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발 '토지 용역' 관련 피해자들이 지방까지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문제의 '토지 용역' 관련 부지./사진=박비주안 기자
소액 약정금만 주고 개발 예정지 토지를 확보하는 이른바 ‘토지 용역’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부 토지 용역꾼은 토지주가 약정 계약 파기를 요구할 시 '계약금의 두 배를 배상하라'는 무차별적인 고소전까지 펼치는 것으로 확인되어 파장이 예상된다. 수도권에서 주로 이뤄지는 이 ‘토지 용역’은 적은 돈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유인, 대구에 이어 부산까지 피해자가 발생했다. 피해자들 중에는 전직 야구선수 등 지역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스포츠 선수들까지 포함되어 있어 더욱 공분을 사고 있다.

지역에서는 다소 생소한 ‘토지 용역’을 알아보기 위해 수도권의 전문가를 찾았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땅을 살 때 토지주에게 땅값의 10%에 돈을 계약금으로 주는 게 상식인데, 최근 들어 땅값의 1%에 해당하는 소액 약정금으로 토지 계약을 유도하는 전문 토지 용역꾼이 늘었다”며 “그들 중엔 1%도 안 되는 약정금으로 막대한 규모의 토지를 확보한 뒤 해당 토지와 관련한 계약서를 대형 건설사에 팔아 천문학적인 수수료를 챙기는 토지 용역꾼도 있다”고 설명했다.


거액을 손에 쥐는 토지 용역꾼이 활개 치는 가운데 피해자도 속출하고 있다. 인천시 A씨(서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A씨는 개발업체 B사에 약정금 570만원만을 받고 8억 4천만원에 달하는 땅을 내줬다. A씨는 “B사가 계약금 10%는 도시개발조합 설립 인가 후 6개월 이내, 잔금은 환지 예정지 지정 후 6개월 이내 주기로 했다”며 “나처럼 땅값의 1%를 약정금으로 받고서 토지 계약서에 사인한 주민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B사는 이런 식의 소액 약정 계약을 통해 막대한 규모의 토지를 확보했다. 가뜩이나 해당 지역이 대규모 개발 예정지라, 주변 개발업자들 사이에선 ‘지금껏 체결한 약정 계약서만 팔아도 B사가 돈방석에 앉는 건 시간문제’라는 얘기마저 돌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진 건 B사의 약정 계약 방식에 의문을 품은 토지주가 늘면서다. A씨는 “주민들 사이에 ‘다른 시행사는 정상적으로 땅값의 10%를 계약금으로 주면서 토지 계약을 체결한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그 얘기가 사실이었다”며 “약정 계약에 불만을 품은 몇몇 주민이 B사에 계약 해지를 요구하자 개발업체가 되려 민사소송장을 보내면서 문제가 커졌다”고 전했다.


A씨는 “약정 계약도 문제였지만, 토지주들이 실망한 이유는 따로 있다”면서 “B사와 맺은 토지 계약서를 꼼꼼하게 살피다 깜짝 놀랐다. 토지주가 약정 계약 해지를 요구하면 B사에 계약금의 두 배를 배상해야 하고, B사가 계약 해지를 요구하면 약정액만 포기하면 된다는 조항이 발견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A씨가 계약 해지를 요구하자 개발업체는 ‘A씨가 계약을 위반했다’며 소송 비용 부담과 함께 계약금 8천 400만 원의 배액인 1억 6천 800만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이 계약서에 따르면 B사가 A씨에게 계약 해지를 요구할 땐 약정금 570만 원만 포기하면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부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B사는 약정금만을 포기하고 해제할 수 있는 반면 토지주들은 그 20배액이 넘는 돈을 반환하여야 해제할 수 있다고 정한 것은 형평의 원칙상 무효라고 봄이 상당하다”며 토지주들이 약정 계약을 파기할 시 B사에 계약금의 2배를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소액 약정금으로 비싼 토지를 확보하고서 ‘계약금 2배 배상 조항’으로 토지주들의 계약 파기를 막으려던 토지 용역꾼들에게 이번 판결은 ‘듣고 싶지 않던 최악의 뉴스’일 것”이라며 “이참에 불공정한 약정 계약뿐만 아니라 ‘대형 건설사가 도시개발사업에 참여하기로 확정했다’는 식으로 과장 광고를 하는 일부 토지 용역꾼에 대해서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첨언했다.

부산에 있는 피해자들 역시 수도권의 상황을 눈여겨 보고 있다. 지역에서 큰 사랑을 받고 지낸터라 ‘부동산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알릴 수도 없었던 그들은 오랜 기간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개발업체 B사 대표는 토지주들에게 업무방해, 사기 등으로 고소돼 경기도 김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