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섬, 신선이 살았던 섬' 완도 청산도 관문 도청항. 청산도가 왜 청산도인지를 하늘과 바다가 말해주고 있다./홍기철기자
맑은 공기와 풍광을 자랑하는 힐링의 공간 섬이 코로나 시대에 피로에 지친 사람들의 비타민 충전소로 각광 받고 있다. 지난 26일 완도여객선 터미널에서 '느림보의 섬' '시간이 멈춘 섬' 청산도행 배에 몸을 실었다. 50여분 달리던 배가 사시사철 푸르름의 섬 청산 도청항에 닻을 내렸다. 20년 전 낚시를 왔다 청산도 매력에 빠져 70여 만 장의 사진을 찍어 섬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김광섭 향토 사진작가(해설사)가 동행하며 섬 속살을 공개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전남도 가고 싶은 섬'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구들장 논 국가중요농업유산과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 붙는 청산도는 슬로길 11코스로 구성됐다. 먼저 도청항에서 갤러리길-동구정-서편제-화랑포 연애바위입구로 이뤄진 1코스로 발을 옮겼다. 5.71㎢거리의 슬로길은 도보로 1시간 30분 소요된다.

서편제길에서 바라본 구들장논과 청산도 앞바다/홍기철기자

"사람이 살면 몇 백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송화와 유봉이 황톳길에서 어깨춤을 추며 진도아리랑을 불렀던 서편제길 아래로 펼쳐진 구들장 논과 아늑한 청산도 푸른 바다는 한 폭의 산수화였다. 봄의 왈츠 등 곳곳의 드라마 세트장도 '내가 여기 왔었노라' 흔적을 남기기에 안성맞춤이다. 파도가 이는 모습이 마치 꽃과 같다하여 붙여진 화랑포(花浪浦)는 아름다운 물결과 함께 바둑알처럼 둥근 갯돌이 해변을 채웠다. 해안길을 따라 걷다보면 길 한쪽에는 하얀 구절초와 보랏빛 쑥부쟁이, 붉은 동백꽃 등 수많은 꽃들이 길가를 수놓았다. 노란 나비도 드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었는데 원래 이곳 청산도에는 나비가 없었고, 청산도 슬로걷기 축제 때 '나비 축제'로 유명한 전남 함평의 나비를 이곳에 방생했다고 한다.

청산도 화랑포에 대해 설명하는 김광섭 향토 사진작가. 청산도 비경에 반해 20여년 전 청산도에 정착한 김 작가는 70여 만장의 사진을 찍어 청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홍기철기자

산으로 고개를 돌리면 애기동백 사이를 쉼 없이 들락거리는 동박새와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텃새들의 합창이 탐방객들 귀를 호강시켰다. 청산도는 조선시대 진(鎭)이 설치된 군사 요충지였다. 날씨가 화창한 날 병사들과 선비들이 이곳 화랑포에서 풍월을 즐겼다고 한다. 청산도 대표명소로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화랑포 앞에는 여서도와 소완도, 대모도와 소모도 등 다도해가 늘어섰다. 탁 트인 바다에 강력하게 내려 쏟아지는 햇살은 눈요기 하는데 덤이다. 완만한 트래킹코스를 한참 걷다보면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청산만의 장례풍습 '초분(草墳)'을 볼 수 있다. 시신 또는 관을 돌 위에 올려 놓은 뒤 짚이나 풀을 엮어 이엉을 덮어 뒀다 3-5년 후 유골을 씻어 땅에 매장하는 방식이다.

청산도 장례풍습 '초분' /홍기철기자
김 작가는 "초분 이엉에 솔가지를 꽂아 두는데 이 솔가지 위치에 따라 가족 중 누가 다녀갔는지 유추해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보통 새끼줄을 꼴 때 오른쪽으로 꼬지만 망자를 위한 초분의 새끼줄은 왼쪽으로 꼰다고 한다. 세속의 먼지까지 훌훌 털고 가란 의미며 산자와 죽은자의 경계로도 해석되고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청산도는 상여 장례풍습이 계승되고 있다.


