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명동의 환전소에서 원·달러 환율이 1408원에 거래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사울 명동의 환전소에서 원·달러 환율이 1408원에 거래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중동 불안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증하자 외환당국이 16일 구두개입에 나섰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에 이어 이스라엘이 '고통스러운 보복'을 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16일 17개월 만에 장중 1400원선을 뚫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낮아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수입물가 상승을 야기한다. 중동 확전 우려는 유가 상승을 불러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 여기에 고금리까지 장기화되고 있다.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의 '3고(高)'지속은 내수부진 등 경기 하방 리스크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기획재정부·한국은행은 지난 16일 신중범 기재부 국제금융국장과 오금화 한은 국제국장 명의로 "외환당국은 환율 움직임, 외환수급 등에 대해 각별한 경계감을 가지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나친 외환시장 쏠림 현상은 우리 경제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필요하면 시장개입을 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발언이다.


정부는 전날 오전에도 환율 급등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16일 '중동 사태 관련 관계부처 합동 비상경제상황점검회의'에서 "시장이 우리 경제 펀더멘털과 괴리돼 과도한 변동성을 보일 경우 즉각적이고 과감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전날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유상대 한은 부총재의 입장보다 강해진 발언이다.


앞서 지난 15일 최 부총리는 "금융외환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에 대해서는 적기에 필요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도 전날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향후 이스라엘의 대응 강도, 주변국 개입 여부 등 상황 전개에 따라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가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나선 것은 중동 정세 불안이 유가 급등으로 이어져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고 보고 있어서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이날 오전 11시31분께 1400원까지 올랐다. 환율이 장중 1400원대에 진입한 것은 지난 2022년 11월 7일(1413.5원) 이후 약 17개월 만이다.

국제유가는 지난 주말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에 따른 충격이 진정되고 국제사회의 확전 자제 촉구 등으로 인해 지난 15일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유가 불안 불씨는 여전하다.

국제유가 기준으로 쓰이는 브렌트유는 6월 인도분이 배럴당 90.10달러로 마감해 전거래일 대비 0.35달러(0.39%) 하락했다. 미국 유가 기준물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5월물이 배럴당 85.41달러로 0.25달러(0.29%) 내렸다.

국제유가 130달러까지 치솟나… 물가 불안 요인

하지만 일각에선 중동 불안이 확산해 원유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까지 봉쇄되면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원유의 72%를 중동 지역에서 공급받고 있다. 유가 상승과 연준의 금리 인하 지연에 따른 원/달러 환율 상승 등이 겹치면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민간소비와 설비투자, 수출 등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유가가 오르면 공공요금 인상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구매하는 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이 국제 유가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 하반기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재무 상황, 국제연료 가격 등을 감안해 전기·가스요금 추가 인상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김병환 차관은 전날 '중동사태 관계부처 상황점검회의'에서 물가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사태로 인한 국내 물가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전반적 물가관리 노력에도 역점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달 수입물가도 4개월 연속 상승이 예상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3월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지 난 3월 기준 수입물가지수는 137.85(2015=100)로 전월(137.24)과 비교해 0.4% 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0.7% 내렸다.

수입물가는 1월(2.5%), 2월(1.0%)에 이어 3개월 연속 상승세다. 수입물가를 끌어올린 것은 국제유가 상승 영향이 컸다. 2월 두바이유는 80.88달러였지만, 3월에는 84.18달러로 전월대비 4.1% 상승했다. 수입물가를 품목별로 보면 원재료는 광산품(%)을 중심으로 전월 대비 1.0% 상승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3고(高)가 지속되면 경제 전반에 상당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고유가와 내수부진은 국내 기업의 설비투자까지 축소할 수 있다.

국내 산업은 원유 의존도가 높은 만큼 유가가 오를수록 수익성이 악화해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데 이는 설비투자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한은이 통화정책의 목표는 아니지만 환율 약세는 '수입 물가 상승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며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친다"며 "지난 3월 SNB(스위스중앙은행)가 깜짝 금리를 인하하면서 스위스 프랑은 약세를 보이는데 이를 보듯이 한은이 완화적인 스탠스를 보일수록 원화는 더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은은 연준과 상관없이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언급했지만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에서 원화 약세는 금리 인하의 제약 요인"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