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현장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기 / 울주 청년의 꿈 / 대한해협의 거인 / 신격호 / 울림이 남아 있다 / 거기 가봤나?’ 지난 1월 별세한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와석 금석문에 새겨진 글귀다. 이중 ‘거기 가봤나’는 신 명예회장이 평소 직원에게 현장 확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하던 말로 고인의 경영 철학이 담겨 있다. 

‘거기 가봤나’로 대표되는 신 명예회장의 현장 경영 정신을 아들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이어받았다. 최근 신 회장은 주말마다 현장을 찾는 강행군을 벌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그룹이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은 가운데 현장에서 해법을 찾는 모양새다.

유통·식품·화학… 그룹사 점검 나선 신동빈 


신 회장은 최근 현장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5월 일본에서 귀국한 뒤 수시로 현장 방문에 나섰다. 귀국해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친 신 회장은 5월17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방문으로 계열사 현장 점검을 시작했다. 같은 달 23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롯데백화점·롯데마트·롯데월드를 방문했으며 31일엔 다시 롯데백화점 본점으로 갔다. 

6월 들어서도 ▲3일 경기 안성 롯데칠성음료 스마트팩토리 ▲6일 롯데마트 광교점·롯데하이마트 메가스토어 수원점 ▲13일 롯데프리미엄아울렛 기흥점을 방문했다. 17일에는 시그니엘 부산 개관식에 참석했다. 이어 ▲20일 롯데백화점 노원점·롯데마트 구리점 ▲27일 롯데백화점 인천터미널점을 찾아 직접 고객의 반응을 듣기도 했다. 

신 회장은 7월에도 ▲롯데제과와 롯데칠성 양산 공장 ▲롯데아울렛 이천점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롯데푸드 광주공장 등 현장 방문을 이어갔다. 같은달 25일에는 여수 롯데케미칼 제1공장과 국동 롯데마트를 점검하면서 여수 벨메르바이 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 방문, 경쟁업체의 사업장까지 살펴봤다. 

1일에는 롯데슈퍼 프리미엄 공덕점을 찾아 식품 코너와 외식 매장을 둘러봤다. 현장에는 롯데 유통BU(사업부문)장인 강희태 부회장도 함께했다. 신 회장은 매장에서 직원을 격려하고 과일코너에선 “샤인머스켓의 신선도가 좋다”며 제품을 사기도 했다. 8일엔 대전 롯데마트 대덕점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이 매주 꼬박꼬박 사업장을 찾는 건 그룹 전체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예고된 방문이라고 하더라도 회장의 등장에 임직원은 긴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 실제로 신 회장은 현장에서 “오래 전 공유한 내용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임직원에게 쓴소리를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6월 경기 안성시에 위치한 롯데칠성음료 스마트팩토리에 방문해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롯데지주


광폭 행보 이유는… “위기 타개책 찾는다”


일각에서는 신 회장의 행보가 부친인 신 명예회장의 현장 중심 경영 방침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신 명예회장은 롯데월드타워 공사 당시 수시로 현장에 방문해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롯데월드몰 재개장 때도 직접 찾아 불편함이 없는지 살폈다. 

신 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현장에서 답을 찾는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부족한 점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개선점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된 상황에서 타개책을 강구하려는 행보”라고 설명했다. 

앞서 신 회장은 지난달 열린 하반기 롯데 VCM (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 회의)에서도 대표이사들에게 “우리가 해왔던 사업의 경쟁력이 어떤지 재확인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문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최근 현장을 잇따라 방문한 소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 회장은 “직접 가서 보니 잘하는 것도 있지만 부족한 점도 보였다”며 “이처럼 어려운 상황일수록 본업의 경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애프터 코로나’가 곧 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위드 코로나’(With Corona)가 내년 말까지는 계속될 것 같다”며 “경제상황이 어렵다고 너무 위축되지 말고 단기 실적에 얽매이지 말고 장기적인 측면에서 본업의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롯데쇼핑은 올해 2분기 매출 4조459억원, 영업이익은 14억원을 기록했다. /표=롯데쇼핑(단위:십억원)


실제로 롯데는 현재 그룹 내 상당수 계열사가 동시에 어려움을 겪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그룹의 주축인 유통부문은 중국의 사드 보복을 시작으로 지난해 일본제품 불매운동까지 거치며 실적이 뒷걸음질 쳤다. 최근에는 코로나19라는 악재를 만나 큰 타격을 입었다. 

롯데쇼핑은 올해 2분기 매출 4조459억원, 영업이익은 1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9.2%, 영업이익은 98.5% 감소한 수치다. 당기순손실도 1990억원에 달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대형 집객시설 기피 및 소비 심리 악화 영향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에 롯데쇼핑은 기존 사업 정리 수순에 들어갔다. 당초 전체 점포의 30% 가량인 200여개 점포를 3∼5년에 걸쳐 정리할 방침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구조조정 시기를 앞당겼다. 롯데쇼핑은 목표치의 절반 이상인 120여개를 연내에 닫기로 했다. 신 회장의 공격적인 현장 경영에 무게감이 실리는 이유다. 

신 회장은 현장경영을 발판 삼아 ‘위드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다는 각오다. 최근 지분 상속을 완료하면서 원톱 체제를 다시 한 번 굳힌 점도 신 회장이 그리는 위드 코로나 시대 전략의 속도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신 회장은 신 명예회장의 유산 상속세 신고 기한인 7월31일 전체 회사별 상속 지분 중 41.7%를 받았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25%,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33.3%를 상속받았다. 

계열사별로는 신 회장의 롯데지주 지분율이 11.75%에서 13.04%로 증가해 최대주주 지위가 유지됐다. 롯데쇼핑 지분은 9.84%에서 10.23%로 늘었다. 롯데제과와 롯데칠성음료는 기존에 신 회장의 지분이 없었으나 이번 상속으로 각각 1.87%, 0.54%를 보유하게 됐다. 

상속 절차를 마무리 지은 신 회장은 광폭 현장경영을 이어나가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룹을 정비하는 데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그가 현장에서 찾은 답이 결과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인다.

☞프로필
▲1955년생 ▲아오야마가쿠인대학교 경제학부 학사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MBA ▲일본 롯데 이사 ▲롯데그룹 부회장 ▲롯데닷컴 대표이사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롯데호텔 정책본부 본부장 ▲한국방문의해위원회 위원장 ▲롯데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