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검침원이 전기 계량기를 검침하고 있다. /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전기요금 인상의지 확고하나 민생경제 불안에 발표 난망


한국전력의 ‘전기요금 현실화’ 작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복잡한 상황에 놓였다. 산업용을 포함한 전반적인 요금체계 개편으로 1조원이 넘는 적자를 해소하려 했지만 코로나19로 경제위기가 가중되면서 요금인상에 대한 부담이 커진 탓이다.


요금인상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적자문제 해소’ 역시 당위성에 힘이 빠졌다. 경영실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요금인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지만 코로나19에 따른 국제유가 급락으로 전력구매비용이 줄어들며 올해 실적개선이 예상돼서다.

명분 잃은 요금인상 추진

한전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 1조356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도 2080억원 적자에서 1조원 이상 손실 폭이 커진 것이자 2008년 2조7981억원의 적자를 낸 이후 11년 만에 최악의 실적이다.


한전은 적자원인으로 ▲냉난방 전력수요 감소 등에 따른 전기판매수익 하락 ▲무상할당량 축소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권비용 급증 ▲설비투자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한 감가상각비·수선유지비 증가 ▲미세먼지 대책에 따른 비용 증가 등을 꼽았다.

한전이 적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전기요금 현실화다. 가격을 올리면 수익성이 개선되는 만큼 경영난도 해소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지난해 “콩(원료)보다 두부(전기)가 더 싸다”, “전기소비와 자원배분 왜곡을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요금체계 개편을 해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잇따라 내놓으며 전기요금 인상에 불을 지폈다.


전기요금 현실화의 일환으로 한전은 지난해 말 ▲전기차 충전 할인 ▲전통시장 전기요금 할인 ▲주택용 절전 할인 등 3가지를 폐지한 바 있다. 한전이 2018년 할인혜택 명목으로 부담한 금액이 총 1조1434억원에 달하는 만큼 특례할인을 축소해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한전은 주택용 계시별요금제 도입 등을 포함한 전기요금체계 개편안을 지난해 말까지 내놓으려 했다. 산업용 전기요금도 개편 대상이다. 김 사장은 “산업용 경부하 요금과 농업용 할인 요금 조정은 국회 여야 모두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개편할 것”이라며 산업용 전기요금에 최우선적으로 메스를 들이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경제위기가 가중되면서 한전의 전기요금체계 개편은 추진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기업과 소상공인은 물론 가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다양한 분야에서 대대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계 역시 경제활력을 제고하기 위해선 기업의 경영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기요금을 인상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전기요금 등 공과금의 감면 또는 유예를 검토하라”고 주문한 상황에서 섣불리 전기요금 개편안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올해 실적개선 예상

더욱이 코로나19는 한전의 실적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연료의 수입의존도가 높아 국제유가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사들이는 전력도매가격(SMP)은 LNG발전 단가에 따라 결정되는데 통상적으로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LNG 가격이 동반 하락한다.

LNG 가격이 떨어지면 발전자회사의 LNG 원료비와 SMP의 하락으로 이어져 한전의 구입전력비가 감소해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두바이유는 지난 1월 배럴당 60달러대에 거래되던 것이 5월 기준 20달러대로 떨어진 상황이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3월 기준 SMP가격은 kWh당 83.35원이다. LNG 가격은 지난 1월 100만BTU당 3달러 후반대에서 지난달 1달러 후반~2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국제유가가 LNG가격에 반영되는데 통상 3개월이 걸리고 이 가격이 국내 발전단가에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돼 한전의 실적개선은 하반기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사진=뉴스1 황희규 기자
이종형 키움증권 연구원은 “유가하락이 한전의 실적개선으로 반영되는 시차는 총 5~7개월로 볼 수 있다”며 “8월부터 구입전력비가 급격히 떨어져 한전의 실적 개선효과가 예상보다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일 뿐 근본적인 경영개선책은 아니어서 한전의 전기요금 현실화 추진은 중단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전기요금 자체를 인상하기보단 ‘전력구입비 연동제’ 도입을 추진하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전력구입비 연동제는 연료비나 전원별 발전량 변화 등에 따라 전력구입비가 변동하면 전기요금도 그에 맞춰 올리거나 내리는 요금체계를 말한다. 정부는 2011년 국내에 이 제도를 도입했다가 당시 유가가 급등하며 전기요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지자 제도를 폐지한 바 있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요금을 개편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관련 논의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당초 상반기 내로 개편안을 내놓으려 했으나 코로나19로 시기를 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현재로선 발표시기를 특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4호(2020년 5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