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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미지투데이 |
다수가 공감하는 잣대로 재단해야
가위바위보로 지도자를 뽑는다면…
가위바위보는 아이들만 하는 놀이인 줄 알았다. 술래잡기, 말타기, 딱지치기하기 전에 누가 먼저 할지 정할 때 으레 쓰는 게 가위바위보였다. 막 걸음마를 마치고부터 그것은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거쳐 가는 필수 놀이였다. 심지어 여자 한명을 놓고 친한 벗 둘이 사랑 다툼을 벌이면서 누구도 양보하지 않으려 할 때 그것으로 결정짓는 경우도 있다. 하늘의 뜻에 맡기자는 의미에서….
석달에 한번씩 만나는 모임, 대동화(大同火)에서 차기 회장을 뽑는 데 가위바위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석달 동안 있었던 일들을 화제로 몇몇 사람끼리 얘기하는 시간이 지나고 총무가 자리를 정돈했다. 회장이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결정의 출발은 백지에서
“오늘도 많이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다른 일을 맡게 돼서 부득이하게 회장을 새로 뽑아야 합니다. 좋은 분을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 회장님께서 종신으로 하시는 게 좋겠지만 더 좋은 일을 맡게 됐으니 어쩔 수 없네요. 갑자기 차기 회장을 추천하라니 얼떨떨합니다. 회장님께서 복안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동의합니다. 회장님 복안을 제시해주시지요.”
“여러분 의견이 그러시다면…, 연배와 경륜이 비슷하신 서조국(瑞珇菊) 사장님과 명조국(明早局) 대표님, 그리고 함조국(咸晁菊) 감사님, 이렇게 세분이 서로 상의해서 결정하면 어떨까 합니다만….”
후보로 추천된 함조국 감사가 일어나서 신상발언을 했다.
“저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입니다. 서조국 사장님과 명조국 대표님 중 한분이 회장을 맡으시는 게 우리 모임을 더욱 발전시킬 것으로 생각합니다.”
명조국 대표도 사양의사를 밝혔다.
“제가 최근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서 모임 회장을 맡기가 부담스럽습니다. 새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에도 맡겨 주신다면 그때는 성심성의껏 회장으로서 활동해 보겠습니다.”
서조국 사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저보다 훌륭하신 분들이 모두 사양하시면 모든 부문에서 부족한 저는 도저히 회장을 맡을 자신이 없습니다.”
모두 자기가 최고라며 ‘나 아니면 그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들이대는 사람들만 봐오던 한조국은 이런 상황이 의아했다. 세 사람 중 한 사람만 못이기는 척 슬그머니 수락하면 박수 받으며 회장이 될 터인데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한사코 사양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더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공정하면 평범한 기준도 최선
누군가가 “회장 후보 세 분 모두가 사양하시니, 가위바위보를 해서 맨 먼저 이긴 사람이 회장이 되고 그다음에 이긴 사람이 수석부회장이 되어 차기 회장이 되고 꼴찌가 부회장으로서 차차기 회장이 되면 좋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회장 선출을 가위바위보로 한다고…’라며 한조국이 생각할 틈도 없이 더 재밌는 제안이 나왔다.
“회장 후보 세 분이 직접 가위바위보를 하는 것보다 전임 회장과 현 회장이 각 후보의 대리인이 돼 가위바위보를 하자”는 것이었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참석자 모두는 환호하며 큰 박수로 찬성을 나타냈다.
대리자 세명이 일어서서 가위바위보를 했다. 그런데 얼굴을 마주보고 하면 상대방 눈치를 살필 수 있으니 모두 뒤돌아서서 머리 위로 손을 올린 상태에서 가위바위보를 내기로 했다. 그렇게 가위바위보를 시작했다. 쉽게 결론 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세번째에 가서야 순서가 정해졌다. 양보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 무의식적으로 대리인들이 서로 져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게 가위바위보로 2년 임기의 차기 회장단이 결정됐다. 회장은 함조국 감사, 수석부회장은 서조국 사장, 부회장은 명조국 대표였다.
선임결과가 확정되자 회원들은 환호했다. 회장 선출 절차로 가위바위보라는 획기적 방식을 도입한 데다 한번 선출로 앞으로 6년 동안의 회장을 모두 확정함으로써 모임 리더십의 안정성을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돌 하나로 새 두마리를 잡는 일석이조(一石二鳥)요, 한번 두드려서 피를 3개나 거머쥐는 일타삼피(一打三皮)였다. 큰일을 치른 회원들은 현 회장의 건배사를 듣고 새로 만들어진 ‘화합주’ 잔을 힘차게 부딪쳤다.
“대동화는 역시 조국의 가장 앞서가는 모임입니다.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로 멋진 후임 회장단을 결정했으니 앞으로도 나날이 번창할 것으로 믿습니다. 대동화의 영원한 발전을 위하여 오늘 건배사는 ‘개나발’로 하겠습니다. 운을 떼어 주시고 다 끝나면 모두 함께 개나발을 외쳐주시기 바랍니다.”
‘개! 개인과, 나! 나라의, 발! 발전을 위하여, 개 나 발!!!’
◆결정 후엔 실천이 중요
하늘을 찌르고 음식점이 떠나갈 듯한 함성과 박수가 끝나기를 기다려 새 회장으로 선출된 함조국 감사가 조용히 일어났다. 좌중의 눈길이 모두 그에게로 쏠렸다. 당선 소감과 향후 공약(公約)에 대한 기대로 문득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부족한 저를 회장으로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어느 모임에서나 회장을 하는 데 조건이 있습니다. 정기 모임 때마다 회원 총수의 70% 이상이 참석하지 않으면 회장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대동화도 앞으로 매번 70% 이상 참석한다는 조건으로 회장 선출을 수락하려고 합니다. …”
“보다 구체적인 사항은 앞으로 여러분들과 논의해서 추진하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회장 선임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건배 제의하겠습니다. 건배사는 ‘비행기’입니다. 운을 떼어주시고 다 끝나면 ‘비행기 날자’로 함께 외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 비전을 갖고, 행! 행동하면, 기! 기적이 일어난다. 비행기 날자~”
한조국도 회원들과 함께 가슴을 활짝 열고 ‘비행기 날자’를 외쳤다. 조금 전의 ‘개나발’보다 훨씬 더 우렁찼다. 그는 오늘 모임에서 조국 정치의 올바른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회의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현 회장이 회장선임방법을 제시하고 모든 회원이 자기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말한 뒤 의견을 조율해 선출절차를 정하고 그 절차에 따라 후임 회장을 뽑았다. 그 결과에 대해 당선자와 회원 모두가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모든 회원의 참여와 절차의 공정성 및 결과의 수용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진심으로 사양하다가 막상 그 자리가 주어지자 최선을 다해 모임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실천하는 것, 그것은 구성원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새 정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그의 발걸음은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웠다.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고 실천되고 있다는 꿈과 희망이 그의 가슴에 꽉 차 몸마저 가벼워진 덕분이었다. 어느새 그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26호(2020년 1월7~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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