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계를 달군 인물들이 지난 2월9일 강원도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있다. 오른쪽 위부터 유승민 당시 바른정당 대표,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 이명박 전 대통령(왼쪽 아래). /사진=뉴스1 유승관 기자

무술년에도 정계는 다사다난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집권한 새정부는 1주년을 맞았고 정치인들은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이익을 좇아 이합집산했다. 연초부터 남북관계 개선의 징조를 알리는 ‘동남풍’이 불어오더니 2월 평창올림픽에는 남북 단일팀이 출전하고 4월 판문점에서는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았다. 남북정상회담은 ‘핵 버튼’으로만 대화하던 북미 정상의 ‘비핵화 대화’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하루건너 피바람이 몰아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따라다닌 ‘다스 실소유주’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며 국민은 또 한번 ‘전 대통령 구속’을 봐야 했고 정치인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사태가 터지면서 전도유망했던 정치인의 실체가 드러났다.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출마자를 겨냥한 온갖 의혹이 불거지며 줄줄이 낙마사태가 일어났다. 이처럼 바람 잘 날 없던 2018년의 정계 이슈를 돌아봤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첫 공판이 2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된 가운데 안 전 지사가 출석하고 있다./사진=임한별 기자

◆'정치인 미투'의 시발점… 안희정의 몰락  

지난 1월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폭력을 고발하며 촉발된 ‘미투’(Me Too) 물결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특히 모럴을 최후의 보루로 삼는 진보진영에서만 연달아 ‘미투’가 터지며 지방선거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진보진영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시작으로 6·13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던 정봉주 전 통합민주당 의원, 더불어민주당 충남지사 후보였던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 등이 줄줄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안 전 지사의 비서였던 김지은씨는 지난 3월5일 JTBC에 출연해 안 전 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했다. 폭로 다음날 안 전 지사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을 통해 성폭력 사실을 인정하고 일체의 정치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8개월 동안 4차례 성폭행과 수차례 성추행이 있었다는 김씨의 주장은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 분노한 민주당원이 충남도지사의 관사를 찾아가 야구방망이로 유리창을 깨기도 했다.


김씨의 폭로 며칠 뒤 안 전 지사는 기자회견을 예고했다가 돌연 취소한 뒤 검찰수사가 먼저라며 3월9일 서울 서부지검에 자진 출석했다. 안 전 지사는 검찰에 출석하며 강압은 없었고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안 전 지사의 구속영장을 두차례나 청구했지만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이후 이뤄진 재판에서 검찰은 성폭행 및 강제추행 혐의(형법상 피감독자 간음 등)로 안 전 지사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8월14일 선고기일을 열고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에서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나 의문점이 많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은 뒷받침이 부족하다. 현재 우리 성폭력범죄 처벌 체계 하에서는 이런 것만으로 성폭력 범죄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안 전 지사의 재판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21일 열린 항소심에서 안 전 지사 측은 "위력이 간음 수단 아니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이 사건의 본질은 권력형 성폭력"이라고 강조했다.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 /사진=뉴스1

◆'안희정의 친구' 박수현, 불륜설로 낙마

안 전 지사에게 불거진 성폭력 의혹은 지방선거 판도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가장 큰 불똥은 ‘안희정의 친구’이자 당시 더불어민주당 충남지사 예비후보였던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에게 튀었다. 안 전 지사 미투 폭로 이튿날 박 전 대변인은 "안 전 지사의 친구이기에 더욱 고통스럽다"면서 모든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페이스북 등에서 안 전 지사와 찍은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 

그러나 이는 악몽의 전조일 뿐이었다. 자신을 충남 공주시의 민주당원이라고 밝힌 오영환씨가 페이스북에 ‘공주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박 전 대변인이 2014년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내연녀를 공주시 기초의원 비례대표에 공천하는 부적절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한 것. 


이에 박 전 대변인은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분은 지역위원회 운영위원과 여성국장을 수년간 역임한 분으로 공헌을 인정받아 공천받은 것이라고 주장했고 오씨와 박 전 대변인의 전 부인 박모씨는 추가 폭로로 맞불을 놨다. 

