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워런 버핏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이 쓴 현명한 투자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투자는 철저한 분석을 통해 원금의 안전과 충분한 수익을 약속받는 행위다.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투기다"


자본시장 종주국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투자와 투기의 경계가 여전히 모호하다. 특히 최근 확산하는 행동주의 투자 역시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내달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이사 자격 제한, 보수 삭감,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다양한 주주제안이 쏟아진다. 기업의 '주치의'를 자처하는 소액주주 활동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상법 개정으로 주주권이 강화되면서 이런 흐름에 더욱 힘이 실렸다.


기업들도 선제 대응에 나섰다.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등 개정 상법 내용을 정관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른다. 행동주의의 경영 개입을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경영 투명성을 높여 공격 빌미를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공격하는 쪽과 방어하는 쪽 모두 전운이 감돈다.

문제는 행동주의 이슈가 곧바로 단기 주가 재료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타깃이 된 상장사는 관련 소식만으로 급등락을 반복하며 변동성이 확대된다. 표대결에서 주주제안이 통과되거나 무산돼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주가는 다시 급락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쯤 되면 투자보다 테마주 장세에 가깝다. "행동주의가 찍으면 주가가 움직인다"는 말까지 나온다. 장기 성장성보다 단기 재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장 구조가 고착화되는 셈이다. 단기 이익에 급급한 특정 세력이 주주권을 명분으로 변동성을 키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소액주주 이해관계가 항상 전체 주주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단기 차익만 쫓는 경영 개입은 핵심 인력 이탈과 전략 혼선으로 이어져 오히려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렇다고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다. 기업에 방만 경영을 견제하고 제한된 자본(돈)의 운용 효율성을 높이는 행동주의 순기능도 분명하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중요한 것은 투기와 구분하는 기준이다.

결국 투자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전문가들은 단기 매매를 경계하고 기업 본질가치에 근거한 장기투자 전략을 강조한다. 태생적 변동성은 장기 보유를 통해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는 논리다.

가치투자의 창시자인 그레이엄은 "주식은 내가 왜 이 가격에 사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투자는 근거가 있어 버틸 수 있지만 투기는 기대감에 편승해 단기 수익에 의존한다. 더욱 흥미로운 건 그레이엄 역시 적극적인 주주 활동가였다는 점이다.

그는 경영진이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말고 재투자, 자사주 매입, 배당 등을 통해 주주가치를 실현하라는 주문이었다. 단기 차익이 아니라 장기 가치에 초점을 맞춘 책임 있는 행동주의다.

주식은 자본주의의 꽃이다. 주주환원과 주주권 행사는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세계 최대 자본시장인 미국도 100년이 넘는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제도를 만들었다. 행동주의 시대에 필요한 건 합리적 의결권과 분별 있는 투자다.

묻지마 투자나 군중 심리에 휩쓸린 표대결이 아니라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투자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짜 똑똑한 소액주주의 시대가 열린다.

송정훈 미래산업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