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은옥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 주총 앞둔 재계, 경영권 분쟁 재점화

② 주총 벼르는 동학개미… 기업들 좌불안석
③ “여성 사외이사 구해요”… 발등에 불 떨어진 재계
④ 코로나 3년차, 주총 풍경도 달라졌다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내 주요 기업들이 경영권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적대 입장에 있는 오너 일가나 주주는 물론 외부 세력들이 현 경영진에 노골적으로 반대 입장을 드러내며 이사회 장악을 시도하고 있어서다. 각 기업들도 분쟁에 대비해 우호세력을 끌어모으는 등 방어 태세 강화에 나서고 있다.

한진, 2년 만에 경영권 분쟁 재개되나

최근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제기된 대표적 기업은 한진그룹이다. 과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사모펀드 KCGI가 조 회장의 여동생인 조현민 ㈜한진 부사장의 사장 승진을 문제 삼으며 최근 회사를 상대로 주주제안에 나섰다. 소위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KCGI 측의 주주제안에는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정관을 변경하고 독립적인 사외이사 후보를 선임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론 ▲기업가치 및 주주권익 보호 위해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 실형의 확정 판결 받은 자는 이사가 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이사 자격요건 강화 ▲주주총회 효율성 제고 등 위해 전자투표 도입 ▲포스코 사외이사, 한국관리회계학회 회장 등 역임한 서윤석 후보의 사외이사 선임 등의 안건이다.

한진이 올해 주총에서 KCGI와 표대결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DB
KCGI 측은 “최근 강행된 한진의 조현민 사장 선임은 과거의 후진적 지배구조로 회귀를 의미한다”면서 “사회적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사를 계열사 사장으로 선임하는 것은 기업가치와 회사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를 좌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KCGI가 한진칼에 주주제안을 한 것은 경영권 분쟁이 극에 달했던 2020년 주주총회 이후 2년 만이다. 당시 KCGI는 조 회장과 적대 관계인 누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권홍사 회장이 이끌고 있는 반도건설 등과 함께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반대 등을 추진했지만 표 대결에서 패배해 성공하지 못했다.


올해 주총에서도 주주제안이 통과할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다. 현재 KCGI 측의 지분은 우호지분을 포함, 37% 가량으로 조 회장 측 우호지분(33%)보다 4% 정도 많지만 한진칼 지분 10.5%를 쥔 산업은행이 조 회장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돼서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전제로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한 산은이 조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할 것이란 분석이다.

금호석화 ‘조카의 난’ 2차전 예고

금호석유화학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 다시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다. 지난해 삼촌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을 상대로 명분 없이 ‘조카의 난’을 일으켰다 해고된 박철완 전 상무가 최근 회사를 상대로 주주제안을 내면서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박 전 상무는 이번에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 2명의 후임 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내용 등을 요구했다. 일각에선 박 전 상무가 사외이사 2인이 아닌 사외이사 1인과 사내이사 1인을 제안하고 사내이사 후보로는 본인을 직접 추전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가 올해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제안을 해 경영권 분쟁이 재발할 조짐이다. / 사진제공=박철완 전 상무
박 전 상무는 금호그룹 3대 회장인 고 박정구 회장의 아들로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의 조카다. 지난해 1월 박찬구 회장과 특수관계 해소를 선언하며 ▲배당 확대 ▲본인의 사내이사 추천 ▲본인과 우호적인 인물 4인의 사외이사 및 감사 추천 등을 추진하다 주총 표결에서 패배하고 해임됐다. 하지만 박 전 상무는 자산이 여전히 회사 지분 8.58%(보통주 기준)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라며 선친의 뜻을 계승해 회사 발전에 기여 하겠다는 입장이다.

올해도 금호석화 주총에선 박 회장 측과 박 전 상무 측의 표 대결이 벌어질 전망이다. 박 전 상무는 박은형·은경·은혜씨 등 세 누나와 모친 김형일씨, 장인 허경수 코스모그룹 회장 등과 합쳐 10.22%의 지분을 보유했다.

반면 박찬구 회장 측의 보유 및 우호 지분은 두 자녀인 박준경 부사장, 박주형 전무를 포함해 모두 14.92%다. 여기에 회사 임원 등의 보유분을 합칠 경우 박 회장 측 지분율은 더 높아진다. 이와 관련 박 전 상무는 박 회장 측 우호지분으로 분류되는 OCI의 금호석화 보유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해 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등 표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한샘·롯데 등 기업 곳곳에 분쟁 불씨

한샘도 2대주주이자 미국 사모펀드 ‘테톤 캐피탈 파트너스’(이하 테톤)가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하고 지난 1월 마무리된 한샘 M&A(인수합병)를 문제 삼는 등 잇따라 목소리를 높이면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높아졌다. 테톤은 최근 한샘에 ▲사외이사 선임 ▲전자투표제 도입 등의 주주제안도 냈다. 테톤이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후보자로 추천한 인물은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기업지배구조 관련 전문가다.


대구·경북 1위 건설기업인 화성산업도 오너 2세 형제간 분쟁이 한창이다. 창업주의 장남이자 최대주주인 이인중 명예회장 측이 동생 이홍중 회장을 해임하려고 나서면서다. 현재 화성산업은 이인중 명예회장의 아들인 이종원 사장과 이홍중 회장이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이홍중 회장은 3월 중 임기가 만료된다.

이런 가운데 회사 이사회가 이 회장의 연임을 추천하지 않았고 별도 주주 제안으로 이 회장의 연임 안건이 올라와 주총에서 표대결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이인중 명예회장 측은 이 회장 등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표면적으로 문제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롯데도 경영권 분쟁 불씨가 여전하다. 롯데는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신동빈 회장의 형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한국 상장사 지분을 매각하면서 분쟁이 마무리되는 듯 했다. 하지만 신동주 회장이 최근 한국 롯데 실적을 비판하면서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언제든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재계 한 관계자는 “주주제안이 회사·주주와 이해 관계자의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정당한 목적일 경우 경영과 발전 관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의사결정 주체가 다원화되면 효율성이 떨어질 우려가 상존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익 추구나 단기적인 이슈를 통한 주가 부양을 목적에 둔 경영권 분쟁은 기업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기업 입장에선 분쟁 상대의 목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