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병역특례 중 0.8%만 방산에…'기득권' 된 대체복무 관성 깨야
병역 자원 과잉 시대의 유물 '병특'
정부 개혁, 기업 반발에 번번이 좌절
과학기술 인재의 효율적 활용 필요
최강 '기술부대' 만든 이스라엘 모범
이상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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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세 한국 청년이 있다.
①해킹 천재 대학생: 어려서부터 컴퓨터 다루기를 좋아했고 잘했다. 친구들의 고장난 PC를 뚝딱 고쳐주는 해결사 역할을 도맡았다.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화이트 해커'(범죄 수사나 외적과의 사이버전에 필요한 해킹을 하는 사람)를 동경했다. 전산망 보안의 '창과 방패' 싸움에 깊이 빠져들어 독학했다. 일반 학업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중위권 대학의 전산학과에 입학했는데, 해킹에 대해서는 대학에서 배울 게 별로 없었다. 대학 1학년 말 그는 병역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는 한 현역병으로 복무해야 한다.
②과학 영재 입시생: 수학, 물리학을 남달리 좋아하고 잘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발명 대회에 꾸준히 참가해 상을 많이 받았다. 요즘은 레이저 무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학 진학을 앞둔 그는 '무기 발병가'라는 자신의 꿈에 맞는 대학 학과를 고르고 있다. 그런데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군 장교 임관으로 이어지는 방산 학과들이 있지만 선택이 망설여진다. 짧게 현역 복무를 하고 방산 대기업에 취업하는 게 실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③프로그래머 고교생: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 최근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온갖 프로그램을 실험적으로 만들고 있다. 다른 공부에는 흥미와 소질이 없어 정보기술(IT) 특성화고로 진학했다. 졸업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곧바로 군대에 가야 한다. 산업기능요원(병역특례)으로 군 복무를 대신해 온라인 게임 회사, 웹 개발 회사 등에 다닐 수 있지만 주저하고 있다. 회사에서 배우는 것 없이 서버 관리만 맡게 될 수도 있는 선배들 얘기를 들었다. 복무 기간이 군대는 18개월이고, 산업기능요원은 35개월이다.
이런 고민을 마주한 한국 장정이 상당수 있다. 인생 계획에 군 복무를 넣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남성의 숙명이다. 자신의 능력이 국가 방위에 도움이 되고 개인의 삶에도 보탬이 된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현실이 그렇게 흐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스라엘의 사례를 보자.
기술인재 활용하고 키우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에는 세 개의 독특한 조직이 있다. 8200 유닛, 맘람, 탈피오트다. 앞의 두 개는 부대다. 나머지 하나는 학교 형태다. 셋 다 국방부 소속이다.8200 유닛은 통신 정보 분석, 암호 해독, 사이버전 기능을 수행하는 특수부대다. 1952년 창설 당시 동구권 유대인 8명과 이라크 출신 유대인 200명으로 구성돼 8200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매해 고3 학생들의 이곳 입대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수학, 과학, 공학,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능한 수만 명이 경쟁을 벌인다. 이스라엘 군 내에서 꽤 큰 규모의 부대라는 점은 알려져 있지만 실체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예산, 조직 규모, 작전 사항은 국가 기밀에 속한다. 남성은 3년, 여성은 2년 이곳에서 복무한다.
2010년 이란 발전소가 시스템 오류로 멈춰섰다. 이로 인해 핵 개발이 지연됐다. '스턱트넷'이라는 산업시설 파괴 소프트웨어가 이란의 우라늄 농축 시설에 은밀히 침투해 벌어진 일이었다. 이스라엘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지만 스턱트넷을 만든 곳이 8200 유닛이라는 게 정보 산업계의 정설이다. 이스라엘 IT 업계 구인 공고에 '8200 유닛 출신 우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페이팔의 신용 사기 방지 기술을 발명한 이스라엘 벤처 기업 '프로드 사이언스' 설립자 시바트 샤케드가 8200 출신이다.
맘람은 이스라엘 군의 컴퓨터ㆍ정보 시스템 센터이자 관련 기술 양성소다. 군의 IT 인프라 설계 및 구축, 소프트웨어 개발, 클라우드 시스템 총괄 기능을 갖는다. 1959년에 설립된 이스라엘 최초의 '기술 부대'다. 작전 프로그램,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대민 웹사이트를 직접 개발한다. 사이버 보안 장벽을 세우는 역할도 맡는다. 이곳의 대원으로 뽑히면 6개월간 훈련을 받고 2년 6개월 복무한다. 장교 트랙을 선택하면 의무 복무 기간이 5년이다. 이스라엘 최대 IT 서비스 기업 '매트릭스'가 맘람 출신에 의해 만들어졌다.
