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 여파로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 기름을 넣기 위한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뉴스1


중동 리스크 여파로 국내 주유소 기름값이 연일 오름세를 보이는 가운데 정부가 '최고 가격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유종별로 최고가격에 제한을 걸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업계에서는 인위적인 가격 통제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의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한편 단기적인 공포를 잠재우는 데에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한다.


9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을 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1897.65원, 경유는 1920.07원을 기록했다. 전날보다 휘발유는 2.33원, 경유는 2.34원 상승한 수치다. 국제 제품가·환율 상승 기조 속 미국 이란 전쟁 장기화 우려가 커지면서 국내 주유소 기름값도 충격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기름값 폭등과 관련해 "담합과 가격 조작은 대국민 중대범죄"라며 강도 높은 경고를 내리며 오름폭이 줄어들긴 했지만, 상승세를 막기에는 부족한 모습이다. 특히 중동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면서 상승 압력은 더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계 원유 수송량 27%가 오가는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의 봉쇄 결정으로 사실상 '해상 주차장'이 됐다.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 등에 원유를 공급할 유조선 7척도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묶여 있는 상태다. 통상적으로 중동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데에 약 3~4주가 소요되는 걸 고려하면 4월 초중반부터 시장에 타격이 갈 수 있단 진단이다.

여기에 쿠웨이트 등 중동 산유국들까지 생산 감축을 결정하면서 시장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국제 유가 기준인 브렌트유는 이날 기준 배럴당 109.17달러,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는 109.27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두바이유는 99.14달러로 100달러 고지를 눈앞에 뒀다.


이에 정부는 상황 대응을 위해 이른바 '기름값 최고 가격제'로 불리는 석유 판매가격 최고액 결정·고시 제도까지 고려하고 있다. 석유사업법상 산업통상부 장관은 석유의 수입·판매 가격이 현저히 등락하거나 그럴 우려가 예상되는 경우 최고액 또는 최저액을 정할 수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도 근래 이와 관련해 "시장 상황과 여건에 대응해 준비는 마친 상태"라며 "시장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며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석유 제품 가격 자유화 이후 지금껏 단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는 만큼 여러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우선 사회적 후생(사회 전반의 경제적 이익)를 최적화하기 어렵다. 사회적 후생은 소비자와 생산자 잉여의 합으로 결정되는데 정부가 기름값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경우 생산자는 가격 인하 부담으로 공급을 줄이면서 판매 기회를 잃어 손해를 보게 된다. 소비자도 공급 억제로 제품 품귀 현상이 나타나면 구매 기회를 잃을 수 있다.


대체 불가능한 자원을 통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용진 단국대 과학기술정책융합학과 교수는 "석유는 100% 수입해야 하는 자원이라 정부가 통제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영역"이라며 "현재 국내 이슈가 아닌 글로벌 쇼크로 인해 공급난이 발생한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이) 중장기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보는 게 어렵다"고 우려를 표했다.

물론 단기적 차원에서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 기름값이 폭등하는 상황 속 국민 공포감을 잠재울 제동 장치 역시 필요해서다. 김 교수는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 심각한 사태가 이어지고 있고, 정부가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관점에서는 필요한 대처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한편 대한석유협회와 한국석유유통협회, 한국주유소협회 등 석유 3단체는 자발적인 협조 의지를 드러냈다. 이들은 지난 6일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주유소 가격에 인상 요인이 분산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