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여성 사외이사 모시기에 나섰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 주총 앞둔 재계, 경영권 분쟁 재점화
② 주총 벼르는 동학개미… 기업들 좌불안석
③ “여성 사외이사 구해요”… 발등에 불 떨어진 재계
④ 코로나 3년차, 주총 풍경도 달라졌다

삼성전자·LG화학·SK이노베이션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여성 사외이사 선임에 여념이 없다. 여성 사외이사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오는 8월 시행될 예정이어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기관으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것도 여성 사외이사 선임 이유로 꼽힌다.

국내 기업 45%가 이사회 내 여성 제로(Zero)

오는 8월 5일 시행 예정인 자본시장법(제165조의20·이사회의 성별 구성에 관한 특례) 개정안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남성 또는 여성 등 특정 성별로만 이사회를 구성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이사회 내 성별 구성을 늘려 다양성을 확보하라는 취지다.


해당 법 개정안에는 처벌 조항이 명시되지 않았다. 이사회 구성원 전원을 특정 성별로만 채워도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법적 처벌 유무보다 ESG 평가기관의 영향력을 고려하고 기업 내 ‘유리천장’ 인식을 깨트리기 위해 이사회 내에 여성 구성원을 넣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재 국내 기업 이사회는 남성으로만 채워진 경우가 많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자본시장법 개정안 적용대상(167개사) 중 45%(75개사)가 이사회 내에 여성 이사를 두지 않았다. 이사회 내 여성 이사가 없는 기업 중 개정안이 적용되는 8월까지 임기 만료 예정인 이사가 없는 기업은 10개사에 달한다.


다른 나라 기업과 비교했을 때도 한국 기업은 이사회 내 여성의 영향력이 적은 편이다. 회계법인 딜로이트 글로벌이 지난달 16일 발행한 ‘기업 이사회 내 성 다양성’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 이사회에 등록된 여성 비율은 4.2%로 세계 평균(19.7%)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한국 기업의 여성 이사 비중은 카타르(1.2%) 사우디아라비아(1.7%) 쿠웨이트(4%)에 이어 네 번째로 적다.

“다양성 확보하자”… 여성 사외이사 선임 발표한 기업은 어디?

삼성전자,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이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할 계획이다.
우선 3월 주주총회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할 계획인 기업은 삼성전자,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이다. 삼성전자는 오는 16일 열리는 주총에서 한화진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석좌교수를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할 방침이다. 한 교수는 1993년부터 23년 동안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서 재직한 환경정책 전문가다. 이명박 정부 당시(2009년)에는 2년 간 청와대 환경비서관으로 근무했다. 2016년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2대 소장으로 취임, 여성과학기술인의 권익증진에 힘썼다.

LG화학은 이달 23일 주총에서 이현주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와 조화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신임 사외이사로 각각 선임한다. 이 교수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학자로 석유화학 공정과 지속가능성 사업 분야 전반에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교수는 정치와 과학기술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사업 방향성에 대한 자문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이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로 선임될 경우 LG화학 첫 여성 사외이사가 탄생하게 된다.

SK이노베이션은 오는 31일 주총에서 김태진 고려대학교 법학과 교수를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2000년 사법연수원 제29기를 수료한 뒤 건국대, 한양대, 고려대 등에서 교수직을 역임했다. SK이노베이션은 김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사유에 대해 “젊고 유능한 법조인이란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국내 조선사들도 여성 사외이사 선임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은 조영희 엘에이비파트너스 변호사를, 현대중공업은 박현정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현대미포조선은 김성은 경희대학교 회계·세무학 교수를 각각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꼽았다.

셀트리온(고영혜 제주한라병원 병리과 과장) 신세계(최난설헌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뚜기(선경아 가천대 관광경영학과 부교수) LS일렉트릭(송원자 수원대 경영학과 교수) 효성중공업(윤여선 카이스트 경영대학장) 등도 여성 신임 사외이사 후보를 확정해 놓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들의 여성 사외이사 선임에 대해 “여성이 이사회에 들어가는 것은 글로벌 추세”라며 “성별 구성을 늘려 다양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법을 이용해 여성을 이사회에 반드시 참여시키라고 한 규정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며 “사외이사로 선임할 만한 여성 인력풀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