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시오 포체티노 전 토트넘 홋스퍼 감독이 이번 시즌 초반 성적 부진을 이유로 전격 경질됐다. /사진=로이터
20년 넘게 한 팀과 리그를 지킨 감독들이 있었다. 1986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지휘봉을 잡은 알렉스 퍼거슨 경과 1996년 아스날에 부임한 아르센 벵거 감독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각 27년과 22년 팀을 이끌며 리그를 대표하는 감독이 됐다.

하지만 현대 축구에서 이들의 아성을 다른 감독들이 뒤쫓기는 역부족이다. 세월이 흐르고 갈수록 더 많은 돈이 축구계로 흘러들며 감독들의 성적을 기다려주는 시간도 갈수록 짧아진다. 아무리 과거에 좋은 성과를 거둔 감독이라도 추락한다면 다시 올라설 기회를 부여받기 쉽지 않다.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번이라도 감독을 바꾼 구단은 모두 5곳이다. 최종 순위대로 보면 토트넘 홋스퍼, 아스날, 에버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왓포드가 시즌 도중 감독 교체를 단행했다. 이 중 '순위 상승'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 팀은 왓포드 단 한곳뿐이다. 감독을 바꾼 팀들 대부분이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는 뜻이다.

이번 시즌 가장 심각한 부진을 겪은 두 팀을 꼽으라면 단연 토트넘과 아스날을 들 수 있다. 토트넘은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아스날은 유로파리그 준우승을 각각 거두며 밝은 미래가 예상됐다. 현실은 전혀 달랐다. 두 팀은 시즌 중반까지 10위권 내외를 전전하며 쉽사리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에 올라서지 못했다.


칼은 토트넘이 먼저 빼들었다. 구단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을 내쳤다. 새로운 감독으로는 '명장' 조세 무리뉴가 낙점됐다. 무리뉴는 소위 3대 리그(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모두 우승컵을 들어본 감독이자 UEFA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를 모두 우승해 본 감독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감독직을 맡았던 첼시와 맨유에서는 모두 불명예스럽게 나온 아픈 기억도 가지고 있다.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던 토트넘과 무리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손을 잡았다.

무리뉴는 일단 최소한의 성과를 이뤄냈다. 10위권을 오가던 토트넘을 급속도로 안정시킨 뒤 한 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새해 들어 해리 케인, 손흥민 등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컵대회에서 모두 탈락하고 순위도 하락했으나 코로나19 공백기 이후 다시 스퍼트를 올려 끝내 6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토트넘은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 진출권 한장을 획득했다.


아스날의 미켈 아르테타 신임 감독도 흔들리던 팀을 어느 정도 추스렀다. 아르테타 부임 당시 아스날은 내외부적으로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었다. 경기력, 특히 수비 조직력은 모래알에 가까웠고 약팀과의 경기에서도 비기거나 패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주장이던 그라니트 자카가 자신의 부진을 비난하는 홈 팬들과 언쟁을 벌이는 등 혼란의 연속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임자 우나이 에메리 감독은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이다가 지난해 12월 결국 경질됐다.

아르테타 감독은 빠르게 팀을 정상화시켰다. 새해 첫 경기던 맨유전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유로파리그에서 조기 탈락하긴 했으나 전통적으로 강했던 FA컵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며 결승까지 진출했다. 만약 아스날이 다음달 2일 예정된 FA컵 결승에서 첼시를 누르고 우승한다면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손에 넣게 된다. 비록 리그 순위는 21세기 들어 가장 낮은 8위로 매듭지었지만 무너지던 팀을 다잡았다는 점에서 성과를 인정하기에는 충분하다.


이외 3개 팀은 모두 시즌 중반 강등권에 내려앉았던 팀이다. 리그 17라운드를 중심으로 프리미어리그 순위를 살펴보면 15위부터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에버튼, 아스톤 빌라, 사우스햄튼, 노리치 시티, 왓포드가 자리잡고 있다. 이 중 빌라와 사우스햄튼, 노리치를 제외한 나머지 3개 팀이 모두 시즌 중반 반전을 노리고 감독을 바꿨다.

에버튼에는 마르코 실바 대신 유럽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왔다. 웨스트햄에는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을 대신해 '중위권 팀 전문 감독' 데이비드 모예스가 부임했다. 두 감독은 모두 강등권 탈출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했다. 특히 안첼로티 감독은 리그 16위까지 떨어졌던 팀을 12위까지 끌어올리며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왓포드는 감독 교체라는 강수에도 끝내 강등권 탈출에 실패했다. 왓포드는 시즌 초반 성적이 부진하자 하비 가르시아 감독을 해고하고 과거 팀을 이끌었던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 감독을 데려왔다. 하지만 키케 감독도 반전을 이끌어내지는 못했고 왓포드는 리그 중반까지 단 1승에 그치는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왓포드는 재차 키케 감독을 대신해 나이젤 피어슨 감독을 긴급 수혈했다.

피어슨 감독 체제에서 왓포드는 점점 경기력을 끌어올렸다. 특히 지난 3월 열린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3-0 깜짝승을 거두며 리버풀의 무패 행보를 저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왓포드 운영진은 리그 종료를 단 2경기 남겨놓은 시점에서 리그 17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던 피어슨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구단의 목숨이 단 2경기에 걸린 가운데 피어슨 감독만 믿고 가기에는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왓포드는 피어슨 감독 경질 이후 맨시티(0-4 패)와 아스날(2-3 패)에게 연이어 패하며 다시 강등권인 18위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