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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성공 가능성은 더 희박해진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일 현 미국 상황과 비슷했던 1968년과 1979년 사례를 비교하며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충격이 올 경우 유권자들은 새로운 선택을 하곤 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등 돌릴 미국 시민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말이다.
1968년 미국이 베트남전으로 인해 반전 시위가 극에 달할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의 지지율은 크게 떨어졌다.
같은해 1월30일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테트공세를 시작해 미군을 지원하는 남베트남의 30여개 이상의 도시를 공격했다. 미국 내에서는 긴 전쟁동안 아무런 실익 없이 피해만 커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는 거친 반전 시위로 이어졌다.
같은해 4월에는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당해 미 100여개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각 주정부는 통행금지령을 내렸는데 현재 내려진 통금은 이때 이후 처음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홍콩독감까지 유행해 미국에서만 10만명 정도가 사망하기도 하는 등 현재와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악재가 겹치면서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은 재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고 같은해 11월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아예 정권 교체를 선택했다. 민주당 소속이었던 존슨 대통령을 이어 허버트 험프리 부통령이 후보로 나왔지만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승리를 가져갔다.
1979년에는 미국이 이란과 갈등을 빚으면서 외교적 굴욕을 당하고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경제 불황 속 물가상승)을 겪었다.
같은해 11월4일 이란 대학생들이 주 테헤란 미 대사관을 습격해 미 외교관과 대사관 직원 52명을 인질로 잡아 444일간 억류했다. 미국은 특수부대까지 투입해 구출 작전을 실시했지만 실패했다. 이 사건은 미 역사상 가장 외교적 굴욕으로 남기도 했다. 이듬해 미국은 이란과 단교하고 경제 제재를 단행했다.
경제난도 심각했다. 1978년 미국에서는 2차 오일쇼크가 발생해 1981년까지 유가가 급등했고 실업률은 6%에 육박하며 인플레이션은 13.3%를 기록했다.
카터 대통령은 악재에 지지율이 급락했고 1980년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하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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