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파열음 속 김정은 대미 손짓…'핵 패싱'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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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미국과의 대화 여지를 다시금 열어뒀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두 나라가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북미 관계는 전적으로 미국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 대해선 "영원한 적"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유화정책도 기만극이라고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과 21일 노동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한다. 이는 한국과 미국에 다른 외교적 접근을 하는 전통적인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으로 해석된다. 다만 향후 5년간의 노선을 결정한 노동당 대회 발언이라 그 무게감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에 이어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재차 언급한 점도 눈에 띈다.
이제 관심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달 말 중국을 방문하는데, 이를 계기로 북미 대화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망은 엇갈린다. 만남이 어렵다는 쪽은 트럼프가 북한 이슈를 다룰 에너지나 여력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 경제와 관세정책, 중국·이란·우크라이나 문제만으로도 벅차다는 것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만남을 공언해 왔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북미 회담에 관심을 보였다.
대화가 진전되려면 선결 과제가 많다. 핵심 의제를 정하고 접점을 찾아야 한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전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여러차례 평양을 찾았다. 예전과 달리 김 위원장이 비핵화 논의는 불가하다는 전제를 단 만큼 양측의 입장차를 좁힐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 입장에서도 고려할 게 많기 때문이다. 북한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들어주면 한국·일본 등 동맹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 밖에 없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 모두 예측불허의 인물인만큼 섣부른 전망보다는 철저한 대비가 우선이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 가장 큰 우려는 북한과 미국이 한국을 패싱해 주요 합의를 이루는 경우다. 북한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는 건 대북제재 해제, 한미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을 포괄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은 '북한 비핵화'란 표현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말 '한·미 핵협의그룹' 성명에선 북한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북을 '핵 세력(Nuclear power)'으로 부르기도 했다. 손익 계산을 앞세우는 트럼프가 미국 본토에 대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위협을 없애는 조건으로 북한의 계산서를 어느정도 받아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과거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웠다. 비핵화는 북미가, 남북관계는 한국이 주도하는 개념이다. 초반엔 분위기가 좋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못했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메이커(pacemaker)' 역할을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역 자리를 건네고 우린 조력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 전략이 제대로 먹히려면 굳건한 한미 관계가 기본이다. 하지만 최근 한미는 연합연습 중 야외기동훈련, 주한미군의 서해 전투기 출격 훈련, 비무장지대 관할권 등 여러 이슈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한미 불협화음을 방치한 채 막연한 '페이스메이커' 역할만 기대하다간 자칫 '핵 패싱'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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