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은 명품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피해가진 못했다. 명품업계는 올 한해 코로나19로 인해 실적에 타격을 입었다. 결국 '명품 중의 명품'이라고 불리는 에르메스마저 판매 창구를 확대하고자 온라인 시장 진출을 택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선 명품 매장이 북새통을 이룬다. 가격 인상 소식이 들릴 때면 시세차익을 노리고 미리 구매에 나서는 되팔기족, 이른바 리셀러가 판을 친다. 올 여름 면세업계가 명품 재고를 시중에 풀자 면세점 사이트가 마비되기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명품 불황 혹은 명품 불패. 실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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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매장 줄 서는데… 명품 기세 꺾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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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명품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84억유로(약 24조365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6억유로(약 2조3476억원)로 68% 급감하며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LVMH는 ▲루이비통 ▲크리스찬 디올 ▲셀린느 ▲지방시 ▲펜디 ▲로에베 등을 보유한 명품 그룹이다. 3분기에는 이 브랜드들이 포함된 패션·가죽 부문이 성장세를 보였으나 전체 매출은 하락했다. LVMH 3분기 매출은 119억유로(15조7605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7% 감소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경쟁사인 케어링 그룹도 마찬가지. ▲구찌 ▲생로랑 ▲보테가베네타 ▲알렉산더 맥퀸 ▲발렌시아가 등을 보유한 케어링 그룹은 올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9.6% 줄어든 53억8000만유로(7조1293억원)를 기록했다. 이어 3분기 매출도 1.2% 감소한 37억1800만유로(4조9269억원)에 그쳤다.
그나마 선방했다고 평가받는 에르메스도 상반기엔 매출액이 24억8800만유로(3조2932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4%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5억3500억유로(약 7089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5% 하락했다.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는 예년의 매출 수준을 회복하려면 2022년이나 2023년까지 기다려야 할 것으로 전망한다.
명품업계가 이처럼 타격을 입은 건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객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 여행객의 수요가 줄었고 공항 면세점 사업도 타격을 받았다. 업계에 따르면 전세계 명품 매출의 20%는 공항 면세점에서 나온다.
대기업 면세점 관계자는 “명품은 여행 지출 의존도가 높은 제품군이기 때문에 여행객 감소로 인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국내 면세점도 명품 브랜드 본사로부터 매입하는 규모를 축소했기 때문에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명품 시장은 ‘무풍지대’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의 해외명품 매출은 지난 3월을 제외하고 올 들어 꾸준히 두자릿수의 성장률을 보였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국내 명품 시장은 글로벌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국내에서 백화점 매장과 오프라인 매장을 비롯해 공식 온라인 스토어 등의 형태로 사업을 운영 중인 명품 브랜드 한국 법인에겐 코로나19 여파가 미미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대다수 명품 업체들은 국내에서 매출 등 재무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유한회사이기 때문에 외부감사를 받지 않으며 감사보고서도 제출하지 않아 국내에서 얼마를 버는지 알 길이 없다. 그나마 주식회사 형태로 남아있는 명품업체의 실적도 내년에야 확인이 가능해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을 당장 알기 어렵다.
다만 국내 주요 명품 소비 채널인 백화점 매출을 통해 이를 가늠해볼 수 있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의 해외명품 매출은 올해 들어 크게 증가했다. 3사 모두 코로나19가 본격화된 직후인 지난 3월에만 전년 대비 마이너스로 떨어져 주춤했을 뿐 꾸준히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였다.
심지어 명품 브랜드가 올해 코로나19 매출 감소분을 만회하기 위해 줄줄이 가격 인상에 나섰음에도 수요는 꺾이지 않았다. 샤넬은 올 들어 5월과 11월 두 차례 가격을 올렸고 ▲루이비통 ▲디올 ▲구찌 ▲프라다 ▲티파니앤코 등도 일제히 가격을 인상했다.
