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오가고 있다./사진=뉴스1 민경석 기자
대학병원장들이 국민앞에 고개를 숙였다. 의대생 의사 국가고시(국시) 기회를 허락해달라는 취지다. 그럼에도 정부와 여론은 아직까지 싸늘하다.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이 대리사과 말고 전면적으로 나서 사과해야한다는 말도 포착됐다.

"질책은 선배에게" 고개숙인 병원장들

대학병원장들은 지난 8일 의대생들의 의사 국가고시(국시) 거부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통해 “국시 기회를 허락해달라”며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의대생들의 국시 문제로 국민들께 심려끼처 송구하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김연수 서울대병원장과 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을 비롯해 윤동섭 연세대의료원장, 김영모 인하대의료원장 등이 참석했다. 그동안 의료계에선 국시 재응시 기회를 고려해달라는 성명서와 호소문 등을 발표한 적은 있지만 공식 사과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김영훈 고대의료원장은 "코로나 팬데믹이 언제 종식될 지 모르는 이 엄중한 시기에 2700여명의 의사가 배출되지 못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든 현실"이라며 "질책은 선배들에게 해달라"고 말했다.
김연수 서울대병원장과 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을 비롯해 윤동섭 연세대의료원장, 김영모 인하대의료원장 등 대학병원장들이 의사 국가고시 재응시 관련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사진=임한별 기자

대국민사과에도 싸늘한 정부와 여론

의료계 수장격으로 여겨지는 대학병원장들이 대국민사과를 했음에도 여론은 싸늘하다. 오히려 의대생들의 뚜렷한 움직임이 없는 것에 대해 대리사과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미 의사 국시 일정을 미루며 국시 거부에 나선 의대생들에게 기회를 줬음에도 자발적으로 시험을 거부한 만큼 재응시는 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국가고시인 만큼 재응시를 해줄 경우 다른 국가고시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의견도 보인다.


여론과 함께 재응시의 칼을 쥐고 있는 정부도 입장은 마찬가지다.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 7일 "의대생 몇명이 사과한 것만으로 의사국시 실기시험에 재응시를 허용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또 8일에는 이용호 의원의 "(대리 사과인데) 정부가 의대생들에게 기회를 주느냐"는 질문에 박능후 장관은 "이 문제는 의료계와 정부가 한 몸으로 대국민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며 "1년에 수백개 국가시험을 치르는데 어느 한 시험만 그것도 응시자들 거부로 인해 재응시를 하는 것은 쉽지 않고 국민의 양해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사실상 대학병원장들의 대국민사과에도 재응시는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이 같은 입장은 당사자들의 사과를 받아야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대학병원장들의 대국민사과에서도 당장 내년부터 2700여명의 의사 수 부족으로 예상되는 의료체계 등의 문제를 들고 용서해달라는 사과문은 오히려 여론을 싸늘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이창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대학병원장들의 대국민 사과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아직까지 기본적으로 (재응시에 대한) 정부 입장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사들만이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독점적 상황에서 단체행동을 했다"며 "국민의 생명을 다투는 필수의료분야에 대해 젊은 의사들이 진료를 거부한 상황을 관리해야 할 병원이나 교수들로 인해 국민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은 부분에 대해 명확히 해소되지 않은 측면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사진=장동규 기자

의사 수 부족하다지만 "인기과만 힘들 것"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의사 국가실기시험 응시자는 446명 뿐이다. 약 86%의 의대생들이 의사 국시를 거부한 것이다. 의료계에선 이를 두고 당장 내년부터 의사 수가 부족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의료계는 이미 서울과 인기과 쏠림 현상으로 비인기과에선 그다지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의료계 종사자는 한국의 의료계가 서울 빅5로 일컫는 5대 병원의 인기 과목에 쏠림 현상은 해마다 더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빅5 병원 마저도 비인기과의 경우 전공의 모집이 미달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이미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병원과 비인기과의 경우 애당초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내년부터 의사 배출이 줄어들었음에도 지역병원과 비인기과는 인력난을 크게 느끼기 어렵다는 의미다.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병원장들의 사과는 잡다한 일을 해줄 인턴이 부족해서 나선 것"이라며 "의사국시를 상당수가 보지 못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인력운용 문제 등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기과를 제외하면 다른 과는 의사수 정원이 부족해도 똑같을 것"이라며 "어차피 빅5병원에 인기과로만 몰리는 상황에서 비인기과는 그다지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정부도 의사 인력난에 대해 크게 조바심을 내고 있지 않다. 박 장관은 "지역사회에 기존 의료인력들이 있고 꼭 안 가도될 지역도 있기 때문에 그런 지역은 공보의를 철수해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려고 준비 중"이라며 "레지던트가 인턴의 역할을 일부 맡을 수 있고 전문간호사도 보조적인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인턴 업무 일부를 대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