 식재료에 관심이 많던 그는 장류에 천착했다. 발효가 잘 되는 장류를 위해 숨 쉬는 전통항아리를 찾았다. 전국을 뒤져 4000여개의 전통항아리를 구했고 이 중 3분의 2 이상이 전라도 땅의 것이란다. 저마다 갖가지 얘기를 품었을 항아리에 잔잔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곳을 우연히 들른 연세 지긋한 한 재미교포의 일화다.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 항아리를 닦더니 장독대 풀까지 뽑더라는 것이다. 장독은 그 자체로 그에게 향수인 셈이다.
식초 만들기 체험을 하는 고스락 탐방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고스락은 단일규모론 우리나라서 가장 큰 ‘장독장원’이다. 고스락의 최고는 또 있다. 순 우리말로 ‘최고’를 뜻하는 고스락처럼 으뜸 유기농 장류와 식초류를 생산한다. 묵은 항아리에서 자연발효한 건강한 맛이 입소문을 탔다. 고스락의 식재료는 주로 전북지역 학교와 대형마트 유기농코너에 한정 공급된다. 사과로 식초를 담그는 체험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시간에 정성을 곁들인 고스락 먹거리는 동산 위 이화동산에서 맛볼 수 있다.
◆여덟번째 칼에 스러진 김대건 신부
나바위성당. /사진=박정웅 기자 금강을 마주한 망성면 화산에는 천주교 성지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착지처를 기리는 나바위성당이다. 나바위성당은 솔뫼(출생지), 새남터(순교터)와 함께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대표적인 곳이다. 나바위성당에는 김대건 신부의 순교 유해(목뼈)가 있다. 이 유해는 무수히 내려친 칼의 흔적을 간직했다. 김대건 신부는 여덟 번째 칼에 비로소 순교했다.
김대건 신부의 유해(목뼈 일부). /사진=박정웅 기자 1845년 10월12일 저녁 8시. 김대건 신부는 중국에서 신부가 된 이래 나바위성당 서북쪽 화산 언저리에서 조선 땅을 처음 밟았다.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그리고 11명의 신자들과 함께 내린 곳이 화산이다.
나바위성당의 다양한 사료들. /사진=박정웅 기자 나바위성당은 베르모렐 신부가 1897년 본당을 설립했고 1907년 완공됐다. 성당 설계는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아넬 신부가,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다. 건축양식은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한옥으로 택했다. 이후 흙벽을 서양식 벽돌로 바꾸고 용마루 부분에 있던 종탑은 헐고 성당 입구에 고딕식 종탑을 세웠다. 외부 마루는 회랑으로 바꾸고 회랑기둥을 반석조로 개조했다. 특히 성당 내부에는 전통관습에 따라 남녀 자리를 구분했던 칸막이 기둥이 남아있다.
◆익산시티투어
익산 '소확행'에서 둘러볼 만한 달빛소리수목원. /사진=박정웅 기자 익산여행은 시티투어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시티투어는 순환형과 테마형 2종으로 구성된다. 먼저 순환형 시티투어는 매주 토·일요일과 공휴일(2~12월, 2018년 기준) 익산역을 기준해 운행한다. 순환형1은 익산역-고스락-교도소세트장-미륵사지-왕궁리유적-보석박물관-익산역 코스며 하루 7차례 운행한다.
교도소세트장은 시티투어 환승장 역할을 한다. 순환형1과 순환형2 시티투어를 환승할 수 있다. 순환형2는 하루 6차례 교도소세트장에서 두동교회, 성당포구마을(금강체험관)을 오가며 맨 마지막 버스는 익산역으로 곧장 향한다.
테마형 시티투어는 10인 이상 사전 예약시 운행한다. 1일 1회 운영을 기준(월요일 제외)이며 익산역이 출발지다. 2코스로 나뉘는데 먼저 ‘익산 숨은 보석 찾기’ 코스는 익산역(오전 10시)-나바위성지-교도소 세트장-고스락-미륵사지-보석박물관-문화예술의거리(전통시장)-익산역(오후 5시30분)이다.
‘세계유산코스’는 매월 넷째주 토요일 운행하며 코스는 익산역(오전 10시)-문화원-익산쌍릉-왕궁유적-미륵사지-보석박물관-문화원-익산역(오후 5시)이다. 두 노선은 출발 24시간 전까지 예약하며 인원은 선착순 40명. 이외에 단체 ‘맞춤형’ 시티투어가 있다.
곰개나루(금강일원), 입점리고분전시관, 최북단녹차밭, 춘포역 등 익산의 주요 관광지 3곳 이상을 둘러보는 것인데 20인 이상 단체가 여행 3일전 예약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익산시청 문화관광과에서 확인한다. <취재협조=익산시·여행공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