하지만 오히려 명품의 인기는 가격 인상을 앞두고 더욱 치솟았다. 조금이라도 낮은 가격에 구매해두려는 소비자가 몰리면서다. 백화점 개점과 동시에 샤넬 매장으로 달려가는 일명 ‘오픈런’ 현상이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인의 유별난 명품 사랑… 왜?
지난 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샤넬 매장에 입장하기 위한 대기줄이 늘어섰다. /사진=김경은 기자
국내 명품 시장의 나홀로 호황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매출 규모 세계 8위(127억2670만달러)의 명품 소비 강국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인 유로모니터가 발표한 ‘코로나19 시나리오 예측’ 보고서에서도 한국은 전세계 10대 럭셔리 시장에서 가장 타격을 덜 받는 국가로 분석됐다.
명품의 본고장인 프랑스와 이탈리아, 명품 소비 대국인 중국과 미국을 비롯해 영국·독일·스페인·캐나다·일본 등과 비교했을 때 한국인의 명품 사랑이 그만큼 유별나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글로벌 전체 럭셔리 시장이 전년 대비 18% 쪼그라드는 반면 한국 시장은 1% 감소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에도 한국인의 명품 사랑이 꺾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 욕구를 한꺼번에 해소하려는 ‘보복 소비’가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특히 해외여행과 신혼여행을 포기한 이들이 명품 구매로 눈을 돌렸다는 설명이다.
2030세대가 명품시장에 유입돼 구매층이 두터워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 명품은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명품시장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부를 과시하는 ‘플렉스’ 문화가 퍼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 명품 시장에서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고가 상품이라도 선뜻 지갑을 여는 2030세대 구매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며 “코로나19에도 명품이 나홀로 호황을 누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 올 초 중국의 라이브 커머스(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채널)에 루이비통이 등장했다. 중국의 한 패션블로거와 배우가 메인MC로 나서 스마트폰을 켜고 1시간10분 동안 루이비통 제품을 판매했다. 패션업계는 충격에 빠졌고 일부 소비자들은 “명품 가치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2020년 예고 없이 찾아온 재앙에 명품업계가 생존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매출 하락을 겪자 오프라인 사업에서 벗어나 온라인 시장에 눈을 돌린 것. 일부 부유층만 점유할 수 있는 희귀성을 중시하는 명품업계로선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온라인 시장 진출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명품업계는 온라인으로 명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의 수요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루이비통을 포함해 생 로랑·구찌·발렌티노 등 많은 명품 업체가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 판매에 나섰고 에르메스는 올 6월부터 공식 온라인몰을 열었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의 브랜드 가치는 중요하지만 소비자 눈에 띄어야 하는 건 일반 유통 업계와 다를 바 없다”며 “명품 업계는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키지 않는 선에서 생존 경쟁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명품 업계가 온라인 판매에 집중한 가운데 콧대 높기로 유명한 에르메스는 지난 6월3일 공식 온라인몰을 열었다. /사진=에르메스 홈페이지 캡처
◆명품=백화점 ‘산산조각’… 편의점도 판매처로
온라인뿐만이 아니다. 최근 명품은 근거리 유통 채널인 편의점에 진출하면서 소비자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GS리테일은 지난달 29일 명품병행수입 및 해외직배송 전문업체 ‘어도어럭스’와 손잡고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GS25 파르나스타워점에 명품 판매대를 도입했다.
구찌 클러치백·생로랑 팔찌·보테가베네타 지갑 등 총 11종의 명품이 편의점 판매대에 배치됐다. 편의점이 명절 특별 판매 기간 카달로그 주문을 받아 해외 일부 명품을 판매한 적은 있지만 실제 매장에 제품을 비치해 판매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GS25 관계자는 “프리미엄 제품 매출과 축적된 판매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명품 구매 요구가 충분하다고 판단해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백화점 명품 업체 셀러는 “코로나19로 명품 소비가 늘었다기보다 명품이 대중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세가 가장 컸을 당시에도 백화점은 문을 열었다”며 “소비자가 자주 명품을 접하면서 거리낌은 줄었고 이는 자연스레 매출 성장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