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을 둘러싼 논쟁은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집값이 문제다." "비용이 많이 든다." 같은 진단이 틀리지 않지만, 결혼과 출산을 '결심'하게 하기 위한 일회적 지원만으로는 해법이 되지 못한다. 출산과 양육은 개인의 인생 전체를 바꾸는 중대한 선택이다. 아이를 낳으면 알아서 잘 자라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교육, 고용, 주거 등 많은 사회적 짐을 진 청년들에게 출산과 양육은 새로운 부담이 될 뿐이다. 일상적인 사회 구조의 변화 없이는 이러한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종종 언급되는 연구가 행동생태학자 존 B. 칼훈의 '유니버스25' 실험이다. 먹이가 넘치고 천적도 없는 환경에서 쥐들은 초기에 급격히 번성한다. 그러나 개체수가 과밀해지면 극단적 공격성을 보이며 반목하기 시작한다. 이때 가장 먼저 다음 세대를 만드는 사회적 기능이 붕괴한다. 출산이 줄고, 태어난 새끼는 방치되며 애착이 사라진다. 살아남은 개체조차 정상적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성체가 되면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한 채, 교류도 번식도 하지 않고 단지 먹고, 마시고, 잠드는 '무기력한 개체'만 남는다. 경쟁과 스트레스는 사라졌지만 사회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이 실험은 우리 사회와 많은 면에서 닮아있다. 폭발적 성장을 거쳐 과밀해진 사회에서 개인은 노동 불안정, 높은 주거비. 교육경쟁이라는 복합 부담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있다. 이 부담은 청년 세대가 견딜 수 있는 사회적 스트레스의 임계치를 초월한다. 스트레스가 누적된 사회는 규범과 문화부터 무너진다. 개인이 맡던 사회적 역할은 희미해지고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다.


최근 사회와 스스로를 격리하는 '쉬었음 청년'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유니버스25의 마지막 세대처럼 처음에는 출산을, 다음엔 결혼을, 나아가 노동과 사회적 관계 맺기까지 단계적으로 포기한다. 그러나 위 실험을 단순히 "도시는 위험하다." 또는 "인구밀도가 문제다."라는 메시지로 오용해서는 안 된다. 핵심은 자원이 아무리 풍요로워도 사회적 상호작용 구조가 무너지면 사회가 지속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붕괴를 부르는 '밀도'가 아니라, 붕괴를 막는 '설계 요인'—시간, 돌봄, 경력, 관계- 이다.

한국의 저출생을 생활구조로 다시 읽어보자. 청년은 결혼과 출산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하기 어렵다'고 인식한다. 직업은 불안정하고 주거는 멀고, 돌봄은 완전히 대신할 수 없는 사회에서 남은 부담은 개인에게 전가된다. 출산과 양육이 '삶의 당연한 일부'가 아니라 '삶을 힘들게 할 위험'으로 인식되는 순간 선택지는 사라진다. 사회는 아이를 낳지 말라고 말하지 않지만, 아이를 낳는 순간 감당해야 할 리스크를 개인에게 넘긴다.


따라서 해법 역시 일회성 장려금이 아니라, 일상 시스템의 재설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첫째, 정책의 중심은 현금이 아니라 시간이어야 한다. 출산·양육기에는 소득보다 시간이 결정적이다. 실현가능한 근로시간 단축, 예측 가능한 스케줄, 불이익 없는 유연근무가 없으면 돌봄은 곧바로 매일의 위기가 된다.

둘째, 돌봄은 시설의 숫자가 아니라 공백 제거로 평가해야 한다. 공공보육이 확대되고 있지만 물리적인 거리, 등하원 공백, 저녁시간 공백은 여전히 부모의 몫이다. 야간과 질병 돌봄까지 포함해 일상에서 돌봄이 끊이지 않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셋째, 지속가능한 경력구조다. 출산이 곧 경력 단절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합리적 선택은 회피일 수밖에 없다. 출산과 양육 이후에도 경력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동 공백이 개인과 동료에게 전가되지 않는 사회적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

넷째, 저출생은 사회적 연결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립과 관계 단절이 확산될수록 결혼과 출산은 더욱 멀어진다.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 청년 주거-일자리-돌봄 결합 모델, 정신건강 돌봄의 조기 개입은 부차적인 복지를 넘어 저출생의 선행지표를 관리하는 핵심 장치가 될 것이다.

오늘의 출산율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얼마나 무너졌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의 건강지표다.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기 이전에 사회 설계의 결과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청년의 마음이 아니라, 청년이 살아가는 환경이다. 아이를 낳아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 사회, 양육이 개인의 부담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능이 되는 사회가 되지 않는 한, 어떤 정책도 숫자를 잠시 흔들 수는 있어도 흐름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 본 칼럼은 대한상의 이시원 연구원(입사2년차)이 수정 및 감수하였습니다.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