슬로길 2코스는 2.1㎢인 사랑길이다. 연애바위입구에서 모래남길-읍리앞개까지 약 50분쯤 소요된다. 숲과 가파른 절벽 사이로 길이 놓였다. 당리에서 구장리를 잇는 해안절벽길로 숲의 고즈넉함과 해안절경의 운치를 즐길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연애바탕길이라 부른다. 사람들의 시선이 차단된 깊은 숲속에 넓고 평평한 바위가 있으니 상상에 맡긴다.


강한 자성에 이끌려 나침반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범바위의 전설을 안고 있는 5코스는 5.5㎢구간으로 2시간 가량 소요된다. 권덕리-말탄바위-범바위-칼바위 전망대-용길-장기미 해변-청계리로 이어지는 코스다. 범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호랑이 바위로 불린다.

바위가 호랑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범바위. 범바위에서 나오는 자성이 강해 청산 앞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길을 잃는다고 한다./홍기철기자
범바위 앞에서 한 호랑이가 포효를 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크게 울려 퍼졌던지 다른 호랑이가 포효한 것으로 착각해 놀란 호랑이가 청산도 앞바다를 건너 뭍으로 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또 범바위의 강한 자성으로 인해 배가 길을 헤맸다는 설도 있다. 범바위 아래에는 청산도에서 유일하게 외지인이 살지 않은 마을이 있는데 청계마을이다. 이곳은 출세한 자손들이 많이 배출된 마을로 유명하며 설령 빈집이 나오더라도 마을사람들이 그 집을 매입해 외지인 접근이 어렵다는 후문이다. 범바위의 기(氣)를 받아서 그런 것인지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명당 마을인지 알 수는 없다.


청산도 주민들은 후미진 곳을 '기미'라 일컫는다 한다. 장기미 해변으로 발길을 돌렸다. 용길에 자리잡은 장기미해변의 돌은 공룡알을 닮았다고 해서 공룡해변으로도 불린다. 범바위처럼 장기미 해변 몽돌 앞에선 '불량 나침반'이 된다. 장기미 해변의 잔잔한 파도소리는 마음속 작은 울림과 어우러지며 감동이 배가 된다. 연인들의 사랑고백 장소로 좋을 듯하다.

용길에 자리잡은 장기미 해변은 공룡알을 닮은 돌이 많아 공룡해변으로도 불린다. 이곳 장기미 해변 몽돌도 자성이 강해 나침반을 불량 나침반으로 만든다./홍기철기자

전북 부안태생으로 뼈 속까지 청산인이 된 그가 장기미해변 한 켠에 앉아 수줍게 자신의 창작시를 들려줬다.


언론에 공개하기는 처음이라고 밝힌 김 작가의 '남쪽 끄트머리에 우뚝 솟은 섬 홍산도'로 시작한 제목 '청산도' 시는 '은하수 흩뿌려 밤하늘 열어 두고. 오작교 건너 님 오실까. 기다리고 기다리는 청산도.'로 끝을 맺는다. 그는" 청산도는 봄 여름에 적합한 이름이고 가을에는 홍산도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김 작가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청산도 여행을 하며 느껴 보기를...청산도 사랑이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여 해설사로 나선 김 작가를 만난다면 중간에 소개하지 않은 싯귀를 들려 달라 요청해 보면 좋을 듯하다.

