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편집자주]'사실 앞에 겸손한 정통 민영 뉴스통신' 뉴스1이 뉴욕타임스(NYT)와 함께 펴내는 '뉴욕타임스 터닝 포인트 2021'이 발간됐다. '터닝 포인트'는 전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별 '전환점'을 짚어 독자 스스로 미래를 판단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다. 올해의 주제는 '치유와 변혁의 시대: 공존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이다. 격변하고 있는 전 세계 질서 속에서 어떤 가치가 중심이 될 것인지를 가늠하고 준비하는데 '터닝 포인트'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1) © 뉴스1

(서울=뉴스1) 신기림 기자 = 터닝 포인트: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 악화하면서 미국에서 기록적으로 많은 유권자가 조 바이든을 대통령으로 선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실패 이전부터 대통령 권한의 평화적 이행을 거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11월 3일 대통령선거에서 지더라도 대통령 권한의 평화적 이양을 거부하겠다고 말했을 때, 많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그는 여론조사에서 이번 미 대선의 최종 승자이자 전 부통령인 조 바이든에게 계속해서 밀리고 있었다. 또한, 이미 10월부터 평화적 권력 이양을 거부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미 상원 법사위원회 소속의 마이크 리 유타주 상원의원(공화)은 한술 더 떠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민주주의는 목표가 아니다. 자유, 평화, 번영이 목표다. 인간의 생활환경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순위 민주주의 (Rank Democracy)로 인해 이러한 바람은 좌절될 수 있다.”


순위 민주주의라고? (이 용어는 리 상원의원이 처음 사용했다. 여론조사로 순위를 매기는 민주주의는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역주.) 이러한 선언이 남긴 유일한 위안은 마침내 공화당 정치인 중에서 솔직한 사람이 최소한 한 명이라도 나왔다는 점이다. 또한, 이는 우리의 국가 담론과 대화에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만약 권력 이양이 평화적이지 않거나 심지어 원만하지도 않게 진행된다면? 리 상원의원 같은 사람들이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한다면? 우리가 민주주의에 등을 돌린다면? 그러면 미국이 우리의 삶에 서 인권 존중과 보편적 대의를 수호하는 국가라는 우리의 신념은 영원히 바뀌게 될 것이다.


1년 전 나는 『인간, 권력, 이익: 분노의 시대에 맞는 진보 자본주의』라는 책을 쓰면서 공화당이 직면한 진퇴양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보편적 건강보험, 교육 접근성 향상, 최저임금 인상, 총기 규제 강화 등에 대한 굳은 신념을 나타냈다. 하지만 공화당은 다수의 미국인이 반대하는 일련의 정책들을 지지했다.

공화당이 권력을 유지하려면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정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참정권 박탈(유권자 압박), 무력감(게리맨더링,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정하는 것), 그리고 연방대법원을 민주당 하원 혹은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판사들로 채우는 것이 일종의 반민주적 정책에 속한다.


우리는 공화당이 실제로 어떤 일을 벌였는지 목격했다. 어울리지 않게도 그들은 깃발을 흔들며 계속해서 미국의 헌법에 호소할지도 모른다. 이제 공화당은 그들의 의도에 대해 더 공개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어쩌면 우리가 미국이 어떤 모습의 국가이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리 상원의원의 목적에 동의하는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의 민주주의를 기꺼이 포기할 것인가? 물론 역사는 우리에게 수많은 경고 신호를 보낸다.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1) © 뉴스1


지난 4년 동안 우리는 평등, 정치적 자유, 고품질의 공공 서비스, 자유롭고 적극적인 언론, 그리고 법의 지배와 같은 우리 제도들이 얼마나 정교할 정도로 깨지기 쉬운지를 알게 됐다. 나는 20년 전 세계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낼 때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에 대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미국을 본보기가 되는 모델로 바라봤다.

어떻게 좋은 제도를 만들지, 좋은 제도란 개념을 어떻게 정확하게 정의할지를 확신할 수 없지만, 좋은 제도는 보면 알 수 있다. 좋은 제도는 법과 규범을 포함한다.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에는 법과 규범이 모두 존재한다. 법의 지배는 필수적이지만, 모든 시민이 지키는 규범은 훨씬 더 유연하다.