박 전 대변인은 부정한 청탁을 거절하자 보복성으로 ‘정치적 네거티브'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예비후보직에서 자진 사퇴해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박 전 대변인은 충남지사 예비후보직에서 사퇴했다. 다만 사퇴 입장문을 통해 "더러운 의혹을 덮어쓴 채 사퇴하는 것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싸울 시간이 필요했다"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개인의 가정사도 정치로 포장해 악용하는 저질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고 힘줘 말하며 지방선거에서 물러났다.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정봉주 전 의원이 6.13 지방선거 서울시장 출마 선언에 앞서 지난 7일 돌연 출마를 연기한 가운데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번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 앞서 두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사진=임한별 기자

◆재기 꿈꾸던 정봉주, 성추행 의혹의 결말은…

진보진영에서 발생한 성폭력 의혹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말 ‘신년 특사’로 무사히 감옥생활을 마친 정봉주 전 의원도 성추행 의혹에 휩싸인 것이다. 그것도 안 전 지사 ‘미투’ 다음날이자 정 전 의원의 서울시장 출마선언이 예고된 3월7일이었다. 

이날 언론매체 프레시안은 현직기자 A씨가 기자지망생 시절 정 전 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A씨는 정 전 의원이 2011년 기자 지망생이던 자신에게 키스를 시도하는 등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 전 의원은 다른 매체를 통해 “명예훼손 등 법적조치를 취하겠다”며 성추행 논란을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나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이성은 정념(情念)의 노예’일까. ‘특별사면-서울시장 출마-정계 복귀’라는 희망찬 미래를 꿈꾸던 정 전 의원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미투 폭로는 어마어마한 공포로 그의 기억을 얼어붙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정계 복귀라는 욕망에 애써 외면했는지도. 

3주간 진실공방을 벌이며 프레시안 기자 2명을 고소했던 정 전 의원은 3월28일 결국 자신의 기억이 잘못됐음을 시인하고 고소를 취하했다. 이후 정 전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를 철회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한편 이와 관련, 민주당은 성추행 폭로 당일인 7일, 정 전 의원이 복당절차를 밟지 않아 아직 민주당 소속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당 차원의 논란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한 것이다. 그러나 3일 뒤인 10일 자당 소속 민병두 의원의 성추행 논란이 제기되며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지난 5월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지방선거 앞두고 터진 논란… 여당엔 악재, 야당엔 호재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보진영에서 미투 폭로가 연이어 터지자 ‘국정농단 사태’ 이후 수세에 몰린 한국당 등 야당이 공세를 퍼부었다.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는 민망한 사건들이 좌파진영에서만 벌어졌다면서 “미투운동을 더 가열차게 해서 좌파가 더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며 바른미래당은 "민주당은 (당 내) 성추문 정치인만으로 '더듬어민주당' 창당이 가능할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진행된 대망의 6월13일, 마지막에 웃은 쪽은 더불어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압승을 거뒀다. 17명의 광역단체장을 선출하는 시·도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은 서울·경기·부산 등 14명의 시도지사를 배출했고 구청장·시장·군수 등을 뽑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226곳 중 151곳에서 승리했다. 

12석을 놓고 경쟁해 ‘미니 총선’이라 불린 국회의원 재보선도 민주당이 11석을 차지하며 싹쓸이했다. 한국당은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경북 김천의 1석을 차지했을 뿐이었다.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가 지난 6월14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가운데 홍준표 대표가 6·13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을 내려놓는다"며 고개 숙이고 있다. /사진=임한별 기자

◆지방선거 희비 가른 '남북정상회담'… 문 대통령이 다했다

당초 6·13지방선거는 한국당에 불리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국정농단 심판’이라는 대전제가 깔린 데다 한국당 의원들이 국정농단의 책임을 회피하며 사분오열하는 모습은 콘크리트 지지층마저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당에서 빠져나온 의원들로 구성된 바른정당과 안철수로 대표되는 국민의당이 올 초 합당하며 ‘합리적 보수’라는 프레임을 내걸었다. 보수층의 표심도 예측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여당인 민주당에게 불리한 판이 조성됐다. 올 초 최저임금 인상으로 정부·여당에 대한 소상공인의 반발이 큰 상황에서 ‘정치인 미투’가 잇달아 터지며 도덕적 신뢰도가 하락했고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의 ‘드루킹’ 논란, 이재명 경기지사 후보의 ‘형수 욕설’ 논란 등 부정적인 이슈가 계속 생겼다. 선거는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마다 여당을 끌어올린 건 남북정상회담이었고 반대로 야당, 특히 한국당을 끌어내린 것도 남북정상회담이었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은 채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습, 도보다리를 함께 거닐며 대화하는 모습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한껏 치솟고 민심을 읽지 못한 한국당은 비난만 일삼다 나락으로 내려앉았다. 

