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는 오르는데 가격은 내렸다…라면·과자값 인하의 이면
해태제과·농심·오뚜기·삼양식품 일부 제품 가격 인하
환율 및 물류비 상승·나프타 수급 차질 등 악재 산적
황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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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물가안정 동참을 촉구하며 라면, 제과 등 가공식품 가격 인하를 권고하자 식품업계가 제품 가격 인하에 나섰다. 다만 업계에서는 환율 상승과 팜유 가격 급등, 포장재 수급 불안이 겹쳐 실질 원가 부담은 오히려 커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해태제과,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등 주요 식품기업이 일부 제품 가격을 인하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제 곡물 가격 인하를 들어 식품업계에 물가 안정 동참을 주문한 데 따른 조치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식용유·라면 생산 업체들이 다음 달 출고분부터 일부 제품 가격을 두 자릿수까지 인하한다고 보고받았다"며 물가 부담 완화와 민생 안정을 위해 기업들의 동참을 거듭 촉구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취약계층이 받는 충격이 크다. 민생 경제 충격 완화를 위한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며 20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의 신속한 편성을 지시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정부 출범 이후 물가가 어느 정도 안정되려는 시점에 중동 사태가 터지면서 원부자재 가격이 다시 인상됐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과거 우크라이나 사태 때와 같은 삼중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가 되풀이될 것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가격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현 정부의 가격 인하는 무조건 물가를 낮추려는 의도보다는 내수 진작을 위한 큰 그림으로 보인다"며 "소비 위축이 장기화한 상황에서 내수가 살아나는 것이 먼저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동 사태 장기화에 포장재 수급 차질 우려
식품업계는 정부 기조에 동참하면서도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최근 제분업체들이 도·소매용 밀가루 가격을 5%가량 내렸지만 라면 한 봉지 원가에서 밀가루가 차지하는 비중은 10~15% 수준이다. 전체 가격 비중으로 따지면 인하 효과는 0.5~0.7%다. 기업 간 거래(B2B) 납품 단가는 분기나 반기 단위 계약으로 체결돼 인하분이 즉각 반영되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환율 상승과 타 원부자재 인상이 가장 큰 부담 요소다. 이날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은 1481.2원으로 전날보다 14.7원 상승했다. 1300원대를 유지하던 2024년 초와 비교하면 10% 이상 오른 수치다.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식품업계는 환율이 오르면 국제 곡물가가 내려도 실제 수입 단가가 높아지는 구조다.
이날 베트남 국영 통신사(VNA)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팜유 선물 가격은 2023년 톤당 3500링깃(약 110만2500원)대에서 28.5% 오른 4500링깃(약 141만7500원)대에 거래됐다.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로 설탕 가격이 일부 하락했으나 전체 원가 부담을 상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로 물류비와 포장재 수급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팜유협회는 이란 공습 사태 이후 팜유 해상 보험료와 운송비가 50%가량 올랐다고 밝혔다.
석유화학 기초 원료인 나프타 공급 지연으로 과자·라면 포장재 생산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국내 3위 석유화학사 여천NCC는 지난 4일 고객사에 나프타 수급 불안정으로 인한 공급 지연 가능성을 통보하며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원료를 확보하고도 포장 필름 부족으로 제품 생산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밀가루값 빼고 다 오른 상황이다.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는 동의하지만 기업들이 어려움 속에서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헤아려주시길 바란다"며 "단기적인 가격 인하가 다른 방식의 비용 지불로 소비자나 국민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에서 다각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짚었다.
이 교수 역시 환율과 국제 유가에 따른 원부자재 수급 상황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기업들이 지금은 소폭 가격 인하를 하더라도 손해를 보면서까지 지속해서 물가 안정에 동참하긴 힘들다"라며 "중동 사태가 장기화해 유가가 걷잡을 수 없이 상승하고 원가부담이 높아지게 되면 정부도 기업들의 추가 인상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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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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