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고전문헌학자© 뉴스1

(서울=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 인생을 품사에 비유한다면,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품사는 '동사'가 아니라 동사를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조동사'다. 조동사란 동사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안내자다. 예를 들어 "나는 이 시련을 극복한다"에서 '극복한다'는 동사이지만 '극복할 수 있다'와 '극복해야 한다'와 문장에서는 동사와 조동사가 합쳐졌다. 조동사는 그 동사가 실제로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과 당위성을 부여한다.

인생이란 우리가 될 수 있고 그래서 되어야만 하는 그것을 성취하려는 마라톤 경주다. 인생이란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선정한 분명한 목표지점이 있어야 하며, 그 지점을 위해 매일 매일 자신이 행하고 있는 방향을 점검하고, 오늘이란 시간에 마쳐야 할 구간을 정해야 한다. 자신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목표지점을 발견하지 않는 사람은 무식하며, 어렴풋이 발견하였지만, 최선을 경주하지 않는 사람은 나태하고, 남들이 좋다는 경로에 안주하는 사람은 비겁하다.


나의 온전한 행복을 방해하는 무식, 나태, 그리고 비겁을 물리칠 도구가 '조동사'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내가 될 수 있는 그 인간이 '될 수' 있고, 그래서 그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 이 문장에서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되어야만 한다'는 당위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다. 깨우친 인간은 그 가능성과 당위성을 가지고 지금-여기에서 언행을 통해 차근차근 정진한다. 이 순간의 실천만이 그(녀)를 구원할 수 있다.

심리학자 구스타브 융은, 인간이 심리적으로 온전한 상태로 도달하는 과정을 '개별화'라고 불렀다. '온전'이란 우리 각자가 지닌 잠재력이 모두 실현되고 우리의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까지도 동원되어, 자신만의 개성을 구축하기 위해 조화롭게 작동되는 상태다. 순간을 사는 인간은 그 목표지점에 근접할 수 있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인간에게 구원이란 근접이다.


구약성서에서는 그 숭고한 상태를 모세를 통해 '출애굽기'에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다. "나는 나다." 흔히 이문장은 한글 성서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로 오역되었다. 이 문장을 풀어 해석한다면 "나는 내가 되어야 할 그 존재가 되고 있다" 정도일 것이다. 인도경전 '우파니샤드'는 "나는 무한이다"라고 말한다. 유한한 나는, 우주의 끝에 아직도 팽창하고 있는 그 지점까지 포함하는 존재로, 나는 부분이면서 전체다.

인간이 조동사를 통해 자신의 마음속 깊이 내재한 온전한 자신과 조우할 때, 그 사람만의 '개성'이 등장한다. 이 개성은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분명하게 구분시키는,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함이다. 그(녀)는 자신이 될 수 있고, 그래서 되어야만 하는 그것이 된다. 개별화를 통한 자기-자신으로 하루를 산다면 자신의 달란트를 통해 유유자적한 삶을 영위하고, 행복한 삶을 방해하는 절망, 걱정, 우울, 그리고 중독과 같은 병들을 예방할 수 있다.


이 개별화를 작동시키기 위한 첫 단계가 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이 그리스 델피 신전 입구에 '너 자신을 알라!'로 새겨져 있다. 이 문구는 다음과 같은 뜻일 것이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을, 사실 가장 잘 모른다. 자신에 대한 편견이 가장 심하기 마련이다. 내가 진정으로 나를 알기 위해서는, 그런 자신을 생경한 3인칭으로 두고, 그것을 가만히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을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으로 두고 바라보는 행위가 묵상, 명상 혹은 기도다.

나를 객관적인 3인칭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나의 장단점을 관찰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단점을 지니는 나를 수용하고 용서하여, 그런 단점이 나의 잠재력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지 않도록 제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직 작동되지 않는 장점을 격려하여, 나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교두보로 삼는다. 개별화는 다음과 같은 어려운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지는 용기다. "나는 내 삶의 고유한 임무를 완수하고 있는가? 내 삶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내 단점을 발견하고 제거하고 있는가? 나는 나의 잠재력을 일깨우기 위해 장점을 작동시키고 있는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일상을 통해 써 내려가는 소설의 주인공이어야 한다.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냐, 장구하냐, 혹은 화려하냐가 아니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주제를 얼마나 충실하게 전개했느냐다. 나는 내 삶의 동사를 작동시킬 조동사를 가지고 있는가?

미국 풍경화가 샌포드 로빈슨 기포드(1823-1880)의 '맨스필드 산맥'© 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