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상장협)이 국민연금 대표소송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 사진제공=한국경영자총협회
▶기사 게재 순서

(1) 노동이사제·중대재해법 이어 대표소송… 잠 못드는 CEO들
(2) “기업 길들이기” vs “주주가치 제고”… 주주대표소송 대체 뭐길래
(3) 몰아치는 ESG 법제화… 기업은 울고 싶다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에 속도를 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담당하고 예외적인 경우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가 판단하도록 규정한 주주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수탁위로 일원화하는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수탁위는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기구로 만약 개정이 그대로 이뤄진다면 기업 경영에 정부 입김이 작용할 우려가 커진다. 정치논리에 따라 기업 길들이기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 주주대표소송 본격화

주주대표소송이란 회사가 고의·과실로 비위행위를 저지르거나 손해를 입힌 이사(임원)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을 추궁해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 할 때 회사 대신 주주가 해당 이사에 소송 제기하도록 한 제도다. 회사의 손해를 보전하고 경영진의 위법·부당행위를 감독해 경영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는 장치로 평가된다.


국민연금은 주주대표소송을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지난해 12월 기업 주주가치 훼손 관련 사건의 정확한 사실관계 등을 확인하기 위해 비공개 서한을 발송했다. 구체적인 대상 기업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기업 20~30곳이 서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에 행정기관이나 수사·사법기관 등으로부터 처벌이나 제재를 받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서한을 보낸 것은 사실상 주주대표소송 제기를 염두에 둔 조치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국민연금은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나 1% 이상 지분을 보유한 투자회사를 대상으로 주주를 대표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을 5%이상 갖고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를 포함해 30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도 소송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무엇보다 주주대표소송의 결정 주체를 수탁위로 일원화하는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개정이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된다. 지난해 12월 제10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 주주대표소송 추진과 관련한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을 상정하고,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수탁위로 일원화해 올해부터 주주대표소송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개정안은 2월 열리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계는 수탁위의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공단 내 독립적인 기금운용 조직인 반면 수탁위는 복지부가 주관하는 최고정책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기구”라며 “이번 지침 개정의 핵심은 대표소송 결정 권한을 공단 내 독립적 기금운용 조직에서 정부가 주관하는 위원회로 귀속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이 주주대표소송을 본격화한다./ 사진=뉴시스

법률 효율성 의문… 수탁위 일원화도 문제

중립성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수탁위는 사용자대표 2명, 근로자대표 2명, 지역가입대표 2명에 국민연금기금이 임명한 상임 전문위원 3인 등 총 9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근로자대표와 지역가입대표는 시민단체와 노동자단체가 추천하기 때문에 기업의 주요 안건마다 문제 삼아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기업의 모든 판단이 국민연금 대표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활동 가이드라인’은 주주대표소송에 대해 ‘투자대상 기업의 장기적인 주주가치 증대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소송을 제기하고 대상은 ‘이사 등이 기업에 대해 부담하는 모든 책임을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절차에 따른 합리적인 경영진의 판단조차 소송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에 무분별한 소송이 남발될 것이란 게 재계의 우려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주주대표소송 대상을 최종심 판결로 한정해 법률관계가 명확히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여론에 편승해 대표소송 제기를 강행할 우려를 차단해야 한다”며 “명백한 범죄에 대해서만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연금은 이미 의결권 행사로 충분히 의무를 다하고 있기 때문에 주주제안이나 대표 소송은 과도한 경영 간섭에 해당한다”며 “왜곡된 수탁자 책임론에 기초해 끊임없이 경영권 간섭을 시도하고 반기업 정서를 자극하면 결국 국가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원식 건국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주주대표소송은 주주가치를 실질적으로 개선시키기 어렵고 자유로운 기업 활동에 대한 가장 위협적인 규제가 될 뿐”이라며 “정부의 이념과 정책적 노선에 따라 상장기업에 대한 경영간섭으로 이어져 국내 자본시장을 교란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곽관훈 선문대학교 법경찰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의 대표소송은 기금운용의 안정성을 해치고 가입자인 국민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국민연금기금 운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독립된 전문가들이 자산운영 및 주주권행사에 대해 판단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지배구조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