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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샌더스 의원이 실제로 민주당의 최종 대선 후보 자리에 오를지, 설령 본선에 진출하더라도 백악관의 주인이 될지는 미지수다. 급진적 성향 탓에 중도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는 데다 민주당의 최대 자금원인 유대인과 강력한 결집력을 자랑하는 흑인의 외면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다.
◆‘밀레니얼 세대의 희망’
지난달 31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방송이 공동으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경선에 참여할 유권자들 가운데 27%(1위)가 샌더스 의원을 지지했다. 지난해 말까지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26%에 그치며 2위로 밀렸다. 이번 조사는 지난 1월 26~29일 유권자 428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표본오차는 ±4.74%였다.
지난해 12월 같은 조사에선 바이든 전 부통령이 28%로 1위, 샌더스 의원은 21%로 2위에 그쳤다. 샌더스 의원이 무서운 상승세로 한달 만에 판세를 뒤집은 셈이다. 아직 오차범위 이내지만, 샌더스 의원 지지자들의 충성심과 결집력이 더욱 강력하다는 점에서 실제 투표에선 무시할 수 없는 차이다.
첫번째 경선인 2월3일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선 중도 성향의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 선전했지만 이후엔 샌더스 의원의 우세가 예상된다. 부티지지 전 시장과 달리 현직 상원의원 신분인 샌더스 의원은 상원에서 열리는 트럼프 대통령 탄핵심판 일정 탓에 최근 아이오와주 유세에 집중하지 못했다. 또 초반 판세를 가를 두번째 경선인 2월11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는 진보 성향이 강한 동부 지역 특성상 샌더스 의원이 더욱 유리하다는 관측이다.
샌더스 의원은 미국 최대 정치세력 가운데 하나로 부상한 밀레니얼 세대(1981∼1995년 출생)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공화당의 텃밭’ 텍사스주에서조차 30세 미만 청년들 가운데 57%가 샌더스 의원을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다.
밀레니얼 세대가 주축인 미국 최대 사회주의자 단체 미국민주사회주의자(DSA)는 사실상 ‘샌더스 키즈’로 알려져 있다. DSA 소속으로 밀레니얼 세대의 ‘정계 아이돌’로 불리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 하원의원(뉴욕) 역시 2016년 대선 당시 샌더스 캠프 출신이다.
최저임금 인상, 전국민 단일 의료보험, 무상교육, 부유세 신설 등 샌더스 의원의 급진적 공약이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로 불리는 젊은 밀레니얼의 좌절감과 분노가 역설적으로 78세의 최고령 대선후보인 샌더스 의원을 통해 분출됐다.
그의 경제공약은 대기업과 월스트리트에 대한 젊은 세대의 적개심을 대변한다. 샌더스 의원은 미국의 법인세율을 현재 21%에서 35%로 인상하고 기업들의 세금 우대 조치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대규모 자사주 매입은 주가조작으로 간주해 금지하겠다고 했다. 또 연매출 1억달러(약 1200억원) 이상인 대기업 또는 상장사의 경우 노동자의 20%가 주주가 될 때까지 매년 노동자들에게 최소 2%의 주식을 제공하고, 이사진의 45%는 노동자들이 직접 선출토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샌더스 의원이 대권을 거머쥐기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의 최대 약점은 본선 경쟁력이다. 급진적 성향 탓에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흡수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CNN방송은 “민주당 지지자들 가운데 자신을 ‘매우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4분의 1도 안된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샌더스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분열적 정치인”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안으로 그를 지지할 명분이 없다”고 일갈했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샌더스 의원이 이념적으로 미국의 일부(부자)를 죄악시하고 분열을 선동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의 핵심 표밭으로, 높은 투표율과 강한 응집력을 보이는 흑인들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샌더스 의원들의 지지자들을 뜻하는 ‘버니 브로스’의 주축은 저학력 백인 남성들이다. 이들은 엘리트·유색인종·여성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이 특징이다. NBC방송은 샌더스 의원의 지지자들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지지층인 ‘MAGA(미국을 더 위대하게) 군단’의 극좌 버전”이라고 꼬집었다.
아직까지 미국 흑인들의 표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샌더스 의원과 거리를 두고 있다. 그는 최근 “몇몇 민주당 예비후보들이 더 급진적인 정책을 내놓으려 하지만 이는 여론과 동떨어진 것”이라며 사실상 샌더스 의원을 저격했다. 흑인들의 표심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였던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쏠려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미국 흑인 유권자들 가운데 50% 이상이 바이든 전 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유대인인 샌더스 의원으로선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미국 정계의 최대 돈줄인 유대인들로부터도 ‘비토’(거부) 대상으로 찍혔다. 자신을 유대인이 아닌 ‘폴란드계 이민자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며 유대인으로부터 선을 그어온 샌더스 의원은 중동정책을 놓고 오히려 ‘반(反) 이스라엘, 친(親) 팔레스타인’ 행보를 보여왔다. 이 때문에 미국의 유대인 로비단체들은 민주당 진영 슈퍼팩(Super PAC·정치활동위원회)을 통해 샌더스 의원에 대한 비판 광고까지 내보내기로 했다.
◆"反기득권 샌더스, 대선 승리할 수도"
트럼프 대통령도 샌더스 의원의 본선 경쟁력이 약하다고 판단, 대선에서 그와 상대하길 바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2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버니(샌더스)를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그는 사회주의자를 훨씬 능가한다고 본다. 그는 자신이 믿는 것에 충실하다"며 샌더스 의원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나는 샌더스 의원에 맞서 대선 준비를 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캠프 관계자는 미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에 "샌더스 의원은 강조할수록 트럼프 대통령에겐 이득이 된다"며 "샌더스 의원을 사회주의자로 낙인찍고 민주당 지지자들을 그 우산 아래 넣어버리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맞붙고 싶어하지 않는 후보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다. 중도 성향의 바이든 전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경우 부동표를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중도진보 성향의 민주당 주류 역시 본선 경쟁력이 약하다고 평가되는 샌더스 의원이 경선에서 승리할 것을 우려하고 대책을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샌더스 의원에 대한 각종 견제가 오히려 지지자들의 결집을 유도해 샌더스 열풍을 부추길 수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일각에선 바이든 전 부통령과 같은 온건파 후보들보다 색깔이 분명한 샌더스 의원이 오히려 본선 경쟁력이 높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UC(캘리포니아대)버클리 교수는 ”미국 정치지형은 이제 진보, 보수가 아닌 기득권 대 반(反)기득권으로 재편됐다“며 ”미국 유권자들 가운데 중도 부동층인 3분의 1는 아예 투표장에 나오지 않는 만큼 중도 성향의 후보들보다는 샌더스 의원과 같은 선명한 반 기득권 진영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김동석 미국한인유권자연대 회장은 ”중도 성향의 바이든 전 부통령이 가장 표의 확장성이 크다는 건 분명하다“면서도 ”만약 바이든 전 부통령이나 자금력을 갖춘 마이크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샌더스 의원도 본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상배 뉴욕 특파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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