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고 AI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기업들의 각축전이 치열하다. 대내외적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삼성전자마저 내부 암초에 부딪혔다. 조합원 약 8만 9000명을 거느린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쟁의 행위 투표를 거쳐 오는 5월 21일 총파업을 예고하고 나섰다. 조합원 상당수가 반도체 생산 핵심 인력으로 알려져 국가 경제에 미칠 파장이 우려된다.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하는 삼성전자의 경영 환경은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밖으로는 중동 전쟁 장기화 조짐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졌고 안으로는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 등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변수가 산적해 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 역시 하루가 다르게 치열해지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생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복합 위기 속에서 1인당 평균 연봉이 1억 5000만 원을 넘는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예고는 씁쓸함과 우려를 동시에 안겨준다.


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를 내걸며 파업에 불참하는 동료는 향후 구조조정 시 우선 해고나 강제 전보 대상이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노동자의 권익 보호라는 본질을 벗어나 동료를 볼모로 삼는 부당행위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던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AI 및 데이터센터 투자 급증으로 다시 호황기를 맞았다. 내년까지도 반도체 수요가 공급을 앞설 것으로 전망되며 회사 실적과 전망도 한층 밝아졌다. 경쟁사의 파격적인 성과급 지급에 노조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겠지만 동료를 방패 삼아 투쟁에 나서는 방식은 누구도 납득하기 어렵다.


삼성전자 노조의 출범은 한국 노동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20년 이재용 회장이 수십 년간 고수해 온 '무노조 경영' 원칙을 폐기하면서 여러 노조가 출범했다. 회사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을 견제하고 근로 환경을 개선하는 소통 창구가 마련됐고 수평적 기업 문화를 조성하는 긍정적인 변화도 끌어냈다.

최근 노조의 행보는 과거의 이 같은 모습을 무색하게 만든다. 미래를 준비해야 할 상황과 글로벌 경쟁을 도외시한 채 눈앞의 이익과 무리한 보상만 요구하는 것은 위화감을 조성한다. 노동자의 연대를 외치면서 다른 의견을 묵살하는 태도는 참담함마저 느끼게 한다.


성과급은 회사가 이익을 창출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다. 현재의 성과급이 적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글로벌 한파 속에서 생존을 다투는 시점에 동료를 위협하며 상한 폐지를 외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과거 국내 조선업계도 모처럼 수주 호황기인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으나 노조의 연쇄 파업으로 공정이 지연되고 막대한 지체보상금 우려와 신뢰도 하락이라는 뼈아픈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사측과 '상생'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무리한 투쟁과 이기주의를 고집한다면 결국 조합원 개개인의 불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파업으로 제품 납기가 지연되고 신뢰를 잃으면 기업 경쟁력은 추락한다. 어렵게 찾아온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기업의 존립 없이 노조도 존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