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청년유니온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34개 청년단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고승민 기자
사업장 내 노동자를 중대재해에 이르게 한 기업의 경영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입법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이미 강력한 산업안전정책을 통해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의 처벌규정을 두고 있음에도 추가적인 법적 제재로 기업과 사업주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은 지나치다는 재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반면 노동계는 현재의 안전정책만으로는 사업장 내 인명사고를 근절할 수 없다며 조속한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어 정부의 입법 추진이 경영계와 노동계의 갈등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책임·처벌대상·수위 등 대폭 강화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중대재해법은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대해 처벌을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책임과 처벌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에는 대기업의 대표와 이사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의 오너도 모두 포함되며 처벌 규정도 2~5년 이상 징역 또는 5000만~5억원이상 벌금 등의 하한선을 설정해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보다 수위가 높다.

이 같은 법안에 대해 재계는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지나치게 가혹한 중벌을 부과하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모든 사망사고 결과에 대해 인과관계 증명도 없이 필연적으로 경영책임자와 원청에게 책임과 중벌을 부과하는 법으로 관리범위를 벗어난 일에 책임을 묻는 것과 같다”며 “그 자리와 위치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공동연대 처벌을 가하는 것이어서 그야말로 운수소관이 되고 연좌제로 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이 규정하는 법 의무 준수 범위가 추상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기존 산안법은 법 의무 준수 범위를 ‘구체적 안전 및 보건조치 위반’으로 명확히 규정했으나 중대재해법은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유해·위험 방지의 의무’라는 포괄적이고 모호한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중대재해나 경영책임자 등의 개념이 광범위하고 위험 방지 의무 범위도 모호하다”며 “또한 경영책임자 및 법인 처벌 규정은 중대재해법안의 핵심 내용인데 대단히 무거운 형벌로 일관하고 있어 오히려 적용 가능성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중대재해법을 제외하더라도 국내에서 시행 중인 산업안전정책이 선진국보다 강력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경우 산안법 위반 시 6개월 미만의 징역 또는 1만달러(1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고 프랑스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9000유로(1170만원)의 벌금을 처벌로 규정했다. 반면 한국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 법인은 10억원 이하의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개정된 산안법이 시행되면서 사망사고 발생 시 형량을 50% 가중하는 법안이 신설됐고 하청근로자 사망 시 원청도 동일하게 제재하는 등 처벌 수준이 더욱 강화됐다. 문제는 선진국에 비해 처벌은 강한 반면 사망사고 비율은 높다는 점이다. 한국의 임금근로자수 1만명당 발생하는 사망자수인 사망사고만인율은 지난해 기준 0.46으로 일본(0.16)과 독일(0.15)의 3배 수준이다.


/표=김영찬 기자

지난해 산재 사망자 2020명… 매일 6명 사망

재계는 이를 근거로 처벌 강화는 사업장 내 인명사고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경총 관계자는 “사망사고 감소 효과를 실질적으로 높여나가기 위해서는 처벌 강화보다는 산재예방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며 “정부는 기존의 규제와 처벌 위주 산업안전정책에서 탈피해 인력 충원·시설 개선·신기술 도입 등 안전관리에 적극 투자하는 기업에 세제혜택과 자금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대폭 확대하고 민·관 협동 대응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계는 끊임없는 사망사고를 막기 위해선 중대재해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맞선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 15년 동안 매해 평균 2400명이 산재로 사망한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10만9242건의 산재가 발생했고 이로 인한 사망자는 2020명에 달한다. 일일 단위로 환산하면 하루에 노동자 6명이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셈이다.

산재로 인한 경제적 피해도 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은미 의원(정의당·비례대표)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 추정액은 27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조5000억원이 늘었다. 경제적 손실 추정액은 2015년 20조4000억원으로 20조원을 넘어선 후 ▲2016년 21조4000억원 ▲2017년 22조2000억원 ▲2018년 25조2000억원 ▲2019년 27조6000억원으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발생한 산업재해를 사업장 규모별로 살펴보면 중 ▲5인 미만 31.6%(3만4522건) ▲5인~9인 14.5%(1만5872건) ▲10인~19인 14.4%(1만5769건) ▲20~29인 8.1%(8860건)으로 30인 미만 사업장의 비율이 68.7%에 달했다.

양대 노총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정치권의 책임 있는 논의와 빠른 법 제정을 요구한다”며 온전하게 이번 회기 내에 입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도 “중대재해법 논의가 이미 충분히 이뤄졌고 여·야 할 것 없이 입법에 찬성했음에도 상임위에 머물러 있는 것은 더불어민주당 책임”이라며 “어제도 오늘도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로 노동자와 시민이 숱하게 목숨을 잃고 있다. 민주당과 국회는 중대재해법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즉각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