탈피오트는 국방 과학기술 전문 장교를 육성하는 사관학교다. 고교 졸업자 중에서 과학 분야 성적이 좋은 50명을 뽑는다. 학교장, 과학 교사 추천으로 약 1만 명의 지원을 받는다. 필기시험, 면접, 과제 해결 등의 과정을 거쳐 합격자를 가린다. 수학 기간은 3년이다. 이스라엘의 서울대에 해당하는 히브리대에서 수학, 물리학, 컴퓨터 공학 등을 전공으로 공부한다. 군사 훈련을 받고 국방 기술을 배운다. 문제 해결 실험을 거친다. 졸업 때 학사 학위를 받고 장교로 임관한다. 의무 복무 기간은 6년. 앞 2년은 사이버 부대, 특수 부대 등의 야전 부대애 배치돼 복무한다. 뒤 4년은 군 연구소, 방산업체 등에 소속돼 신무기 개발에 참여한다.
'아이언돔'으로 널리 알려진 이스라엘 미사일 방어체계는 탈피오트 작품이다. 학생들 프로젝트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탈피오트 출신 기술 장교와 방산업체의 협력으로 완성됐다. 탈피오트가 만들어질 때 이스라엘 군이 세운 첫째 목표가 '인간 창의성이 정점에 이르는 20대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롭고 독보적인 무기를 만드는 데 공헌'이다.
산업기능요원 대부분 일반 기업 근무
이스라엘은 이처럼 국방에 필요한 과학기술 인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육성한다. 국가 방위산업 종사와 관련 분야 창업으로 자연스럽게 진로가 이어진다. 강한 국방력의 원천이다.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가?지난해 말 기준(병무청 통계), 한국에서 병역특례 제도를 활용해 기업ㆍ연구기관 등에서 대체 복무한 산업지원인력(전문연구요원ㆍ산업기능요원 등)은 1만7027명이다. 그중 병무청이 방위산업 분야로 지정한 업체(76개)와 연구기관(12개)에 배정된 인원은 135명으로 전체의 0.79%에 해당한다. 1%도 채 되지 않는다.
산업기능요원의 대다수인 1만3455명은 공업(일반 산업) 분야에 속해 있다. 방위산업 분야에 배정된 인원은 산업기능요원 117명, 전문연구요원 18명이 전부다. 병역특례 대체 복무자의 대부분이 방위산업과는 거리가 있는 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지난해 현역병 입대자는 18만4992명이었다. 10년 전인 2015년(24만9477명)에 비해 약 25%가 줄었다. 군의 효율적 운영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큰 틀에서의 축소 원인은 인구 감소다. 그런데도 직접적인 국방의 영역 밖에서 대체 복무를 하는 장정이 1만7000명이다. 그중 상당수는 신체검사 기준으로 현역 자원이다.
국방부 24년간 개혁 시도 실패
한국 정부는 2002년 산업기능요원 배정 인원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2005년에 없앤다고 발표했다. 2004년에 이와 관련해 7개 부처 합동 TF가 만들어졌고, 폐지 시기가 2013년도로 연기됐다. 2011년 국방부는 이를 다시 2015년으로 조정했으나 실행되지는 않았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국방부가 산업기능요원과 전문연구요원을 줄여나가면서 2023년에는 현역 자원 특례를 완전히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역시 실현되지 않았다.정부의 폐지 방침은 군 인력 수급 문제 때문이었다. 인구 감소로 인한 병역 자원 급속히 줄었다. 병역특례 관련 비리와 근무 태만 문제가 계속 불거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산업계와 학계의 반발이 거셌다. 중소기업들이 "그나마 병역특례로 근무하는 젊은이 덕에 근근이 버티고 있는데 이걸 없애면 우리는 망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복무 요원 활용이 기득권이 된 셈이다.
이공계 인력의 산업체나 연구기관 대체 복무 제도는 1973년에 생겼다. 급격한 인구 증가로 병역 자원이 넘쳐나던 때였다. 경제 개발로 산업 인력 확보가 절실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 두 요인이 맞닿아 병역특례 복무가 시행됐다. 그 뒤 53년이 흘렀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 여성 입대까지 거론되는 시대가 됐다. 그런데도 기업이 저비용으로 충성스러운 '일꾼'을 부릴 수 있는 제도가 관성에 의해 유지된다. 그 과정에서 기술 인재를 적절히 활용하는 국방의 효율성이 희생되고 있다. 멈춰 세우고 바로잡을 때가 됐다.
※과학기술 인재의 효율적 국방 활용 방안을 논의하는 '시대포럼: 새로운 전쟁의 시대, K방산의 현재와 미래' 2차 숙의 토론회가 1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다.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병주 의원과 동행미디어 시대가 공동 주최하는 이 토론회에서 이광형 전 KAIST 총장이 '기정학 시대의 10만 연구병' 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다. 이어 이상언 [시대] 편집국장이 '기술인재 부대와 병역특례 새 방향'을 발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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