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1일(미국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소인수회담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추상철 기자
한국 미사일 개발의 족쇄였던 ‘한·미 미사일지침’이 42년 만에 사라져 한국의 자주국방과 항공우주 산업에 새로운 전기가 열렸다. 미사일 최대 사거리 제한이 완전히 풀리면서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가로막던 장애물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국은 자주국방 역량을 강화하고 우주 발사체 개발을 통해 우주개척 시대를 앞당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미사일 사거리 제한 해제

문재인 대통령은 5월21일(미국 현지시각)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래 첫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한·미 미사일지침을 완전 폐기하는 데 합의했다.


한·미 미사일지침이란 42년 전 양국 사이에 체결된 한국의 탄도미사일 개발 가이드라인을 말한다. 이 지침으로 한국은 그동안 미사일 개발에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8년 한국이 세계에서 7번째로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백곰’ 시험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은 한반도 긴장 고조와 동북아 군비경쟁을 우려하며 개발 중단을 권고했다. 양국은 이듬해 미국이 탄도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한국에 이전하는 대신 최대 사거리와 탄두중량을 각각 180㎞·500㎏으로 제한하는 지침에 서명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 개발과 잇단 미사일 도발로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자 한·미 양국은 2001·2012·2017·2020년 등 총 4차례에 걸쳐 지침을 개정했다. 1차 개정에서는 사거리를 180㎞에서 300㎞로 늘렸고 탄도중량 500㎏은 유지하기로 했다. 2차 개정에서는 다시 사거리 800㎞, 탄도중량 유지로 지침을 재조정했고 3차 개정에서는 사거리는 유지하는 대신 탄도중량 제한을 없앴다.


지난해 4차 개정에서는 군사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사용을 제한했던 우주발사체 고체연료 사용을 허용했다. 이후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마지막 허들인 800㎞ 사거리 제한마저 해제하면서 한국은 1000㎞ 이상의 중·장거리(IRBM) 탄도미사일을 독자적으로 개발·배치할 수 있게 됐다.

사거리 1000㎞는 제주도에서 쏴도 북한 전역이 사정권으로 들어오는 거리인 것은 물론 중국 베이징과 일본 도쿄도 타격이 가능해진다. 거리를 더 늘리면 중국과 러시아 내륙까지도 들어온다. 사실상 북한뿐 아니라 중국·일본·러시아 등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에 대한 억지력까지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이번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를 미사일 주권 회복과 자주국방력 강화로 해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주개척 시대’ 앞당긴다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중량 제한이 사라졌지만 실질적인 억지력을 확보하려면 정찰·감시 능력을 확보돼야 한다. 한국은 그동안 통신위성이 아닌 정찰위성을 독자적으로 갖추지 못했지만 이번 미사일지침 종료로 정찰위성도 쏘아 올릴 수 있게 됐다. 특히 이를 민간 방산분야와의 교류 확대로 연결해 우주기술 경쟁력 강화로 발전시키면 한국 항공우주 산업 발전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전망이다.


방산과 우주개발 산업을 연결한 대표적인 예는 중국이다. 중국은 최근 화상 탐사선 ‘톈원 1호’를 화성 남쪽 유토피아평원에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화성에 탐사선을 착륙시킨 세계 3번째 국가가 됐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미사일. / 사진=뉴스1 이승배 기자
이 같은 중국의 우주진출 성공 배경에는 미사일 기술 경쟁력이 뒷받침됐다. 한국우주기술진흥협회는 ‘우주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중국의 우주개발 정책은 과거 미·소 냉전시대 공산진영에 속해 있던 중국이 서방 세력과 군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ICBM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며 “옛 소련으로부터 ICBM 제작 핵심 기술을 습득한 중국은 이후 꾸준히 기술을 개량해 오늘날 미국을 위협하는 우주강국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오는 10월 위성 모사체를 실은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1차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 내년 5월에는 무게 200㎏의 성능검증위성을 장착해 우주로 발사한다.


정부도 이번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가 한국 우주산업 도약의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현종 청와대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문 대통령이 우주산업과 4차 산업을 위한 우주 고속도로를 개척했다”며 “이번 전기로 한국도 자체 기술 위성을 쏘아 올리고 세계 각국 위성과 우주탐사선에 우리 발사체를 사용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날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20세기 자동차·조선·반도체 산업이 경제를 일으키고 운명을 개척했듯 우주발사체 산업은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바꿔놓을 것”이라며 “위성과 탑재체 개발과 생산, 우주 데이터 활용, 우주과학 등 다양한 관련 분야 시장을 창출해 우주산업 생태계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