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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변호사·앵커'는 모두 그를 향한 수식어다. 지난 2000년 아르헨티나를 넘어 남미 최초의 지상파 방송국 '텔레페'(Telefe) 한인 앵커로 등극한 그는 “당시 텔레페 앵커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며 “(방송국에) 아는 지인도 없어 무턱대고 이메일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이어 “아르헨티나는 공채 시스템이 아닌 수시 채용 시스템”이라며 모든 지원자들이 우선 자신의 서류를 회사에 제출한 이후 기다리는 것이 관례라고 설명했다.
당시 법대생이던 그는 실제로 법학을 공부중이었다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수화기 넘어 '장난치는 친구'가 지속적으로 면접일정을 조율하자 장난전화가 아닌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외국인인 내가 앵커 최종 면접에 합격했다고 하니까 믿기 힘들었어요. 면접 당일날까지도 믿기지 않아 아버지와 함께 (회사에) 갔던 기억이 나요."
이후 최종합격 통지서를 받아든 그는 곧바로 메인 방송 앵커로 투입됐다. 당시 시청자들은 외국인이 뉴스를 진행하자 놀라면서도 신기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텔레페도 끝없는 시청자들의 전화문의에 이례적으로 '한국사람 진이황'이라는 문구를 메인뉴스 자막으로 내보냈다. 만 7년간 뉴스를 진행한 그는 텔레페의 간판 앵커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7년 동안 언론현장에 있으면서 미디어를 사랑했다"며 언론의 진정한 팬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찾아 나섰다. 앞서 법학을 공부한 그는 본격적으로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어렸을때 아르헨티나로 이민 오신 부모님이 사업할 당시 사기를 당하셨어요. 언어와 법률의 장벽이 높았죠. 유년기 부모님의 아픈 경험이 나를 법대생과 앵커로 이끌었던 것아요."
언론인으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마침 장학금 기회를 얻고 미국 뉴욕대학교(NYU) 법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졸업과 동시에 뉴욕 변호사가 된 그는 지난 2010년 미국 대형로펌 ‘클리어리 가틀립’에 입사해 변호사로 활동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며 행복했지만 마음 한켠에선 미디어와 영상에 대한 그리움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과감하게 로펌을 나와 유튜버로 변신했다. 지난 2016년 유튜버를 시작한 그는 "당시에는 뉴미디어 환경이 열악했다”며 “언론·법조계 지인들 대다수가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봤다”고 회상했다.
"한류의 대표적인 예로 한식을 들 수 있는데 아르헨티나에서 사는 한인들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현지인들도 한식 셰프를 열망하는 시대가 도래했어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한인마을이 아닌 주요 지구 곳곳에서 한식당을 찾을 수 있죠. 대표적인 한인마을인 아베샤네다를 찾는 아르헨티나 현지인들도 눈에 띄게 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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