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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았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온 5·18은 피해자 명예회복, 전두환·노태우 등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이 일부분 이뤄졌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아직 미흡하다. 무엇보다 발포명령자를 찾아내지 못했다. 나아가 ‘어둠’의 틈을 타 운동의 참뜻을 훼손하는 세력들이 준동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5·18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8년 만에 재평가된 5·18… 진상규명은 현재진행형
5·18 민주화운동은 운동 8년 만인 1988년이 돼서야 민주화투쟁으로 평가받았다. 지난 1988년 열린 광주청문회에서 5·18이 폭동이 아닌 민주화운동으로 제이름을 찾아서다. 이어 ▲1990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정 ▲1996년 국가기념일 지정 ▲2001년 관련 피해자 5·18 유공자 지정 등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움직임은 미미했으며 광주시민들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1994년부터는 '5·18진상규명과 광주항쟁정신 계승 국민위원회'를 중심으로 민주화운동 학살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고소와 고발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같은해 7월 전두환과 노태우 일당 35명을 서울지방검찰청에 고소 및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1년 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씨와 노씨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나머지 33명에게는'무혐의' 결론을 내려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이후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5·18 학살자처벌 특별법 제정' 헌법 소원과 비리 청산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1995년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특별법 제정을 지시했다. 또 김 전 대통령이 1995년 '한국 근현대사에서 존재하는 어둡고 비극적인 과거를 청산하겠다'는 공약과 함께 '12·12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면서 전씨와 노씨에 대한 수사는 다시 시작됐다.
수사를 벌인 검찰은 두사람을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에 넘겼고 이듬해 8월 ▲반란수괴 ▲반란모의참여 ▲'반란중요임무종사 ▲불법진퇴 ▲초병 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참여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 등 13개 혐의를 받는 전씨와 노씨에게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하지만 1997년 전씨와 노씨는 사면을 받았다. 특히 노씨는 사면을 받은 뒤 '광주사태는 중국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식의 망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노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도 12·12 군사반란과 5·17내란, 5·18 학살을 왜곡으로 정당화하려고 새 공분을 샀다.
결국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이 이뤄졌는지, 시민을 향한 집단 발포를 누가 명령했는 지 등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진상조사 전환점 된 '전일빌딩'
… 시민들에게 헬기사격5·18 그 날의 진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나 했던 상황에서 '전일빌딩'은 진상조사의 전환점이 됐다. 2016년 12월13일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던 광주 동구 전일빌딩 10층에서 헬기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총탄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는 2017년 1월12일 광주시에 전달한 보고서에서 전일빌딩 외벽에 탄흔 35개, 10층 기둥 바닥에 최소 150개의 탄환을 식별했다면서 "호버링(일정한 고도를 유치한 채 움직이지 않은) 상태의 헬기에서 발사됐을 가능성이 추정되나 사용 총기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5·18민주화운동 헬기사격 및 전투기출격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를 발족시키고 본격적인 조사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 특조위는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향해 헬기사격을 가했고 공군의 전투기도 폭탄을 장착한 채 대기했던 사실 등을 확인했다.
정부의 이 같은 인정에도 전두환은 헬기사격에 대해 재차 부인했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자신의 회고록에서 헬기사격 목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의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기소됐다.
이후 전씨는 재판에 출석해 "내가 알고 있기로는 당시에 헬기에서 사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만약에 헬기에서 가격을 했더라면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그러한 무모한 짓을 대한민국의 헬기 사격수인 중위나 대위가…, 난 그 사람들이 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11일에는 발포명령자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왜 이래"라고 말하며 화를 내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해 3월11일에는 발포명령자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왜 이래"라고 말하며 화를 내는 모습도 보였다.
5·18 민주화운동 미해결 과제… 발포명령자는 누구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지난 12일 출범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는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발포명령자를 찾는 등 미해결 과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송선태 5·18진상조사위원장은 "현재 과거 조사 재판 기록과 군관련 기록은 전면 데이타 베이스를 60만쪽 이상을 구축했다. 당시 작전명령 지시철·계엄상황일지·관련 문서 등등이 포함됐다"며 "군 자료는 그동안 여러차례 조직적인 소각과 왜곡이 진행됐다. 모든 관련 자료에 1980년 5월18일 전남도청앞 발포 기록은 단 한줄도 없다. 참으로 해괴하고 의아스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조사위는 분야별로 ▲조사1과(최초 발포와 집단발포 책임자 및 경위 조사, 사망사건 조사) ▲조사2과(민간인 집단학살 사건 조사, 행방불명자 조사) ▲조사3과(북한군 개입 여부 및 북한군 침투조작 사건 조사, 성폭력 사건 조사)로 구성됐다. 또 향후 분야별로 전문 교수(학자) 자문단과 법률 자문단을 각 15명 내외로 구성해 조사 활동과 병행 운영할 계획이다.
조사위는 '처벌'에 중점을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위원장은 "(조사위는) 범죄적 사실을 조사해서 처벌하는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역사적·화해치유적 진실들을 포괄적으로 조사할 것"이라며 "처벌을 회피하거나 우회하지는 않겠다. 다만 포괄적 진실을 밝히는 데 주력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조사위는 최대 3년 진상규명 활동을 수행하며 최초발표 및 집단발포 책임자 및 경위·사망사건·집단학살·행방불명자·성폭력사건과 군 비밀조직의 역사 왜곡·조작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해 발포 명령자와 행방불명자 찾기 등 미완의 과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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