누구도 ‘선행’에 함의된 모든 것을 법으로 표현할수 없다. 선행은 아주 복잡하고 계속 변한다.

세계은행 이후 나는 ‘경제 성장과 사회 진보를 측정하는 위원회’라고 불리는 한 국제단체의 의장을 지냈다. 이 단체의 목표는 시민들이 높은 수준의 행복과 복지를 영유하는 건전한 경제대국들을 평가하고 이러한 사회가 건설되고 지속되는 비결을 찾는 것이었다. 분석 초기에는 간과했지만, 이후 우리가 관심을 집중하게 된 그 비결은 시민들 사이의 믿음과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였다.

내가 인디애나주 개리에서 자랄 때 우리는 학교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권력,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 법의 지배에 대해 배웠다. 우리는 대중의 목소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소수의 권리도 존중하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다. 신뢰를 논의하지는 않았다.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도 자체의 취약성도 논하지 않았다. 이러한 주제는 ‘바나나 공화국(해외 원조로 살아가는 가난한 국가)’ 같은 곳에서나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돈이 정치적 절차를 좌지우지하는 다른 국가들을 얕잡아봤다. 당시는 연방대법원의 ‘시민연합 대 연방선거위원회’ 재판을 통한 기업의 정치 자금 역할에 대한 법제화 결정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심지어 미국이 다수의 권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정치적 소수에 의해 영원히 지배당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우리의 대통령은 규범을 뒤흔들었고, 우리의 규범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가르쳐줬다. 감사의 역할, 이해충돌 방지, 납세 신고 준수 등과 같은 오래전부터 지켜온 행동을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해준 것이다.

나는 우리의 국가 담론에서 중요한 이 시점이 우리 역사에서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과 리 상원의원처럼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이들이 계속해서 결정권을 가지면 우리가 어디로 향하게 될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징후를 목격했다. 지난 여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평화롭게 활동 중이던 시위대가 신원불명의 보안 요원들이 잠복 중이던 차량으로 납치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추잡하고 불길한 예감과 동시에 히틀러의 ‘갈색 셔츠’처럼 시큼한 악취를 몰고 왔다.

하지만 우리의 민주주의가 살아남는다고 가정해보면, 이 중요한 시점은 지금과 꽤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하는, 더 힘들기는 해도 기운이 솟아나는 과제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구조적 약점과 취약성을 목도했다. 우리의 정치에서 자본의 파괴적 역동성을 봤고, 이 자본이 어떻게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회 불평등을 악화하는 환경을 만드는지도 목격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얼마나 양극화가 심해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견제와 균형이라는 소중한 시스템이 교착과 대립으로 변질되는지도 봤다.

우리의 뒤얽힌 인종적, 민족적, 경제적 불평등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우리는 신뢰와 사회적 응집성을 복원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 이러한 대규범을 파괴하는 우리의 대통령은 규범을 당연시해서는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대립은 우리를 분열시키고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연대감을 약화할 것이 분명하다.

민주주의를 재건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 수준을 한층 더 높여줄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4년마다 치러지는 선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성공적인 민주주의는 시민사회 전반이 많은 제도에 참여하는 것을 내포한다. 집단행동은 정부 혹은 공공기관을 뛰어넘는다. 개인이나 자유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이를 강화하고 우리가 모두 번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민주적 권리가 끝장나기 직전까지 가봤다. 벼랑 끝을 응시하고 그 아래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해봤다. 이 끔찍한 상상은 우리 미국인들에게 민주주의를 재건하는 데 필요한 국민적 연대감을 형성하는 동력을 제공했을지도 모른다.

(출처 = NYT 터닝 포인트 2021) © 뉴스1

조셉 E. 스티글리츠는 경제학자, 공공정책 분석가, 컬럼비아대 교수, 비영리 싱크탱크인 루즈벨트 연구소의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2001년 노벨 경제과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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