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는 감정평가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 개정을 검토 중이다. 일반적으로 은행과 감정평가법인은 연간 단위로 계약을 맺고 불특정 다수의 감정평가 업무위탁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은행이 여러개의 법인에 감정을 의뢰하고 결과적으로 수수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 구조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민간 감정평가사업계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대 고객인 은행으로부터 휘둘리는 독립성 훼손 문제를 해결할 법안 개정이 추진된다. 부동산담보대출을 진행할 때 가격 감정은 대출 한도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아파트의 경우 대부분 은행들이 KB 시세를 이용해 가격 감정을 진행하지만 토지나 빌라·단독주택, 상가 등은 전문 감정평가사가 가격을 감정하고 감정가격 기준으로 대출한도를 정한다. 문제는 은행들이 이 감정가격을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하는 관행이 수십년째 지속됨에도 감정평가사들이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출 10억원 이상 나오게 하라"

25일 감정평가업계와 정부 등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감정평가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내용의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 개정을 검토 중이다.


감정평가사의 독립성과 투명성에 대한 논란은 약 20년 전인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은행과 감정평가법인은 연간 단위로 계약을 맺고 불특정 다수의 감정평가 업무위탁을 하게 된다. 문제는 은행이 여러개의 법인에 감정을 의뢰하고 결과적으로 수수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가능한 구조다.

이를테면 빌라를 담보로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한 A씨가 있다고 가정하자. 은행에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의 기준이 되는 빌라 가격의 탁상감정을 외부 감정평가사에 의뢰하게 된다. 이때 은행은 감정평가사나 감정평가법인 여러개에 가격 감정을 의뢰하고 그 중 한개를 최종적으로 선택해 감정 건별로 수수료를 제공하거나 아예 감정평가를 취소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감정평가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공짜로 감정평가 업무를 하고 그마저 수수료를 못받을 수 있는 불안한 구조적 문제 때문에 감정평가사가 은행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며 "은행 직원이 '가격을 얼마까지 맞춰줄 수 있냐'는 무언의 압박을 하는 게 관행적으로 굳어졌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대형 시중은행들은 14개 이상의 감정평가법인과 협약을 맺는다.
감정평가사의 독립성과 투명성에 대한 논란은 약 20년 전인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엉터리 감정평가, 글로벌 금융위기 단초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오바마정부가 포괄적 금융규제법인 '도드-프랭크법'을 마련, 감정평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법안을 추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단이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가 무분별한 부동산 대출을 일으켜 재발을 막기 위함이다.

감정평가업계에 따르면 감정평가 매출액 가운데 부동산 담보가치에 대한 감정평가 매출은 전체의 44%를 차지한다. 지난해 말 감정평가 매출액 총액은 8636억원이다. 담보평가 의뢰인은 일부 생명보험사를 제외하고 대부분 은행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9월 한국감정평가사협회의 '문서 탁상감정'을 '담합'이라고 보고 규제했는데 이 역시 은행의 갑질 관행으로부터 나온 사례라는 게 일부의 시각이다. 대출실행 전 은행이 감정평가법인에 대략적인 감정가격을 문의하고 이를 문서로 받으면 '문서 탁상감정'이다. 정식 감정이 아니라 사전 감정이므로 법상 위반 소지가 있다. 협회는 사전 감정가격을 구두로만 제공토록 했다가 담합으로 제재 받았다.

문서 탁상감정은 수수료를 받을 수 없는데 정식 감정평가에서 평가액이 줄어들면 은행이 문제 삼거나 거래가 중단될 수 있다는 게 감정업계의 얘기다. 현재 협회는 공정위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