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핵심성과지표(KPI) 개편에 팔을 걷었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직원들이 해외금리연계 파생상품(DLS·DLF)을 무리하게 판매해 수백억원대 손실을 기록했다는 지적에서다. 


KPI는 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다. 직원의 개별성과를 수치로 매기는 만큼 경영관리는 편하지만 직원들의 과도한 성과주의와 불완전판매를 야기한다는 단점이 있다.

먼저 우리은행은 내년도 KPI를 고객서비스 만족도, 고객 수익률 개선도 등 고객중심의 평가지표로 바꾼다. 현재 평가배점이 20점인 고객수익률을 최소 40점 이상으로 높이고 고객관점에서 고객케어에 집중하는 조직도 신설할 계획이다.


KEB하나은행은 영업점과 프라이빗뱅커(PB)에 대한 성과평가에 고객수익률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한다. 자산관리 전문가들이 고객수익률에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KPI에 반영하는 비중을 5%에서 10%까지 올리는 게 목표다.


(왼쪽부터)우리은행, KEB하나은행. /사진=뉴시스 DB
(왼쪽부터)우리은행, KEB하나은행. /사진=뉴시스 DB

◆수익성에 올인한 KPI 평가항목 수정

두 은행의 KPI개편에 다른 은행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은행이 판매하는 펀드, 신탁, 방카슈랑스 등 비이자수익 상품은 리스크가 높아 고객수익률 관리가 중요해져서다.

관건은 은행의 KPI 평가항목에 고객수익률 배점을 얼마나 올릴지 여부다. 시중은행은 총 1000점 만점인 KPI에 파생상품 등 자산관리상품을 포함한 수익성점수를 400~500점, 고객수익률은 100점 미만으로 배정한다. 수익성점수가 높다 보니 직원들이 고위험상품 판매에 올인한다, 

이번에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이 판매한 DLF는 수익률이 4%인 반면 손실률을 100%에 달한다. 원금을 전부 날릴 수 있는 고위험상품임을 알고도 수수료 수익을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DLF를 판매한 것이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실장은 “KPI를 단순히 평가항목만을 바꾸는 개선안은 근본적인 고객의 신뢰를 회복할 만한 대안이 아니다”며 “은행은 비이자이익을 강화하는 만큼 상품판매 시 리스크 관리에 대한 평가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노동조합은 KPI평가항목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금융노조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KPI평가항목은 적게는 40여개에서 많게는 90개가 넘는다. 은행이 매년 경쟁적으로 KPI평가 항목수를 늘리고 상시적으로 캠페인, 프로모션(이벤트) 등을 벌인 결과다. 반면 해외은행은 직원의 KPI에 목표 할당제를 전면 폐지하는 등 고객서비스와 핵심고객 유지 관리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 대형은행인 웰스파고는 2016년 유령계좌 사건을 겪은 후 성과급의 핵심이던 최소 목표 할당제를 없앴다. 또 일상적인 거래에 이용되는 당좌예금 계좌를 최소 3개월 이상 유지하는 고객을 핵심고객으로 관리하고 고객만족도를 5단계로 평가해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

국내에선 NH투자증권이 자산관리(WM) 부문 직원들의 KPI를 전면폐지한 후에도 상반기 순이익이 13% 늘어나는 등 양호한 실적을 거둬 주목 받는다. 올해 NH투자증권은 WM 사업부의 KPI를 없애고 고객중심의 새 평가지표인 ‘과정가치’를 도입했다. KPI에선 영업수익, 고객 수 등 정량적 지표를, 과정가치는 고객을 직접 대면해 니즈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과정에 중요하게 평가한다.


수백억 손실 촉발한 KPI 손질… '불판' 사라질까

◆영업관행·내부통제 강화해야

은행의 실적 만능주의를 개선하려면 KPI 개편과 함께 영업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KPI를 바꿔도 무분별하게 경쟁하는 영업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실효성이 미미하다는 평가다. 은행의 KPI는 외환위기 이후 예·적금, 대출 등으로 단순했던 성과목표치 항목이 다양해지고 가중치가 바뀌었다. 지점별로 평가하던 실적은 은행은 본부와 지역별로 비교하고 실시간 전산에서 전국구로 순위가 매겨지고 있다.


실적에 몰두한 직원들은 투자상품의 위험을 분석하고 손실 가능성에 대한 고지를 소홀한 채 상품 판매에 급급한 영업관행이 굳어졌다. 은행은 별도로 자문수수료를 주는 해외은행과 달리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해 직원들의불완전판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은행의 KPI 개편과 함께 내부통제시스템 구축도 요구된다. 앞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소속 연구원들은 독일을 비롯 미국, 영국 등 주요국 국채 금리하락 가능성을 진단했지만 내부통제를 거치지 못해 수백억원의 손실을 키웠다. 또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하는 전문인력 관리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투자상품은 손실 위험이 높은 만큼 금융투자협회가 인증한 자격증을 가진 전문인력만 팔 수 있다. 

파생상품 연계 펀드인 DLF도 ‘펀드투자권유자문인력’ 자격증이 필요하다. 금투협에 따르면 DLF 판매가 집중된 KEB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8911명(전체 직원의 66.9%), 7858명(52.2%)으로 절반이 넘는 행원들이 펀드투자권유자문인력 자격증을 갖고 있다. 신한은행(1만100명, 72.3%)·KB국민은행(1만2145명, 69.4%) 대비 비율은 다소 떨어지지만 고액 자산가의 자산 관리를 담당하는 PB(프라이빗 뱅커)들은 대부분 자격증 보유자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정무위)의원은 “DLS사태는 비교적 안전한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은행원들이 고객에게 투기적인 상품을 무리하게 판매해서 초래한 일”이라며 “금융당국은 은행의 투자상품 판매 행태를 면밀하게 감독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자격증 없는 직원이 고객에 상담·가입을 권유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면서도 “현장검사에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파생상품 규제와 제도개선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2호(2019년 10월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