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신청한 시행사의 신용도나 사업성이 낮은 경우 대주단은 시공사의 책임준공과 함께 채무인수 약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시공사의 신용이 낮으면 대주단은 리스크(위험)를 줄이기 위해 신탁계약 체결을 요구하기도 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기사 게재 순서
(1) 호황 땐 '동지' 불황 땐 '남남'… 건설 vs 금융·신탁 "네 탓" 공방
(2) [르포] 공사 멈춘 강남의 주상복합… 공기 지연에 '빚더미'
(3) 중소·중견건설업체 참여 사업 10곳 중 8곳 '노예계약'


2010년대 초반 7개 저축은행의 영업정지로 예금자 뱅크런을 일으킨 이른바 '저축은행 사태'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이 발단이었다. 비우량 건설회사의 사업장에 투자한 돈이 회수되지 못하면서 위기의 원인이 됐다. 최근 건설업계와 금융권이 불공정 계약 논란으로 대립하고 있는 신탁계약의 책임준공과 채무인수도 신용도가 낮은 중견·중소 건설업체와 저축은행·대부업체·캐피털 등이 주축으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이강준 디자인 기자


A급 사업장 아닌 경우 신탁계약 요구 받아

PF 대출을 신청한 시행사의 신용도나 사업성이 낮은 경우 대주단은 시공사의 책임준공과 함께 채무인수 약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시공사의 신용이 낮으면 대주단은 리스크(위험)를 줄이기 위해 신탁사와 신탁계약 체결을 요구하기도 한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이 시공능력 40위 이하 21개 시공사의 86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8.6%가 책임준공 미이행시 PF 채무인수를 약정했다. 신탁사가 시행자가 되지만 사업비를 위탁자나 시공사를 통해 조달하는 관리형 신탁의 경우 이 비중이 96.4%에 달했다. 전체 중견·중소업체의 사업장 가운데 81.4%는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책임준공 관리형 신탁에 참여한 시공사 가운데 시평 100위권 이하 사업장의 비중은 83.5%로 나타났다. 대형 신탁사 한 관계자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A급 사업이 아닌 경우 대주단 입장에서 리스크를 줄이려고 신탁계약을 요구한다"며 "이들 대주단은 1금융권보다 대부업체, 캐피털 등 비우량 금융회사가 많다"고 설명했다.


해당 신탁사는 실제 책임준공 확약을 체결한 시공사가 기성금을 못 받아 공사를 중단하자 공사비를 선불 지급하는 등 여러 직·간접 지원을 했음에도 결국 자체자금으로 완공한 사례가 있다. 현재 구상권을 청구해 사업주체로부터 원금을 회수하고 있다.

관리형 신탁의 보수율은 계약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업계 1위 한국자산신탁이 공개한 기본보수는 책임준공 관리형 신탁 기준 분양수익의 1.5%다. 분양수익이 1조원인 사업의 신탁보수는 150억원인 셈. 신탁업계 관계자는 "정비사업의 경우 사업기간이 10년 안팎으로 길어 연간 보수율은 0.1%에 못 미치는 수준이고 신탁사 간 경쟁으로 보수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신탁사가 PF 대주단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 경우 당분간 책임준공 확약서로 인한 각종 소송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신탁사 명의로 보유한 고유재산의 보전처분(가압류, 가처분 등)이 이뤄질 수도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부동산신탁사의 토지신탁 수탁고는 2022년 말 101조5000억원에서 올 3월 말 98조9000억원으로 10년 만에 감소했다. 부동산신탁사의 개발사업 규모는 2022년 기준 약 88조원으로 추정된다. 책임준공 계약은 62조원으로 70.5%를 차지한다.

그래픽=이강준 디자인 기자


"저축은행 사태와는 본질 다르다"

2010년대 후반 부동산 가격 상승이 시작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저금리가 지속된 2020년 전후 집값 거품이 커졌다. 신용도가 낮은 중견·중소 건설업체들은 우후죽순 분양시장에 뛰어들어 대주단 입장에선 추가 보증이 필요하게 됐고 책임준공 요구가 늘었다. 하지만 2021년 하반기 금리 인상에 이어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전쟁으로 물가 폭등이 지속되며 건설업계는 공사비 상승과 분양 침체의 상황에 직면, 공사를 중단해야 하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

대주단 요구로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책임준공과 채무인수 약정을 맺은 시공사들은 꼼짝없이 빚더미에 앉게 되자 전쟁과 경기침체 리스크를 금융회사가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된 사업장의 대주단에는 시중은행보다 시스템 리스크에 취약한 저축은행·대부업체·캐피털 등이 다수 포함돼 있다. 다만 제2의 저축은행 사태가 될 정도는 아니라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건산연 조사에 따르면 협상이 곤란한 대주단의 유형 가운데 40%를 증권사가 차지했고 이어 여신전문회사(20%) 저축은행(15%) 새마을금고(10%) 기타 상호금융(10%) 보험(5%) 등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부 대부업체나 캐피털사가 부실화되는 규모의 피해가 예상되고 저축은행은 후순위 채권자와 예금자 등 투자자 피해가 있었던 것이 사태의 본질이어서 서로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