4월27일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후 야당의 무차별 공세로 다시 여론이 돌아설 때쯤 기습적으로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은 첫번째 회담의 충격을 넘어서는 신선함을 안겼다. 5월26일 저녁 청와대는 남북 정상이 전화통화를 하다가 즉흥적으로 회담을 가졌다고 발표했다. 이는 남북 정상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한 것으로 반세기 넘게 우리나라를 옥죄어온 반공프레임을 깨부수는 사건이었다.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사진=임한별 기자

◆지방선거 끝난 지 반년… 등돌린 민심의 향방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남북관계 개선에 여당의 지지율은 계속 상승했다. 반면 남북 대화 및 비핵화 의제에 대해 끊임없이 막말을 던졌던 한국당은 전국민적인 비난을 받으며 지지율이 수직하락했다. 이는 지방선거가 치러지기 일주일 전 집계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가 실시한 6·13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여론조사에서 17개 지역 중 14개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들이 우세한 것으로 조사된 것. 

홍준표 당시 한국당 대표는 남북정상회담 직전 일본 아사히TV와의 인터뷰에서 ‘좌파만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말을 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후에도 홍 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의원들은 “판문점 선언은 남북 합작 위장 평화쇼”, “북한 핵실험장 폐기 공개는 또 하나의 쇼”,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이 되려나 보다" 등의 말을 하면서 비난여론을 자초했다.

나아가 창원지역 행사에서 거센 항의를 받자 홍 대표는 "창원에 빨갱이들이 많다"고 말해 지지율 하락에 기름을 부었다. 이에 강길부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은 “홍 대표가 사퇴하지 않으면 중대결심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결국 설전을 벌이다 탈당,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 같은 한국당의 행보에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홍 대표가 민주당 선거운동 다 해준다”며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꼬집기로 끝날 사태가 아니었다. 한국당 중진인 정우택 의원도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당 대표의 지원유세를 기피할 정도”라며 “선거에서 손을 떼라”고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홍 대표는 다른 이유를 들며 유세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선거를 이틀 남긴 상황에서 정태옥 의원이 이른바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살고 망하면 인천 산다) 발언으로 또 다른 ‘막말신화’를 쓴 것.

이와 관련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당대표가 막말을 하니까 거기 국회의원들이 배워서 사고를 쳤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 사정도 크게 나을 건 없었다. 소위 안철수계와 유승민계의 계파갈등으로 자꾸 잡음이 새어나왔기 때문.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대표가 지난 7월12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며 향후 거취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차량에 오르고 있다./사진=임한별 기자

나아가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민주당 후보, 김문수 한국당 후보에 이어 3위를 기록하는 상황. 선거를 얼마 안 남기고는 김문수 후보를 향해 연일 단일화 압박을 가할 뿐이었다. 이 같은 열세는 다른 지역구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바른미래당은 광역단체장을 한곳도 얻지 못하며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유 대표는 책임을 지고 당대표에서 물러났고 안 후보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홍 대표는 선거 전까지 엉터리 여론조사가 기승을 부린다며 투표해보자고 큰소리를 쳤지만 한국당이 제1야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자 책임을 지고 당대표에서 사퇴했다.

민주당을 괴롭혔던 ‘미투’, ‘드루킹’, ‘형수 욕설’, ‘여배우 스캔들’ 등의 논란은 순풍을 탄 남북화해 무드에 눈 녹듯 사라졌고 지방선거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귀결됐다. 한국당은 선거 때마다 이용하던 ‘북풍’을 꺼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으면서 다시 한번 당이 사분오열되는 사태를 겪었다. 바른미래당도 안·유 2명의 상징적인 인물이 일선에서 물러서며 휴지기에 들어갔다.

지방선거는 야당의 참패로 끝났지만 최근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집권 이래 최저를 기록하고 있어 앞으로의 정치판도가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2020년 총선까지 이대로 부정적인 여론이 커질지, 아니면 다시 한번 비핵화 등 한반도 정세변화를 계기로 판도가 뒤집힐지 계속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