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품 불매운동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닛산이 국내시장을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닛산전시장. /사진=임한별 기자
‘노재팬’(No JAPAN).

아베 정권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로 촉발된 ‘일본산 불매운동’으로 국내에서 영업 중인 일본 브랜드가 설자리를 잃어간다. 수입자동차시장에서도 일본 브랜드의 약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대중 브랜드인 ‘닛산’이 국내 진출 16년 만에 철수를 발표하는 등 시장재편이 일어났다. 학계에선 지금과 같은 현상이 지속될 경우 제2의 닛산 사례가 충분히 나올 것으로 본다.

꺼지지 않는 불씨 ‘노재팬’

국내 영업 중인 일본차 브랜드는 토요타, 렉서스, 혼다, 닛산, 인피티니 등이다. 이들의 판매실적은 2018년 4만5253대에서 2019년 3만6661대로 약 19% 감소했다. 올들어 5월까지 일본차 판매량은 7308대로 전년 동기 대비 약 63% 급감했다.

2018년 수입차시장에서 17.4%였던 일본차 점유율은 이듬해 14.9%로 전년대비 2.5% 감소했다. 일본차 판매 점유율이 15%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16년 이후 처음이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혼다 등은 신차 출시 계획도 수립하지 못했다.


불매운동을 버티지 못한 닛산은 한국시장 내 영업을 접고 철수키로 했다. 2019년부터 철수설에 시달려온 닛산은 5월28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올해 12월 말 부로 한국시장에서 철수한다”며 “글로벌 본사는 한국시장에서 지속가능한 성장구조를 갖추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소비자는 여전히 일본제품 구매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인터넷 설문조사 플랫폼 패널나우가 6월15일과 16일 이틀간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조사했다.

1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일본에 대한 반감은 여전한 모습이다. 전체 응답자 2만805명 중 82.3%인 1만8559명은 ‘여전히 불매운동에 동참해 일본 제품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불매운동이 시들해졌으며 일본제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는 의견은 전체 17.7%인 3692명에 불과했다.


구매의향이 있다는 응답자는 ‘시들해진 것 같다’, ‘반일감정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다’라는 의견을 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불매운동을 지속한다는 응답자는 ‘불매운동이 다소 시들해졌지만 앞으로도 구매하지 않겠다’, ‘아직은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대체품이 없는 경우가 아니면 구매하지 않으려고 한다’ 등의 의견을 제시하며 여전히 반일감정이 상당함을 보여줬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독일차 등을 선호하는 현상이 여전하다”며 “일본차의 판매부진이 수입차시장 전체에 끼칠 영향은 사실상 없다고 본다. 닛산, 인피니티를 비롯한 일본차 수요를 다른 브랜드가 나눠갖는 형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설문조사업체 패널나우를 통해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살펴봤다. 불매운동을 계속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일본차 철수 계속될까

토요타, 렉서스, 혼다 등은 국내 철수계획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지만 학계의 시각은 다르다. 반일감정 장기화로 일본차의 추가적인 철수가 나올 수 있다는 것. 판매부진을 이유로 국내 철수를 선언한 일본차는 닛산 외에 미쓰비시, 스바루 등이 존재한다.

미쓰비시자동차는 2008년 9월 딜러사인 MMSK를 통해 국내시장에 첫발을 내딛었다. 첫해 65대를 판매하는데 그쳤고 이후에도 큰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미쓰비시에 대한 소비자의 부정적인 인식이 결정적이었다. 미쓰비시자동차의 모회사는 미쓰비시중공업이다.

시민단체는 2009년 미쓰비시중공업과 진행하던 근로정신대 관련 협상이 결렬된 뒤 1인 시위 등을 벌이며 국내 판매를 중단하라고 압박했다. 미쓰비시자동차는 2009년 483대, 2010년 546대, 2011년 34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부진했고 결국 국내 사업을 포기했다. 한차례 철수 후 재기를 노린 미쓰비시자동차는 2012년 3월 CXC모터스와 함께 영업활동에 나섰지만 그해 판매량이 81대에 머물렀다. 2013년에도 판매량은 146대로 저조했고 이후 국내 사업을 완전히 접었다.


2010년 국내시장에 진출한 스바루도 일본차 철수의 대표적 사례다. 스바루는 일본 후지중공업의 자동차 브랜드다. 2010년 5월 국내 진출 첫해 384대를 판매했다. 레거시와 아웃백 등 일부 모델을 판매하던 스바루는 이듬해 664대로 실적개선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2012년 627대로 재차 판매량이 감소하면서 그해 12월 31일부로 판매활동을 중단했다.

학계에선 닛산의 철수가 끝이 아닐 것으로 판단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닛산, 인피니티뿐 아니라 혼다 역시 판매 정체기”라며 “결과적으로 토요타 정도만 연명하고 유럽, 독일, 미국 등이 강세를 보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닛산의 철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일본 브랜드의 철수가 반복되는 상황”이라며 “대일감정과 무역 관련 보이지 않는 전쟁 등이 끝난 시점에서 회복세에 돌아서야 하는데 국내 소비자가 많이 등을 돌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특히 “일본차 브랜드의 철수가 또 나올 수 있다. 일본차는 마케팅, 홍보활동을 최소화하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며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이 화재와 배출가스 조작 등에 따른 과징금 등의 문제가 있음에도 공격적인 마케팅활동으로 국내 시장에 대한 애착을 보여준 것과 상반된다. 국내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차 브랜드가 지금과 같은 영업전략을 고수하고 매출, 영업이익이 감소한다면 추가적인 철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