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1조 예산이 투입될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 한국전력공사가 이 시장을 노리고 있다. 직접 발전사업자가 되어 전기를 생산을 하겠다는 것. 이와 관련한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다. 공공성을 망각한 민간사업 침투라는 지적부터 재정 부담을 야기하는 관제 뉴딜의 전형이란 시각도 있다. 여당이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 발판이 되는 법안을 마련하자 시장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망중립성 훼손 뿐 아니라 사업 독식 등 예상되는 피해가 한 둘이 아니다. 한전이 발전사업 명분에 살을 붙이면 붙일수록 자본시장 논리는 무시되고 있는 형국. 한전은 왜 발전사업까지 독식하려는 걸까. ‘생산자’ 한전이 가져올 부작용과 개선책은 무엇일까.
독일 헬리골랜드에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사진=로이터
# 1999년 1월21일. 국내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신호탄인 ‘전력산업구조개편기본계획’이 확정됐다. 전기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후 소비로 이어지기 전까지 ‘발전-송전-배전-판매’ 단계를 거친다. 이 모든 단계를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운영하는 독점체제였으나 2001년 한전 발전부문을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동서발전 등 6개 발전 공기업으로 떼어내고 전력거래소를 신설한 뒤 이 체제를 20년간 유지했다. 한전에서 발전부문을 분리한 이유는 독점체제인 전력산업에 경쟁을 도입해 가격 지배력을 방지하는 등 공정한 시장 경쟁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 한전이 다시 발전사업 직접 진출을 선언하자 전력산업 구조 개편의 틀이 20년 만에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이 투자 대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국한할지라도 발전사업에 나선다는 점에서 20년 전 이뤄진 한전 발전부문 분리란 전력산업 구조 개편 취지와 배치된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개편이 분명 논리와 명분이 있었을 것”이라며 “한전에게 다시 발전사업을 허용하는 것 자체가 그 변화를 되돌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민간 발전소와 발전 공기업은 1998년 첫 상업용 풍력발전기를 개발한 후 인·허가 및 주민 수용성 등 발전단지 운영 경험을 쌓아왔다. 한전은 SPC(특수목적법인) 등을 통해 제한된 범위에서 국내 풍력발전사업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풍력단지 개발과 운영에선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최근엔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풍력 투자와 개발 경험이 많은 유럽 3대 해상풍력 투자개발사 ‘CIP’와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 등 글로벌 기업이 국내 풍력시장에 자리 잡고 있다. 한전은 자체 추진 중인 사업을 흡수하거나 풍력단지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덩치를 키워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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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한전에 생태계 집중… 경쟁은 사라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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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도별 풍력 발전량. /그래픽=김은옥 기자
전문가들과 업계에선 한전이 발전부터 판매를 독점하는 현 구조로 발전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적잖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독과점 문제로는 에너지 전환을 이룰 수 없다는 선진국 사례도 있다. 분산형 시스템과 에너지 전환에 따른 전력시장 구조혁신이 절실한 시점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한전에서 발전을 뗀 이유는 발전사업에 민간 참여를 유도하고 경쟁을 통해 발전 비용을 낮추기 위한 것”이라며 “계통 독점 운영권을 쥔 한전에 생태계가 집중되면 경쟁 역시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한전의 풍력사업 진출은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할까. 전문가들은 우선 송배전 사업과 전력 판매사업 등 독점적 지위에서 한전이 탈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본사와 완전 분리돼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별도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사업을 정부 기관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사업자 주도 구조인 한국과 달리 덴마크는 정부 차원에서 에너지청을 세워 ▲발전사업지구 지정 ▲환경영향평가 승인 ▲발전사업 허가 ▲주민협의 등을 통합 수행하고 있다. 전력공기업 ‘에너지넷’은 계통사업만 맡도록 하며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풍력산업을 키워가고 있다.
지금처럼 SPC를 통해 발전사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전은 40메가와트(㎿) 이상의 대형 발전 프로젝트에만 참여해 규모가 작은 민간 발전소의 피해를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간 사업자도 육상풍력은 100㎿, 해상풍력은 300㎿급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소규모 사업자 피해가 불가피하다. 제주와 전남 신안 등 풍력발전 집중지역은 전력 계통 여유 용량이 많지 않은 만큼 한전이 사업을 추진하는 지역에 송전망 등을 우선 건설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석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한전이 자신의 사업에 계통 접수 우선권을 줄 경우 민간 사업자는 불이익을 당한다”며 “바잉파워(buying power·거래상 우월한 지위에 있는 기업의 구매력)로 시장을 교란하지 말고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 사업 등처럼 출자 형식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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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회 멈춘 제주발전소… 전력대란 대비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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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설비 특별공급 중인 한국전력공사. 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뉴스1
정부 차원에서 전력망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전력 초과 공급에 따른 위기를 포착할 수 있는 지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력거래소 이사회 공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제주 풍력발전소는 44회 멈췄다. 제주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담을 수 있는 허용량이 590㎿로 크지 않다. 지난해 말 기준 제주에 보급된 신재생에너지 설비는 556㎿ 규모로 사실상 신재생에너지 최대 운전 가능량의 한계에 달했다.
한 풍력발전사 관계자는 “신재생 확대 속도에 전력망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진도·완도를 통해 들어오는 전력망이 포화에 달한 상태”라며 “제주로 들어가는 망만 있고 나가는 망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문제는 제주도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풍력을 필두로 재생에너지 공급이 급격하게 늘면서 3~4년 뒤부터는 육지에서도 풍력 강제 셧다운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
한전이 직접 발전에 참여하면 이런 위기가 갈수록 잦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는 “풍력발전 확대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초과 공급”이라며 “선진국처럼 정부가 제반 조건을 살펴 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기술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한전이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정부가 독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해상풍력 사업은 제조·설비부문 기준 1㎿당 32명의 고용 효과를 발생한다. 하지만 풍력 제조·설비 부문의 외산 의존도가 전체 시장의 3분의2 이상을 차지해 고용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풍력에너지학회 학회장인 유기완 전북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신재생에너지가 가야 할 길이라면 한전을 참여시키되 국산 부품을 늘려 제조업 고용 창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그래야 정부도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확대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