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주택법에 따라 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위를 양도·양수 혹은 알선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한 전화·인터넷·인쇄물 광고 행위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솜방망이 처벌이란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영찬 디자인 기자
◆기사 게재 순서
(1) 위장결혼·이혼·탈북민 특공까지… 불법청약 천태만상
(2) 시세차익만 ‘수억원’ 벌어도 벌금 고작 ‘300만원’

“아는 분이 청약통장을 팔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부동산 업자를 소개했습니다. 계좌로 600만원을 받았는데 통장을 넘겨주기 전 기대하지 않았던 청약이 당첨돼버렸습니다. 돈을 돌려주려고 했지만 연락이 안됐고 시간이 지난 후에 연락이 와서는 자기가 입금한 돈으로 당첨됐으니 청약통장 불법거래로 고소하겠다며 협박했습니다. 자기들은 벌금만 내면 된다고요. 저는 청약통장 거래가 불법인지 몰랐습니다. 스스로가 한심합니다.”


현행 주택법에 따라 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위를 양도·양수 혹은 알선하거나 이를 목적으로 한 전화·인터넷·인쇄물 광고 행위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주택을 전매하거나 전매를 알선한 자도 같은 처벌을 받는다.


그마저도 부당이득의 3배에 해당하는 금액이 30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즉 이익이 1000만원 이상이면 벌금이 이익의 3배 이하로 조정된다. 해당 주택공급계약이 취소됨은 물론 최장 10년 동안 청약 자격도 빼앗긴다. 이 같은 처벌 규정에도 수년째 반복되는 불법 청약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최소 수억원에서 많게는 십수억원에 달하는 부당이득과 비교할 때 형편없이 낮은 벌금 규정이 오랜 시간 지적돼왔지만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불법을 감수하고 청약통장 불법거래와 불법전매가 난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불법 청약에 대한 신고포상금제도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주택법은 시·도지사가 분양권 전매나 알선의 신고자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 주택법 시행규칙은 포상금 한도를 1000만원 이하로 정하는데 금액이 벌금보다 적을뿐더러 신고로 인정되는 증거 제출 등 지급 기준 역시 까다롭기 때문에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범죄 적극성 낮아 ‘집행유예’

2019년 충북 청주에 거주하는 학부모 3명은 지인 A씨에게 청약통장을 빌려주는 대가로 각각 500만원씩을 받았다. 아파트에 당첨된 뒤 분양권을 전매해 시세차익을 얻기 위한 목적이었다. 학부모들은 A씨에게 청약통장뿐 아니라 신분증, 인감증명서, 공인인증서를 넘겼다. A씨는 이들을 아파트 분양 지역에 위장전입도 시켰고 결국 아파트를 분양받는 데 성공했다. A씨는 구속 기소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청약통장을 건네준 학부모들은 상대적으로 범행의 적극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올 초 대량의 불법 분양권 전매로 논란이 된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자이에선 사후 검증을 통해 전문 브로커가 위장 전입과 명의도용 등을 통해 청약 가점을 부풀린 수법이 발견됐다. 병원의 임신 진단서, 주민등록등본 위조 등 새로운 수법도 동원됐다. 브로커들은 저소득층이나 부양가족이 많은 가구의 청약통장을 1000만원에 매입했다. 업계에 따르면 청약통장 불법거래를 통해 브로커가 챙기는 부당이득은 수십억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행법상 1000만원 이상 부당이득에 대해선 3배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조항이 있지만 이 역시 적발 전 차명화나 현금화했을 경우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 당시 청약통장을 건넨 분양 당첨자들은 대부분 300만원 안팎의 낮은 벌금형을 받았다. 최대 벌금 상한인 3000만원의 10분의1 수준이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수도권 3기 신도시 예정인 하남시 등 경기 일대에서 불법 청약자가 적발됐을 때도 실제 처벌은 벌금 100만원 가량에 불과했고 청약제한 기간도 법적으로 최대 10년 이하지만 3년에서 5년으로 짧았다”고 설명했다.

잡히는 건 극소수

노후 주택가에 ‘청약통장 삽니다’라는 전단이 버젓이 붙어있고 부동산 호황기마다 분양현장에 운영되는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이 활개를 치는데도 처벌 수위는 강화되지 않고 있다. 범부처 합동으로 내부거래, 시세조작, 불법중개, 불법전매·부당청약 등을 조사하고 있지만 국토교통부 산하의 ‘부동산거래 분석기획단’은 정원이 23명에 불과하다. 범죄 행위에 법인이 집단적으로 동원되는 데 비해 조사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시조직을 정규조직화하고 인원을 점차 늘려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기획단은 2020년 9월∼11월 신고된 2만5455건의 거래 가운데 2022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올 4월 공개한 결과 불법 의심사례는 244건만 확인됐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 관계자는 “불법 청약과 관련된 대부분의 적발은 신고와 제보에 의해 이뤄지는데 증거가 불충분한 경우가 많고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며 “정의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시민의 제보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불법적인 거래로 부당이득을 얻은 당사자 간에 민사소송을 통해 사적이득을 취할 수 있는 현행 법체계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 관계자는 “불법 분양권 전매나 청약통장 거래 등을 해 형사처벌 대상인 이들이 서로 간에 사적이득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민사소송을 벌이는 일이 흔하다”며 “형사와 민사는 별개로 기소 권한은 수사당국에만 있다 보니 법원이 불법 행위자들의 잘잘못을 가리지 못하고 이익 침해 부분만 따지는 것 역시 법의 허점”이라고 지적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논의 필요

브로커에게 명의를 빌려준 사람 중엔 장애인이나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 약자가 많다는 이유도 처벌을 약하게 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처벌 수위 역시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부정청약에 가담한 장애인이나 기초생활수급자는 공공주택 입주자격이나 각종 사회보장급여 수급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이미 19개 법안에서 시행하고 있다. 임재만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불법 청약으로 인해 얻은 부당이득에 대해선 벌금이 아니라 전부 환수해야 한다”며 “범죄수익 환수 또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