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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지난 4일 막을 올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어느덧 폐회식만을 남겨두고 있다. 17일 동안 우리는 베이징을 달군 태극전사들의 늠름한 한 마디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의 명대사보다도 더 큰 울림을 줬던 '베이징 영웅'들의 인터뷰를 추렸다.
"한 번 넘어졌다고 해서 4년 준비한 게 없어지지는 않는다"
-쇼트트랙 최민정-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간판 최민정(성남시청)은 대회 초반 500m 준준결승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길 후보로 꼽힌 최민정의 탈락에 팬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최민정은 덤덤했다. 다음날 공식 훈련을 마친 뒤 위로하는 기자들에게 "한 번 넘어졌다고 해서 4년 준비한 게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그동안 스스로가 확신을 가지기에 충분할 만큼 고된 훈련을 이겨냈기에, 낙담 대신 자신감을 표출할 수 있었다.
그는 그 말을 완벽하게 지켰다. 이어진 경기에서 여자 1500m에서 금메달, 여자 1000m와 여자 3000m 계주에서 각각 은메달을 따냈다. 4년 동안 열심히 흘린 최민정의 피와 땀은 정말 없어지지 않았다.
"5000만 국민 여러분, 함께 뛰어줘 고맙습니다"
-쇼트트랙 곽윤기-
곽윤기(고양시청)는 개성 넘치는 분홍색 머리와 익살스러운 춤으로 이번 대회 내내 많은 팬들을 웃음 짓게 한 '분위기메이커'였다. 하지만 곽윤기가 늘 가볍기만 한 건 아니었다.
속마음은 그 누구보다 진중하고 따뜻했다. 곽윤기는 남자 5000m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 은메달을 딴 뒤 "국민 여러분들이 한마음으로 뛰어줬기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5000만 국민 여러분, 함께 뛰어줘 정말 고맙습니다"고 인사해 주변을 뭉클하게 했다.
곽윤기는 이 밖에도 "나는 은퇴 후 역사 속 작은 흔적으로 사라질 테지만, 후배들은 앞으로도 계속 역사를 쓸 수 있는 선수들이다. 우리 친구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응원과 관심을 부탁한다"며 후배들을 향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곽윤기는 인기 유튜버 이전에 한국 쇼트트랙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는 멋진 선배였다.
"아쉬움은 좋아하지 않는다. 지나간 일에 미련은 없다"
-스켈레톤 윤성빈-
'아이언맨' 윤성빈은 이번 대회에서 다소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안방 이점을 두루 누렸던 평창 대회에 비하면 상황이 열악했다. 반면 4년 전 금메달을 기억하는 주변의 시선 탓에 기대치는 높았다. 윤성빈은 높아진 부담과 악재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지만 메달권에 들지 못했고, 결국 12위라는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다.
윤성빈은 대회 전부터 "사실 메달권은 힘들다"고 솔직하게 고백해 이목을 끌었다. "어떻게든 금메달을 따겠다"는 관성적인 인터뷰를 할 수도 있었지만, 윤성빈은 그 대신 그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스스로를 바라봤다. 운동선수로서 패배를 인정하는 건 더 괴롭고 잔인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인정이 있었기에 그는 보다 빨리 다음을 준비할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지나간 일에는 미련이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다음을 준비하겠다"는 그의 덤덤한 인터뷰는 그래서 더 울림을 준다.
"치킨 연금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다"·"치킨은 내 소울 푸드다"
-쇼트트랙 황대헌- -피겨스케이팅 차준환-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긴 황대헌(강원도청·한국체대 졸업예정)은 자신의 일정을 모두 마친 뒤 참석한 기자회견에서 "치킨 연금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말해 주변을 웃음짓게 했다.
제너시스BBQ의 회장이기도 한 윤홍근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이 황대헌에게 평생 치킨을 약속하면서, 이른바 '치킨 연금'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황대헌은 이 소식을 듣고 "치킨을 정말 좋아한다. (훈련하는 동안 못 먹었을 치킨을) 마음껏 먹으며 쉬고 싶다"고 기뻐해 화제가 됐다.
황대헌이 치킨 연금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선수들도 저마다 숨겨놓았던 치킨 사랑을 공개했다. 피겨 스케이팅의 차준환(고려대)은 "그 브랜드 치킨이라면 나도 좋아한다. 내 소울 푸드"라며 치킨 연금을 노렸다. 최민정 역시 "올림픽이 끝나면 먹고 싶은 게 엄청 많다. 특히 황금 올리브 치킨이 먹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어필하기도 했다. 윤홍근 회장의 발언과 이에 화답한 황대헌을 시작으로, 이번 대회 내내 선수단에는 '때 아닌' 치킨 열풍이 불었다.
"늦지 않았다. 지금 시작하셔도 된다"
-박재민 해설위원-
선수가 아닌 해설위원의 한 마디도 올림픽을 뜨겁게 달궜다.
박재민 KBS해설위원은 스노보드 알파인 여자 평행대회전을 중계하던 도중 아이를 낳고 은퇴했다가 복귀한 글로리아 코트니크(슬로베니아)가 동메달을 따자 "한국의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를 출산하면서 경력단절,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바로 지금, 다시 시작하셔도 된다. (코트니크가 해냈듯) 전혀 늦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계에 도전하고 보란 듯이 이를 이겨낸 선수의 모습과 그런 선수를 통해 울림있는 메시지를 전한 박재민 해설위원의 한 마디는 이번 올림픽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였다.
"청춘들의 4년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윤홍근 베이징 동계올림픽 선수단장-
이번 대회 초반을 관통한 최고의 이슈는 역시 쇼트트랙에서 나온 '도를 넘은' 편파 판정이었다. 당시 남자 쇼트트랙 1000m에서 한국 선수들이 납득할 수 없는 판정으로 대거 실격 당했고, 이후 중국 선수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 올라가 결국 금메달까지 땄다.
윤홍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선수단장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편파 판정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이례적으로 토마스 바흐 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이어 윤 단장은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쇼트트랙 젊은 선수들의 청춘을 지켜내지 못한 부분에 대해 대한민국 선수단을 대표해 선수단장으로서 사죄와 용서를 구한다. 정말 죄송하다"면서 고개숙였다. 또한 "다시는 국제 빙상계와 스포츠계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억울하게 실격 당했던 우리 선수들의 가슴은 미어졌지만, 윤 단장의 진심이 담긴 이 한 마디 덕분에 다시 추스리고 힘을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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