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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포스신 위해 노를 저어라!"
선조의 얼 서린 동토의 땅, 우수리스크 역사여행 감동
국내 크루즈문화 개척, 롯데관광 전세선 동행기
선조의 얼 서린 동토의 땅, 우수리스크 역사여행 감동
국내 크루즈문화 개척, 롯데관광 전세선 동행기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에 정박한 롯데관광개발 전세선 코스타 세레나. /사진=박정웅 기자 |
코스타 세레나는 국내여행 시장에 크루즈문화를 전파한 롯데관광개발의 전세선이다. 최대 승선인원은 3780명(승무원 1000명)이다. 규모는 압도적이다. 전체 길이는 290미터로 63빌딩을 눕힌 것보다 40미터가 길다. 폭은 35미터로 선상에는 수영장, 짐, 풋살장 등 스포츠코트가 들어서 있다. 지난 10월, 생애 첫 크루즈여행을 떠났다.
| 코스타 세레나서 본 블라디보스토크 금각만대교의 여명. /사진=박정웅 기자 |
| 크루즈에서 일출을 담는 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
| 코스타 세레나서 본 블라디보스토크 전경. /사진=박정웅 기자 |
◆올림포스의 신들, 동해로 향하다
크루즈 내부는 올림포스 신들로 꾸며져 눈길을 끌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비롯해 제우스, 헤라, 아테나의 조형물이 눈에 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도 빠지지 않았다. 크루즈 층별 명칭은 신화와 잇댄 별자리 이름을 땄다. 에이퍼스, 안드로메다, 카시오페이아, 에리어스, 오리온, 제미니, 아쿠아리스, 센타우르스, 페르세우스, 리브라, 타우르스, 버고, 페가수스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호화로운 초대형 크루즈여행은 처음이다. 그동안 유럽 리버 크루즈(내륙 크루즈)와 국내 슈퍼요트 크루징 경험은 다수 있긴 했다. 하지만 교통(항공), 숙식(호텔 및 식음장), 액티비티(콘서트·스파·워터슬라이드·풋살·카지노 등) 등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원스톱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코스타 세레나 15층 루프톱 전경. /사진=박정웅 기자 |
| 스포츠댄스 프로그램을 즐기는 크루즈 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
| 코스타 세레나에서 콘서트를 펼치는 홍서범, 조갑경 부부. /사진=박정웅 기자 |
분위기는 유럽의 지중해 크루징 못지않다. 여행객들은 저녁이면 파티에 빠진다. 언제 챙겨왔는지 우아한 드레스와 나비넥타이, 가면 차림에 놀란다. 누가 우릴 한의 민족이라 했나. 크루즈는 흥의 도가니다. ‘줌마’들의 세끼 걱정은 잊은 지 오래다. 함께온 ‘삼식이’의 앙탈은 없다. 무료로 하루 아홉끼를 드신 분도 있다. 아쉽다. 다섯끼에서 손을 들었다. 고가임에도 마사지와 스파 프로그램은 연일 풀부킹이었다. 호캉스가 따로 없다는 거다. 인기에 힘입어 롯데관광은 내년 5월 8일과 14일 전세선을 다시 띄운다.
| 코스타 세레나의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는 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
| 코스타 세레나의 한 객실. /사진=박정웅 기자 |
◆연해주에 핀 독립의 불꽃
| 블라디보스토크 혁명광장과 그 일대의 전경. /사진=박정웅 기자 |
블라디보스토크 도심을 지나 북단의 고속도로로 빠져나오는 데만 한참이나 걸렸다. 출근길에 도심을 통과한 탓도 있겠다. 하지만 인구 60만의 부동항 기지도시 치고는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까닭이다. ‘나홀로’ 차량이 많아 도심은 늘 정체가 빚어진다는 설명이다.
| 블라디보스토크 혁명광장. /사진=박정웅 기자 |
수많은 사연을 싣고 날랐을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꼬리를 물었다. 차창 밖 풍광에 두서없는 생각들이 스쳤다. 중국서 이 황무지를 사들인 러시아는 수형자들을 동쪽으로 보냈다. 조정의 무능과 가난에 쫓긴 고려인들은 언 두만강을 건너왔다. 조선을 도망친 이들은 타향에서 의병이 됐고 독립운동가가 됐다.
|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 /사진=박정웅 기자 |
동토의 풍광에 정신을 뺏긴지 2시간쯤 지났을까. 우수리스크가 가까워지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사가 시작된 라즈돌리노예역을 지났기 때문이다. 우수리스크 도심 방향 왼쪽에는 우수리강의 지류인 솔빈강이 흐른다. 억새와 쑥부쟁이가 뒤엉킨 강 언저리에는 이상설 선생의 기념비(유허지)가 있다. 최근 방송된 MBC 역사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리턴즈)’이 이곳을 조명했다.
| 우수리스크 솔빈강 인근에 세워진 이상설 선생 기념비(유허지)를 참배하는 크루즈 여행객들. /사진=박정웅 기자 |
충북 진천에서 네덜란드까지, 그리고 국경을 넘어 만주와 연해주로 이어진 마흔여덟 독립의 혼은 거친 강을 따라 동해로 흘러 조선반도에 닿았을 것이다. 이상설 선생 유허지 기념비는 2001년 러시아 정부의 협조로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세웠다. 선생이 순국한 지 80년이 지난 때였다.
◆고려인의 대부, 최재형의 아름다운 삶
| 최재형 저택의 최재형 선생 흉상. /사진=박정웅 기자 |
최 선생은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선임됐다. 앞서 러시아에 귀화한 뒤 함경북도에서 일본군을 전멸하는 무장 독립투쟁가로 활약했다. 무장 투쟁 당시 안중근 의사와 인연을 맺었으며 실책을 범한 안 의사를 품었다. 안 의사의 의거를 물신양면으로 도왔고 의거 후 그의 가족들을 돌봤다. 이러한 사실을 일제의 밀정이 모를 리 없었다. 1920년 순국한 이유다. 우수리스크 도심에는 최재형 기념관이 있다. 최재형 선생의 흔적이 유일한 옛집(고택)을 활용한 곳이다.
| 최재형 기념관에서 상영하는 기록물을 관람하는 크루즈 여행객들. 안중근 의사와 최재형 선생을 조명한다. /사진=박정웅 기자 |
| 기념관으로 쓰이는 최재형 저택 내부. 입구 오른쪽엔 최재형 선생의 상징인 페치카가 보인다. /사진=박정웅 기자 |
우리는 그동안 최재형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100주년을 기념해 빛을 보지 못한 해외 독립운동가들이 소개되면서 그나마 그의 이름 석자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소련’에 속한 연해주의 그들을 애써 외면한 현실이 뼈아팠다. 분단과 한국전쟁, 잇따른 좌우의 대립에 연해주 독립운동사는 제 빛을 드러낼 수 없었다. 크렘린이 붕괴되고 러시아와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안타까운 시간만 흘렀다. 비단 이념의 문제였을까. 친일·부일분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 안타깝다. 노덕술의 훈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현실만 봐도 그렇다. 그런 세상에서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해외 독립운동사, 특히 ‘소련’에 속한 연해주의 것은 ‘금단’(禁斷) 자체였다.
| 1918년 당시 전로한족중앙총회를 결성한 우수리스크의 학교 건물. /사진=박정웅 기자 |
| 전로한족중앙총회를 결성했다고 알리는 현 실업학교의 현판. /사진=박정웅 기자 |
☞본 기사는 <머니S> 제620호(2019년 11월26일~12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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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박정웅 기자
박정웅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