상서마을 돌담길 슬로길 7코스다. 할머니가 유모차에 의지해 힘겹게 길을 나서고 있다./홍기철기자
상서마을 돌담길 7코스로 향했다. 6.21㎢며 상서마을-동촌 돌담길-신흥리 해수욕장-목섬-새목아지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 구간도 약 2시간 거리다. 돌담길 사이에 핀 붉은 맨드라미가 수줍게 관광객을 반겼다. 상서리와 동촌리를 지나가는 길은 마을 전체가 돌담으로 이뤄졌다. '소통의 공간' '등목을 하던 곳' '며느리가 시집살이 설움을 방망이에 힘을 실어 화풀이 했던 빨래터'역할을 했던 마을의 작은 우물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김 작가는 "이곳 우물터는 바다로 갇힌 청산도 아낙네들의 중요한 공간이었다. 소통과 화풀이 공간이 없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청산도를 등졌을 것이다"고 밝힌 한 역사학자의 말을 들려줬다. 청산도는 돌이 많고 옥토가 없어 자갈 위에 흙을 수차례 복토해 어렵게 구들장 논을 만들었다. 이 논에서 소량의 쌀이 생산돼 딸아이가 쌀 한말을 먹고 시집가면 '부자집'이란 소릴 들었다고 한다. 청산도의 척박한 환경에서 '삶의 애환'을 털어내는데 마을 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새의 머리를 닮은 새목아지. 인근 해안은 갯바위 낚시터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홍기철기자
수년전 모 방송사의 1박 2일 촬영장소인 신흥리 해수욕장(풀등)을 지나 목섬의 들국화길로 접어들었다. 철을 넘긴 꽃이 갈색으로 시들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새목아지를 보기 위해 경사진 산길을 걸었다. 한참 걷다보니 낚시터로 각광받는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강태공들이 하나 둘 눈에 띄었다. 정말로 새의 머리를 닮은 바위가 기다랗게 늘어져 있었다. 조물주가 빚어놓은 자연의 풍경에 감탄이 절로 쏟아졌다. 발길을 되돌려 9코스 단풍길과 청송해변 노을을 감상하기 위해 10코스로 향했다.
서울과 대구에서 섬 여행을 온 노부부와 친구가 노적봉 전망대에서 오지 않을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홍기철기자
노적봉 전망대에서 만난 팔순을 바라보는 노부부는 전국해안을 일주 중이었다. 이럴 때 쓰는 표현이 노익장일까. 참 대단한 어른신들이다. 일행 중 한 분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까지 등반했다고 한다. 어르신들과 정담을 나눈 뒤 웃픈 사연이 담긴 청산도 단풍길로 갔다.

이곳 사내들이 농한기에 뭍으로 단풍구경을 핑계로 섬을 비우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아낙들이 완도군에 요청해 단풍나무를 식재했다는 것이다.

웃픈 사연을 안고 있는 청산도 단풍길. 늦가을의 끝자리에 막바지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홍기철기자
가장 늦게까지 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청산도다. 11월 말인데도 알록달록한 단풍이 남아 있었다. 노을을 보기 위해 지리 청송해변으로 향했다. 아름드리 방풍림이 자리한 청송해변에 빼곡히 들어 찬 구름사이로 석양이 고개를 내밀자 바닷물이 붉게 물들었다. 구름이 없었으면 환상적인 해넘이와 쏟아지는 별을 봤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다음을 기약 했다. 관광객 이경순 (69. 경기 파주 법원읍)씨는 "사람은 편리한 것만 추구하는 직선인데 자연에 순응하며 억겹의 세월을 견뎌 낸 곡선을 이곳 청산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면서"훼손되지 않은 청산의 풍경이 후세까지 잘 보존돼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름들이 소나무 방풍림과 해넘이 장소로 유명한 청송해변 일몰/홍기철기자

김보영(48. 목포 옥암)씨는"청산도는 우리 선조들의 삶이 그대로 응축돼 살아 움직이는 화석인 것 같다. 슬로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 느낀다"며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청산도를 꼽았다.

한편 완도에서 청산도를 가는 배는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 까지 6차례 운항된다. 청산에서 완도로 나오는 배는 아침 6시 50분부터 오후 5시까지 6차례 운항되는데 해상날씨와 여객 증감에 따라 변동될 수 있으니 참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