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찬 회계사.© 뉴스1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 회계사들은 부품처럼, 값싼 고정급 인력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회계법인에서 몇년 일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회계법인의 인력 회전율이 높은 것은 다들 알고 있지 않느냐."

1988년생으로 올해 32살인 황병찬 회계사는 지난 23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회계법인 안에서 젊은 회계사들이 겪은 어려움들을 거침없이 토로했다.


27일 황 회계사는 한국공인회계사회에 처음으로 생긴 청년부회장(대우)직을 맡게 된다. 그는 지난 2018년 말부터 삼일회계법인 노조위원장으로, 올해 초부터 청년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본업인 회계사를 빼고도 직함만 3개인 것이다.

황 회계사는 "예전에는 저가수임 경쟁이 엄청났다. 제가 처음 회계법인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500만원짜리 용역을 가져와서 사람을 투입했다. 파트너 입장에서는 사람을 돌릴수록 돈이 되기 때문에 저가수임이 만연하고 당연시 됐다"며 "그런데 저가수임으로 감사의 질은 낮아지고, 수임료은 더 낮아지고, 이에 따라 급여가 낮아지고, 결국 심신이 치진 젊은 회계사들이 업계를 떠나는 악순환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그는 "회계법인 내부에서는 부품 취급하고, 외부에서는 회계사에 대한 처벌만 계속 강화하니깐 젊은 회계사들이 위축됐다"면서 "감사인 지정제가 아닌 자유수임제를 할 때는 젊은 회계사들의 자존감이 완전히 바닥이었다. 필드에서는 자본시장의 파수꾼이 아니라, 거의 용역인력이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런 회계업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약 1년 반 전 대형 회계법인들이 주 52시간 이상 근로에 대한 보상을 하기 시작하면서다. 이로 인해 우선 저가수임이 눈에 띄게 줄었다. 500만원 짜리 용역을 처리한다고 회계사에게 일을 더 시켜봤자 인건비만 더 들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일들은 자연스럽게 빅4가 아닌 중견·중소 회계법인이 맡게 됐고, 대형 회계법인에 있는 젊은 회계사들의 퇴사·이직률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감사인 지정제가 도입되면서 회계법인들이 기업의 눈치를 보며 적정의견만 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젊은 회계사들의 자존감을 조금씩 높이는 배경이 됐다.

황병찬 회계사.© 뉴스1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회계사는 젊은 회계사들의 업무환경 등을 위해 여전히 바꿔야 할 게 많다고 보고 있다.

그는 "1990년도부터 회계사를 1000명씩 뽑기 시작했다. 그 이전 세대 회계사는 2000~3000명 있었는데, 그 이후에 2만명이 생겨났다. 이들 세대 간 갈등이 있다"면서 "연장선상에서 지금도 빅4에서는 주 52시간 초과 근로를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다. 또 중견 회계법인의 대부분은 아직 유연근로제가 도입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일주일에 52시간을 근무한다는 것은 꽤 많은 야근을 동반한다. 52시간이라는 기준을 40시간으로 바꾼다면, 이전 세대도 젊은 회계사들을 동일한 인격체로 여기는 등 많은 부분이 개선될 것"이라며 "다만 비용이 크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고 했다.

회계업계의 뜨거운 감자인 회계사 선발인원에 관해서는 점진적인 축소가 답이라고 봤다. 회계사를 많이 뽑아놓으면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회계사가 넘쳐나는 상황을 이용해 인력을 값싸게 채용하려고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저가수임과 감사품질 저하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황 회계사는 "올해는 1100명이 뽑히는데 빅4가 모두 수용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에는 일자리를 못구하는 회계사가 생길 수도 있다. 막무가내로 뽑아버리니깐 벌어지는 일"이라며 "밥그릇 다툼을 하자는 게 아니다. 정부의 일자리 늘리기 차원이 아니라, 진짜로 회계사를 늘려야 한다면 금융당국이 정확한 증원 근거를 공개하고 현직 회계사들과 토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내년 회계사 선발인원을 유지·증원한다면 적극 대응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최근 정의기억연대를 통해 이슈가 된 공익법인의 회계부실과 관련해서는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그는 "청년 회계사들이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서 교육 등의 지원책에 관해 계획을 짜고 있다. 회계를 투명하게 해야 기부문화가 활성화된다는 점을 공익법인들도 공감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황 회계사는 1971년 설립 이후 줄곧 무노조 경영을 해온 삼일회계법인에서 회계업계 최초로 노조를 만들어 노조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저도 일개 직원이기 때문에 노조를 만들 때 두려움이 많았다. 그런데 제일 안타까웠던 것은 충분히 바꿀 수 있는데,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바꾸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많았다"고 돌아봤다.

한공회에 처음으로 생긴 청년부회장을 맡게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는 "회계사의 등록번호가 2만번 중반대까지 왔는데 한공회 이사회 구성원들은 5000번대 이전 세대로 구성돼 있다. 최근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공회에 잘 전달되지 않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현재 회계사 4명 중 3명이 40대 초반 이하인 젊은 회계사로 분류된다.

황 회계사는 "이런 상황에서 청년부회장직을 신설한 것은 개혁적인 인사라고 볼 수 있다. 김영식 회장이 한공회를 바꾸겠다고 했는데, 이게 그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갈등의 시작은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세대 간 소통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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