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이 내년 1월 은행권 최초로 ‘비정규직 없는 은행’이 된다.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파견·용역직원을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첫 은행이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12월 인력관리 자회사인 ‘IBK서비스’를 설립해 청소·사무보조·조리·주차관리 인력 968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어 채권추심 및 연수원안내 인력도 자회사 정규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년에 경비인력 등 600여명의 정규직 전환을 완료하면 총 2000명의 파견·용역직원이 IBK서비스 정규직으로 일하게 된다.

문제는 파견·용역직원의 고용 안정이다. 기업은행이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지만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김도진 IBK기업은행 행장. /사진제공=IBK기업은행
김도진 IBK기업은행 행장. /사진제공=IBK기업은행

◆김도진 행장, 정규직전환 총력

금융당국은 금융공공기관 파견·용역 근로자에 대한 정규직 전환 작업을 늦어도 연말까지 마무리하라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특히 파견·용역인력이 많은 기업은행은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이 1순위로 꼽혔다. 지난해 말 기준 기업은행의 파견·용역 인력은 2000여명으로 산업은행(504명), 수출입은행(178명), 주택금융공사(144명) 등 보다 월등히 많다.

김도진 행장도 정규직전환 작업에 팔을 걷었다. 김 행장은 지난해 말부터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고 노사 간 협의체를 꾸려 몇 차례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 청소, 조리, 영업점 경비, 사무·주차 보조인력에 이어 지난 2월에는 연수원 안내·채권추심 담당인력의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


연초에는 IBK서비스 법인의 출범식에 참여해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비정규직부터 순차적으로 고용승계를 한다고 밝혔다. 김 행장이 오는 12월 임기를 마치는 터라 그 전에 비정규직 전환을 마무리하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김 행장이 정규직전환에 뚝심을 발휘했다”며 “이제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 직군을 제외하면 은행에서 비정규직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공기업의 정규직전환은 간접고용 방식이 대세다. 기업은행을 비롯해 한국조폐공사는 콤스코시큐리티와 콤스코투게더, 예탁결제원은 KS드림, 예금보험공사는 예울FMC 등 용역 자회사를 설립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도 같은 방식으로 파견·용역직원의 고용승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은은 용역 자회사 ‘수은 플러스’를 출범했고 비정규직 178명 중 90명을 수은 플로스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할 예정이다. 나머지 88명은 은행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산은은 KDB비즈를 설립해 500여명의 파견·용역근로자 정규직 전환을 추진 중이다.


갈등 여전한 기업은행 '비정규직 제로'

◆서두르다 체할라… 노사갈등 여전

관건은 기업은행이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에 성공할지 여부다. 정부는 ▲정규직 직접 고용 ▲무기계약직 전환 ▲자회사 정규직 고용 등 세가지 방식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각 공공기관이 상황에 맞게 선택하도록 했다. 정부는 무기계약직과 자회사 고용도 정규직전환의 일종이라고 판단하고 공식통계에서 정규직으로 분류한다.

비정규직 직원들은 낮은 임금 등 처우가 개선되지 않아 무늬만 좋은 고용정책이란 지적이다. 또 모회사와 자회사로 업무지시체계가 이원화되면서 업무가 중복되거나 이중으로 근무하는 등 부작용이 커진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기업은행의 정규직 전환에 관한 불만의 글이 수십여개 올라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정책 발표 후 많은 용역직원들이 기대감을 나타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기업은행이 정규직전환에 선두주자로 나선 만큼 나머지 공공기관들이 참고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전문가들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총파업에 나서는 등 정규직정책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어 금융공기업도 노사 간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회사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은 근로자가 이를 반대할 경우 계약이 해지될 수 있어 불안요소로 꼽힌다.

지난달 한국도로공사는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출범하면서 신규채용을 거부한 톨게이트 수납원 1500여명과 계약을 해지했다. 자회사 전환에 동의한 요금수납원 5000여명은 도로공사서비스 소속으로 일하는 반면 해고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도로공사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소송을 진행 중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근로조건이나 직장문화 개선 등 정규직 전환 로드맵을 만들지 않아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며 “노사 간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정부 일자리정책에 따라가기 급급한 경우 되레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자회사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수의계약 사유 관련 제도를 보완하고 자회사 소속 근로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 모기업과 공동노사협의회 등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3호(2019년 7월30일~8월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